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10.29 서울 이태원 참사.
국가의 방관 속에 수백명의 또래의 죽음을 목도한 10대들은 더 이상 어리지 않다.
그들은 청년이 되었다. 국가의 위기 앞에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정한 세대가 되었다.
이들의 무기는 응원봉과 망토, 피켓과 깃발이다. '빛의 혁명' 거리 한가운데 섰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전국에서 탄핵 촛불이 불타올랐다.
특히 10대~30대 여성들이 아이돌 응원봉과 이색 피켓을 들고 탄핵의 밤을 밝혔다. 대구도 비슷했다.
그 중에서 대구경북 지역 대학생과 청년들 역시 민주주의가 위협 받자 탄핵 촛불을 들었다. 학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일부는 '청년시국회의'를 꾸렸다. 시국대회 무대에 올라 "윤석열 탄핵"을 외치기도 했다.
그때 침묵하지 않았던 MZ세대 청년들에게 왜 그때 거리로 뛰쳐나갔는지, 촛불을 들었는지를 물었다.
◆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학생들이 모인 '대구경북청년대학생 시국회의' 소속 회원인 이채은(23.경북대 사회학과 20학번), 반소희(21.영남대 문화인류학과 24학번), 김지유(20.대구가톨릭대 제약학과 23학번)씨를 3일 오후 중구 서성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들 3명을 포함해 경북대 윤리교육과 22학번 김상천(22)씨 등 4명이 시국회의 최초 제안자다.
이들은 지난 12월 13일 동성로에서 열린 첫 '대구경북청년대학생 시국대회' 당시 각자 가지고 간 물건들을 하나씩 테이블에 올려놓고, 물건들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다.
당시 청년시국대회 사회를 맡았던 채은씨는 "All I want for Christmas is 윤석열 퇴진"이라는 시국대회의 주제에 맞게 산타 모자와 "탄핵"이라고 적인 붉은색 하트 응원봉을 들었다.
성소수자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 생물학적 성과 자신의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인 소희씨는 이를 상징하는 핑크색, 하늘색, 흰색 망토를 두르고, 당시 했었던 토끼 모양 머리띠를 가져왔다.
지유씨도 팔레스타인 전통 문양을 상징하는 카피예(Keffiyeh.아랍 국가에서 사용하는 머리에 두르는 천) 스카프를 맸다. '대구경북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긴급행동' 회원이라서 집회 때마다 들고 나온다.
탄핵집회 주역이었던 20대 여성들은 자신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거침 없었다. 이뿐 아니라 정체성을 표현하는 여러 상징들을 자랑스러워했다.
◆ 자려고 하다가, 놀다가 '비상계엄' 선포에..."울먹이는 친구들, 무섭다고 해"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당시 채은씨와 소희씨는 잠에 들기 전이었고, 지유씨는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뉴스 속보를 보거나, 엑스(옛 트위터)를 확인하며 계엄 소식을 접했다. 친구들에게서 "비상계엄이 뭐냐", "몸 조심하라" 등의 연락을 받고 심각함을 알게 됐다.
채은씨는 "침대에 누워 실시간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계엄 속보가 떴다"면서 "당일 오후 경북대 시국선언에 동참한 친구들이 상황이 심각하다, 빨리 모여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에 사는 친구도 헬리콥터 소리가 나 무섭다.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다"면서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학교 내 동아리 방으로 모였다"고 설명했다.
소희씨는 "자기 직전에 트위터로 게엄령 소식을 접했고, TV로 계엄을 해제하러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모이는 것을 군경이 막는 모습을 봤다"며 "국회로 모여달라는 글이 트위터 내에서 실시간으로 많이 공유됐고, 저도 아침 기차를 예매했었다"고 말했다.
지유씨도 "비상계엄 선포 당일 11시까지 친구와 놀다 귀가하는 길이었는데, 친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가 와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전화가 왔다"면서 "그 전 주 주말에는 광주 여행을 갔다가 국가폭력의 실태를 보고 와 지금 잠들면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깨 있었다"고 했다.
◆ 계엄 선포 뒤 학교 곳곳에 대자보 붙이고, 대학생들 모여 '시국회의' 결성
이들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학교 내에 시국선언 대자보를 붙이는 것이었다. 또 각자 시국선언에 연명할 학생들을 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활용해 모집하거나, 직접 학교를 돌며 모임에 동참해주기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경북대학교 대학생 모임'은 61명, '영남대학교 민주학생 연대'는 28명,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구가톨릭대학교 학생 연대'는 9명의 학생들을 모았다.
