고향 베트남을 떠나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온 20대 이주노동자는 폭염 속에 일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40도 넘는 체온에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출근 첫 날 타국에서 청년 노동자는 참변을 당했다.
사망원인은 '온열질환'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참혹한 노동환경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일했던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은 혹서기 기간 조기출근과 단축근무도 적용받지 못했다.
쉴 수 있는 휴게시설도 미비했다는 것이 적발됐다. 기본안전교육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청년 이주노동자를 가장 뜨거운 시간에 노동으로 내몰았던 '죽음의 일터'가 드러났다.
최소 바닥면적 6㎡ 휴게시설, 18~28도 온도 유지..."관리기준 위반 적발, 과태료 검토"
●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은 "이주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구미시 산동읍 아파트 공사 현장을 점검한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상 휴게시설 설치 및 관리기준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며 "사업자 측에 시정지시를 내렸다"고 10일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은 휴게시설 설치·관리기준을 두고 있다. 내용을 보면, 휴게시설의 최소 바닥면적은 6㎡로 해야 하며, 18도~28도 사이 온도와 50%~55% 사이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구미지청 산재예방지도과 관계자는 "현장 점검을 나간 결과, 법에 부적정한 사항이 발견됐다"면서 "시정조치는 진행하고 과태료와 같은 경우에는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혹서기 한국인들은 단축근무...이주노동자들은 미적용 '가장 뜨거운 시간에 노동'
이뿐 아니라 A씨 등 건설현장 이주노동자들은 혹서기 조기 출근과 단축근무를 적용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와 사용자 측인 대구경북철콘(철근·콘크리트)협의회는 지난 6월 '혹서기 노사합의'를 맺었다.
내용을 보면 기존 오전 7시 출근을 6시로 1시간 단축하고, 중식 시간을 1시간 정도 앞당겨 오후 3시 30분 퇴근을 2시 30분으로 당기는 것이다.
노사 양측은 이달 10일부터 오는 8월 23일까지 해당 합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 합의 기간 이전 또는 이후에도 기상 여건을 사전 파악해 혹서기 기간을 확대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고온 시 현장 협의를 통해 작업 중지가 가능하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번에 사고가 난 건설 현장의 업체는 이를 맺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기온이 크게 오르자 한국인 노동자들이 사측에 해당 합의 사향을 이행해달라고 요청했고 조기 출근과 단축근무가 시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정상 근무 시간인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합의안이 의무가 아닌 자율에 맡긴 탓이다. 노조는 "외국인 팀 쪽에 조기 출근과 단축근무 여부를 물어본 결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 것으로 파악했다. 가장 뜨거운 시간에 노동에 내몰린 것이다.
"기초안전보건교육도 받지 못한 채, 출근 첫 날 건설현장에 투입됐을 가능성도 커"
또 숨진 A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여서 관련 안전교육 이수 여부를 받았는지에 대한 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1조는 "건설업의 사업주는 건설노동자들을 채용할 때 기초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고용허가를 받지 않고 안전교육 이수증을 위조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당 현장 시공업체는 지난 5월 해당 법 조항 위반으로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으로부터 시정지시와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심재선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노동안전부장은 "이전까지 건설현장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 사례가 많고, 현장은 그만큼 열악한 상황"이라며 "건설노동자들이 혹서기에 힘겹게 일을 하고 있고, 법적으로 보장된 휴게공간이나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폭염으로 일하기 어려운 시기 한국인과 외국인 구별 없이 모든 현장에서 조기출근이나 단축근무가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체 측은 노조 주장에 대해 "현장 팀마다 다른 사안들"이라며 "현재 조사 중"이라는 입장이다.
업체 관계자는 "(이주노동자만 정상 근무했다는 것에 대해) 현장 인원과 팀마다 다 다른 사안들이기 때문에 그게 맞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현재 조사 중이고, 유족 측과는 배상에 대해 합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 국적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가 지난 7일 오후 4시 40분쯤 구미시 산동읍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거푸집 설치 작업에 투입된 A씨는 퇴근 전 동료들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뒤 앉은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해 신고했다.
소방당국이 숨진 A씨의 체온을 잰 결과 40.2도로 나타났다. 때문에 A씨의 사망 원인을 온열질환으로 추정했다.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은 현장에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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