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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출근합니다"...구미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 복직 첫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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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해고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법원, 올해 7월 "원청 직접고용" 판결
'정규직' 첫 출근...장미꽃 전달, 박수·환호
"기분 좋다", "무덤덤하다" 심정 밝혀
구조조정·노조 권리 보장 '투쟁 2막' 준비
"변한 것 없는 회사, 더 열심히 싸울 것"

"여름을 10번 보내고, 겨울을 9번 보내고서야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다들 고맙습니다. 눈물 나네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21명이 9년 만에 정규직으로 첫 출근길에 올랐다. 

"이제 들어가보겠습니다"...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이 경북 구미 제4국가산단 (주)AGC화인테크노코리아 공장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이제 들어가보겠습니다"...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이 경북 구미 제4국가산단 (주)AGC화인테크노코리아 공장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경북 구미시 산동읍 제4국가산업단지 ㈜AGC화인테크노코리아(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은 1일 오전 8시경 노동자들이 첫 출근을 응원해주러 온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새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기존 '아사히비정규직지회'에서 명칭을 바꾼 '아사히글라스지회' 명찰을 달았다. 당초 22명이 출근해야 했지만 한 명은 지난 4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해 재활 치료 중이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이 "2015년 6월 30일"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이 "2015년 6월 30일"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 한 조합원이 회사 관리실에서 출입증을 교부받고 있다.(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 한 조합원이 회사 관리실에서 출입증을 교부받고 있다.(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정문으로 올라가는 오르막에는 "2015년 6월 30일", "3,321일"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닥에 놓였다.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날과 일터로 다시 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이다. 노동자들은 출근길에 오르며 현수막을 밟고 지나갔다. 노동자들이 걸어 올라가는 오르막은 '꽃길'이 됐다. 이들을 축하해 주러 서울, 부산, 울산 등에서 온 사람들은 붉은 장미꽃을 전달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등 함께 기뻐했다.

회사 관리실에 들어선 이들은 핸드폰에 보안스티커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받은 뒤 공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을 받았다. 해고 9년 만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첫 출근한 노동자들은 "기분이 좋다", "의외로 무덤덤하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이영민(54) 조합원은 "공장에 들어가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복귀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뛰고 기분이 좋다"고 했다. 민동기(43) 조합원은 "길에서 오래 투쟁하다 복직하니 기분좋은 분위기보다 무덤덤한 것 같다"며 "억울하게 해고당했는데, 9년이나 싸운 끝에 해결됐다는 것에 마음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공단에 핀 들꽃, 다 괜찮다"...아사히글라스 공장 앞 농성장에 그려진 벽화(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공단에 핀 들꽃, 다 괜찮다"...아사히글라스 공장 앞 농성장에 그려진 벽화(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해고 이후 긴 시간 동안 지켜온 공장 앞 농성장은 현재 운영하고 있지 않지만, 바로 철거하지 않는다. 사측이 노조 사무실을 제공할 때까지 임시 사무실로 사용할 계획이다.

노동자들은 지난 9년간의 싸움을 '투쟁 1막'으로 규정하고, 공장에 들어간 뒤에는 '투쟁 2막'을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측이 최근 정규직 노동자 200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발표했고, 앞으로 노조 활동을 어떻게 보장받아야 할 지에 대한 문제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9년 만에 첫 출근합니다"...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 기자회견(2024.8.1.경북 구미 AGC화인테크노코리아 정문)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9년 만에 첫 출근합니다"...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 기자회견(2024.8.1.경북 구미 AGC화인테크노코리아 정문)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지회장 차헌호)는 이날 출근 전 구미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돼 9년 만에 민주노조 깃발을 들고 출근한다"며 "현장에서 더 큰 민주노조를 만들고 비정규직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차헌호(51) 지회장은 "비정규직이었던 우리가 정규직이 돼서 민주노조의 깃발을 들고 출근한다"며 "첫 출근은 행복한 마음과 함께 다시 결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고 다짐했다. 이어 "공장 정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투쟁 2막은 시작된다"면서 "노조를 부수려다 실패하고, 수백억을 날려도 변한 것이 없는 회사에 맞서 현장에서 더 열심히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차헌호 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차헌호 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2024.8.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일본 다국적기업 아사히글라스는 휴대폰과 TV 액정용 유리 기판을 생산하는 업체로, 구미 제4국가산단에 있다. 사내 하청업체 GTS(지티에스) 소속 노동자들은 지난 2015년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으나 사측은 이를 이유로 노조에 가입한 하청노동자 178명을 문자 한 통으로 해고하고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했다. 이 중 22명은 "부당해고"라며 사측을 상대로 9년 동안 소송을 벌여 왔다.

대법원은 지난 7월 11일 지티에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22명에 대해 "아사히글라스의 제조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며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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