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주고 받지 않았다. 고요함 속에서 아주 조용한 대화를 이어갔다.
먼저 눈짓으로 인사를 나눴다. 각자 노트를 꺼내 필담으로 말을 이어갔다.
종이에 사각 사각 글씨 쓰는 소리가 한참 이어진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곧 불편함을 느껴 핸드폰 문자와 카카오톡으로 다시 대화를 이었다.
역시 속도가 느렸다. 각자 노트북을 꺼내 PC 카톡을 깔아 의사소통을 했다.
이제서야 좀 속도가 났다. 하고 싶은 말들이 카톡 창 속으로 빠르게 오갔다.
농인 유튜버 제희정(27)씨를 지난 2일 대구 중구 카페 '라일락뜨락 1956'에서 만났다.
대구 동구에 사는 희정씨는 유튜브 채널 '0(영)+0(영)' 운영자다. 장애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인 농인(聾人) 희정씨와 들을 수 있는 청인(聽人)인 기자의 아주 조용하고 사적인 인터뷰는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졌다. 노트북만 서로 쳐다보며 말을 주고 받느라 자판기를 두드리는 타닥 타닥 타이핑 소리가 한참 울렸다. 공감하거나, 웃길 때 엄지 손가락으로 '따봉' 표시를 하기도 했다. 노트북 카톡 화면에서 얼굴을 때고 그제서야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웃을 수 있었다.
희정씨는 2년 전부터 유튜브에 채널을 만들어 지금까지 76편을 제작해 올렸다. 대부분 농인 삶을 주제로 한 영상들이다. '영(YEONG)' 애칭은 이때 만들어졌다. 숫자 1이 존재의 시작이라면, 농인과 수어의 존재감은 현실 세계에서 숫자 0으로 존재하는 것이냐는 물음을 담고 있다.
"농인의 존재도 0, 수어의 존재도 0, 우리는 세상에서 0인 존재들. 여기에서 +1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희정씨는 이 같은 마음을 담아 농인에 대한 청인들의 오해를 해소하고, 청인들의 잘못된 편견과 행동을 지적하는 콘텐츠를 제작했다. 영상 제목들을 보면 대부분 농인들의 일상적인 삶을 다루거나 농인이 바라보는 대중매체, 영상물 리뷰가 많다.
'농인 방탈출게임 하다', '말을 못하는 농인은 바보다?',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 장면을 본 농인 반응', '세상에 나쁜 농인은 없다?', '농인은 음악에 관심이 없을까?', '농인(청각장애인)과 친해지는 방법?', '농인이 식당에 갔다가 본의 아니게 집착광공(?)이 된 이유', '농인이 카페에 갔더니? 유형 5가지' 등이다.
카페에서, 식당에서,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일상 생활에서 농인들이 겪는 평범한 일상들을 짧은 상황극으로 희정씨가 다중의 역할을 하며 촬영했다. 길에서 부딪혔을 때 농인인줄 모르고 혼자 말을 하다가 갑자기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어깨를 툭 치는 이들도 있고, 당황해하며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농인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않고 있어 매일 벌어지는 평범한 일들이다.
희정씨는 "가끔 친절한 청인도 있지만, 대부분 귀찮아하는 청인이 더 많다"면서 "농인이라고, 귀가 안들린다는 제스쳐를 취해도 급발진해서 화를 내거나, '안들리냐'고 막 소리 지르는 사람이 많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유튜버가 될 생각이 없었다. "외부로 제 얼굴이 알려지는 게 두렵고, 자기혐오도 심해서...자신감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인 크리에이터 '하개월'씨가 OTT 관련 영상 콘텐츠에서 섭외가 오면서 두려움을 이겨냈다. 촬영을 하고나니 홀가분해졌다. 희정씨는 "내가 날 너무 억압하고 있었구나, 내 모습 그리고 농인의 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유튜버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그날을 떠올렸다.
보청기를 끼면 아주 희마하게 주변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희정씨는 보청기를 끼고 있지만, 5~6살 이후로 청력이 점차 떨어지면서 후천적 농인 판정을 받았다. 청인이던 시절 지금까지 기억나는 소리는 밤에 할머니가 "반짝 반짝 작은 별" 동요를 자장가로 불러준 일이다. 그 음율은 여전히 기억이 난다.