대학생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연대하기 시작했다. 경북대·영남대·대구가톨릭대 학생들이 모여 '대구경북청년대학생 시국회의'를 결성했다. 비상계엄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4일부터 열린 동성로 '대구시민시국대회'에 참석하며, 대학생·청소년들이 주체가 되는 시국대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결국 지난해 12월 13일 동성로에서 '대구경북청년대학생 시국대회를 열었다. 대학생·청년·청소년 200여명이 참석했다. 시국대회에서 채은씨는 사회를 봤고, 소희씨와 지유씨는 대표학생 발언대에 올랐다.
채은씨는 "무대에서 사회를 보며 가장 인상깊게 봤던 것은 중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앉아 수줍어하며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었다"며 "이런 경험들이 대구경북의 보수적 문화를 바꾸는 데 어떤 식으로 기여할 지에 대해 생각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청년들이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지유씨는 "청년, 청소년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나 혼자만 (비상계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보다 광장에 나와 함께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고, 간식도 나눠 먹어보는 경험이 큰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 MZ세대 여성들 광장에 많이 나온 이유?..."덕질 문화를 넘어 사회적 의제 공유"
이들은 특히 시국대회에 참석하며 10대, 20대 등 'MZ세대' 여성들이 많이 광장으로 나온 이유에 대해 엑스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덕질 문화'가 정보 획득과 정서적 교류로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봤다. 또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정한 세대"라는 인식이 많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채은씨는 "MZ세대 여성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을 갖는 것들을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면서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아이돌의 노동환경, 소속 기업의 부조리 등에 대응한 경험들이 정치적·사회적 의제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희씨는 "트위터를 중심으로 많은 운동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면서 "뉴스만 보고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청년들 사이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지유씨는 "MZ세대 여성들에게 정부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많이 공유되고 있고, 사회 분위기를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며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말에 피해를 키웠던 세월호 참사를 보며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정한 세대'기 때문에 광장으로 많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시국대회·시국선언 준비하며..."가서 공부나 해라, 굳이 학교에서 왜 하냐" 비난 듣기도
이들은 각자 다니는 학교에서 시국선언 연명자를 모집하고, 시국대회를 또래 학생들에게 알릴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무관심", "학교 측의 방해" 등을 꼽았다. 대학 교수에게서 "대자보를 떼라"는 연락을 받기도 하고,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익명의 학생들이 "굳이 왜 하냐", "니가 뭔데 (시국선언을) 하냐"는 댓글도 달렸다. 그럼에도 "잘해야겠다", "마음에 안 들면 니가 하라",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꿋꿋이 할 일을 했다.
지유씨는 "대자보를 학내에 붙이고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렸을 때 다른 댓글보다 '서울도 아니고 굳이 우리 학교에서 이런 거(시국선언) 하냐', '가서 공부나 해라'는 글들이 힘 빠지게 했다"면서 "그럴 때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소희씨는 "대자보를 학내에 붙일 때는 응원하는 댓글이 많이 달려 힘들지는 않았다"면서도 "앞으로의 활동에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실무적인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채은씨는 "학교 측에서 학내에 대자보를 붙이는 것도 단속하고, 대자보를 떼라고 전화도 오는 교수들도 있었다"며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의 기세를 꺾으려 하는 압력을 견뎌내는 것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 "윤석열, 빠른 시일 내 탄핵 인용돼야"...민주주의 답사·역사 학습 모임 계획
이들은 한목소리로 "빠른 시일 내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같은 생각을 가진 지역 대학생들이 탄핵 정국에 대해 자주 모여 논의하는 활동과 함께, 민주주의와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한 활동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채은씨는 "대구경북청년대학생 시국회의라는 이름 아래 모인 대학별 모임들이 각자의 위치에 맞는 활동을 꾸렸으면 한다"면서 "국민이 쌓아 올린 민주주의가 심하게 훼손됐던 비상계엄 사태를 되돌아보기 위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장소를 답사하고,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한 학습 모임을 해보려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희씨는 "윤석열 탄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모인 대학생들이 소속감을 느끼게 할 구심점이 되고 싶다"면서 "(윤 대통령이) 탄핵된 뒤에도 학생들이 공통된 의제를 갖고 모이게 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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