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10년이 된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태가 대법원으로 간다.
직고용,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등 지난 10년 간 노동조합과 사측이 벌인 3건의 소송이다.
1심과 2심에서 유.무죄를 놓고 엇갈린 판결이 나오기도 해 대법원이 최종 판가름하게 됐다.
대법원은 오는 11일 일본 기업 아사히글라스 한국 자회사(주)AGC화인테크노 한국 사내 하청업체 지티에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차헌호씨를 포함한 22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하청업체 노동자 원청업체가 직고용)',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등 3건의 소송에 대한 선고 공판을 진행한다.
◆ 가장 핵심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대법원 민사3부에 배정됐다.
일본 다국적기업 아사히글라스는 휴대폰과 TV액정용 유리 기판을 생산하는 업체로 경북 구미공단에 진출해 하청업체에 제품 출하 업무를 맡겼다.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2015년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다. 노조를 설립하며 갈등이 시작됐다. 그리고 사측은 노조에 가입한 하청노동자 178명을 문자 한통으로 해고하고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했다. 긴 싸움이 시작됐다.
1심 재판부인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지난 2019년 사측에 "고용의 의사를 표시하라"며 직고용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2심인 항소심 재판부(대구고법 3민사부)도 지난 2022년 "원고(원청업체)가 피고(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지휘·명령권을 사용한 게 선명하다"면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과 2심 모두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큰 이변이 없으면 대법원도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만약 대법원이 직고용 판결에 마침표를 찍으면 노동자들은 해고 9년 만에 구미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은 1.2심이 엇갈린 불법파견이다. 대법원 제3부가 결판을 짓는다.
구미 공장 하청노동자들을 불법파견한 혐의로 기소된 아사히글라스 경영진들에 대해 1심 재판부(대구지법 김천지원)는 지난 2021년 8월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파견법상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 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는데 위반했다고 봤다. 국내 제조업 불법파견 혐의와 관련해 경영진에 대한 첫 징역형 선고다. 하라노타케시 이사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하청업체 대표이사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원.하청에 각각 1,500만원과 300만원의 벌급형 가납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했다. 대구지법 제4형사부는 지난 2023년 1심 유죄 판결을 뒤집고 원.하청 경영진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항소도 기각했다. 1심은 원청 공정에 하청노동자들이 편입됐다고 봤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편입되지 않았다고 봤다. 또 업무에 있어서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지시와 감독을 받았다고 본 1심과 달리 항소심은 협력업체 관리자가 지휘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할 경우 다시 다퉈볼 여지가 생기지만, 항소심을 받아들이면 불법파견은 없었던 일이 된다. 때문에 노조는 대법원이 파기환송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사측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법률대리인으로 내세웠다.
◆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은 대법원 특별3부가 맡았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2016년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신청에서, 앞서 구제 신청을 각하했던 경북지방노동위원 결정을 뒤집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부당노동행위가 맞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중노위 결정에 대해 사법부(1.2심)는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선고했다. 중노위의 재심 판정을 취소한 것이다. 중노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고했고 대법원 판결을 받게 됐다.
◆ 해고자들은 10년 긴 기다림 끝에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있다.
긴 싸움을 이끈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은 5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문자 한통으로 쫓겨난 하청노동자들이 10년을 싸워서 대법원 판단을 앞두게 됐다"며 "고용노동부, 검찰, 법원, 정치권이 올바르게 제 역할을 했다면 노동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싸웠겠나 하는 아쉼움이 크다"고 밝혔다.
또 "우리 사회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행위를 바로 잡지 못해 이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지는 것"이라며 "노조활동을 했다고 해고되고, 공장에서 쫓겨나는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생계활동도 접고 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노조와 시민들의 많은 지원과 후원 덕분"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많은 문제를 마주하고도 항의조차 못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지지와 연대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태는 누가봐도 부당노동행위, 불법파견"이라며 "근거가 부실한 항소심 판결로 혼선이 있었지만, 불법파견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대법원이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사히글라스 관련 재판은 모두 4건이다. 3건은 오는 11일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고, 나머지 1건은 아직 대구고법에 묶여 있다.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지난 2022년 해고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임금지급 청구소송 1심 선고심에서 "임금 64억13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직고용 의무를 불이행하고 이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2년째 첫 공판도 열리지 않고 있다. 일정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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