농인들의 말은 수어다.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쓴다. 희정씨는 3살 때 농인인 어머니에게서 수어를 배웠다. 이후 특수학교에서 더 정교하게 배웠다. 희정씨는 "수어도 국가마다 다르고, 사투리도 있는 걸 아냐"면서 "농인 친구는 여러 나라 수어를 한다. 또 사투리 수어를 쓰면 못 알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세대에 비하면 희정씨 세대의 농인들은 그나마 국가 시스템이 잘 마련돼 수어를 빠르게 배우는 편이다. 농인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심하던 과거에는 수어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몰라 방치된 농인들이 많았다. 그 탓에 희정씨 어머니도 수어를 배울 기회가 적어 19살이 넘어 농인들의 사적인 모임에서 농인 선배들 덕분에 수어를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희정씨는 "엄마가 어렸을 때 특수하교 비슷한 곳에 입학했는데, 농인들에게 수어나 수업을 가르치지도 않고 벽돌로 건물 짓는 작업만 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이전 세대들과 비교해 많이 사라져 다행이지만, 혐오와 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인터넷에 활개를 쳐 답답할 때도 있다"고 했다. 가끔 희정씨 유튜브 채널와서 얼굴을 평가하는 댓글을 남기거나 조롱하는 댓글을 남기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희정씨는 "뜬금 없이 얼평(얼굴평가) 댓글이 있길래 그냥 '눈 버렸다' 생각하고 말았지만, 그런 댓글이 마음에 남는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희정씨는 정치와 사회에도 관심이 많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윤석열 탄핵 대구시국대회' 현장이다. 무대에 올라 농인으로서 처음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구 탄핵집회에 처음 갔을 때 수어 통역 지원이 안되는 모습을 보고, '이 집회에서 농인의 존재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집회 주최 측에 수어 통역 지원을 요청했고, 발언도 신청했다. 두 가지 모두 받아들여졌다. 작은 변화는 그렇게 이뤄졌다.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디즈니플러스 각종 'OTT'의 드라마, 영화는 농인들이 즐겨보는 콘텐츠다. 자막과 화면 해설 서비스가 대부분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2차 창작물에서 농인 캐릭터는 대부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희정씨는 "청인들이 알고 있는 농인의 세계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농인 캐릭터는 대부분 착하게만 그려져서 한계가 뚜렷하다. 나중에 내가 직접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2025년 새해 소망은 큰게 없다. 농인을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대해달라는 것이다. 희정씨는 "농인이 필담으로 얘기하면 청인도 똑같이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음성언어라는 수단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어 "수어통역사 수도 늘려서 대구 여러 곳에 배치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일자리도 큰 숙제다. 지난해 퇴사한 뒤 채용사이트를 보고는 있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그는 "장애인 일자리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서 "채용 정보를 보면 돌려막기 같은 계약직, 청소 같은 육체 노동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희정씨는 "농인은 할 줄 아는 게 생각보다 훨씬 많다"며 "채용 범위를 넓히고, 직업 종류도 늘려서 농인의 선택권이 보장됐으면 좋겠다. 들리지 않을 뿐 다른 능력도 많다"고 강조했다.
가장 좋아하는 '수어'를 묻자 희정씨는 두 손가락을 하나로 묶어 빙빙 돌리는 제스쳐를 보여줬다. '연대'라는 뜻의 수어다. 그는 "누가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며 "서프러제트(영국, 미국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운동)처럼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이 세상이 바뀔 수 없듯이, 계속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말고 누가 해주겠지?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나부터 나서야지 다른 농인들도 용기 얻어 다 같이 일어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의 평등하고 차별 없는 연대라는 수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희정씨는 본업인 유튜버로 돌아갔다. 휴대폰 동영상을 켜 삼각대에 올렸다. 영화 리뷰 대본을 노트북에 적어, 대본을 보면서 촬영을 시작했다. 0에서 1이 되기 위한 조용한 몸짓, 수어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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