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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염에 700가구 찾아 매일 1만보...대구 가스검침원들 '극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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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르포⑥] 대성에너지 검침원 노동자
모자·마스크·긴옷·조끼, 금세 땀으로 흥건
계량기 찾아 삼만리, 옥상·통로 등 제각각
8일간 3,800가구 검침, 하루 1만보 걸어
서울, 내년 혹서기 '격월 검침' 전면 시행
대구는? 감감무소식..."안전 보장해주길"

13년차 대성에너지 가스검침원 이희자(57)씨가 대구 남구 봉덕동 한 건물 창고에서 계량기를 보고 있다.(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13년차 대성에너지 가스검침원 이희자(57)씨가 대구 남구 봉덕동 한 건물 창고에서 계량기를 보고 있다.(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엘리베이터가 없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난다.

대구지역은 전날 내린 비로 기온은 한풀 사그라들었지만, 그럼에도 30도가 넘는 온도와 습도 때문에 길거리를 조금만 돌아다녀도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이날 대구는 체감온도 33도 이상으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13년차 대성에너지 서비스센터 가스검침원 이희자(57)씨는 4일 오전 남구 봉덕동 인근 주택가를 홀로 돌아다니며 가스계량기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이씨는 햇빛을 막으려 모자와 목까지 오는 마스크, 긴팔 옷을 입고 장갑을 꼈다. 옷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고, 이마에 땀이 흘러내려 마스크를 적셨다.

◆ 폭염에 8일간 3,800가구 검침...할당량 채우기 위해 하루 1만보 이상 걸어야 

이씨는 이 더위에도 걸어 다닌다. 담당하는 구역에 있는 건물들이 서로 붙어 있는 탓에 오히려 차로 다니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더위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복장도 일부러 가볍게 한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조그마한 가방이라도 메고 다녔으나, 요즘은 그저 유니폼 조끼에 모두 넣고 다닌다.

이희자씨가 건물 외벽에 붙은 계량기를 보고 단말기에 입력하는 모습(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이희자씨가 검침을 마친 후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닦고 있다.(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이희자씨가 검침을 마친 후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닦고 있다.(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매달 1일부터 8일까지 검침 업무를 맡는데, 이씨는 8일 동안 3,800개 가구를 검침해야 한다. 하루에 적어도 600가구에서 700가구는 해야 하는 셈이다. 더위는 출근 시간마저 앞당겨 요즘은 오전 7시 20분쯤 출근하고 11시 30분까지 일을 한 뒤, 점심을 먹고 쉬다가 다시 오후 4시 30분쯤 나와 검침을 이어간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1시간 동안 4,000보를 걸었다. 이씨의 만보기를 켜서 보니 3시간가량 걸은 걸음이 8,434보였다. 이씨는 "매달 1주일 동안은 더워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검침 3,800개를 다 해놔야 한다"며 "검침은 내가 더우면 일찍 나와 일을 할 수 있어 7시 20분쯤 출근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전에 1만보 정도 걷지만, 오후에는 2,000보 정도로 많이 못 걷는다"면서 "노동자들은 온도계를 매일 보는데, 오후에 나오면 아스팔트에서 나오는 열기가 가득하다. 지난번에는 쉬지 않고 오전 7시 30분에 나와 12시 30분까지 5시간을 했지만, 오후에 지쳐서 나오지 못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 옥상에, 구석에, 쓰레기 속에...곳곳에 숨겨진 계량기들, 근무지 옮기면 '난감' 

이씨가 담당하는 구역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아파트와 주택들이 많은 곳이었다. 5층~6층 정도 되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반복했다. 주택의 경우에도 계량기가 문 바깥 또는 문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 뒤쪽에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 구석에 있었다. 

이희자씨가 검침을 마친 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좁은 골목을 나오고 있다.(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이희자씨가 검침을 마친 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좁은 골목을 나오고 있다.(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통로 구석에는 에어컨 실외기나 쓰레기 등 장애물들이 많았다. 방치돼 있다 보니 악취는 덤이었다. 또 물건을 쌓아놓는 창고에 계량기가 있는 경우들도 흔해 여름에는 밀폐된 공간에서 검침하러 잠깐 들어왔다 나오는 것 자체도 고역이다.

이씨는 계량기가 있는 곳 인근에 놓인 장애물들을 넘거나 피해 다녔다. 그 때문에 더위에 몸을 움직일 일이 많아져 옷은 땀으로 흥건해졌고, 먼지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수천 걸음을 걸은 탓에 아침에 들고 나왔던 얼음물은 금세 녹아 미지근해졌다.

이희자씨가 계량기 옆에 높인 장애물들 사이에서 계량기를 보는 모습(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이희자씨가 계량기 옆에 높인 장애물들 사이에서 계량기를 보는 모습(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담당 구역에 검침을 하러 다닐 때는 계량기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 일이 조금 더 수월하지만, 문제는 검침원 1명이 아프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쉬게 되면 대체 인력이 없어 지원 업무를 나가야 한다. 익숙한 곳에서는 보통 1시간에 100개 정도를 검침하지만, 지원을 나가면 낯선 곳에서 계량기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업무 시간과 강도는 배로 늘어나게 된다. 

이씨는 "대구는 계량기 위치가 건물별로 제각각"이라며 "폭염에 계단을 올라갈 때는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라 더 힘들고, 막상 올라가도 구석에 있는 경우들이 많아 쪼그려 앉아 찾다 보면 허벅지가 아프다"고 했다. 

또 "동료들끼리 '언니, 내 담당 구역에 엘리베이터 두 개 있다'고 말하면서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며 "지원 업무를 나가거나 1년에 1번씩 담당구역 조정을 하게 되면 검침기를 찾는 것도 문제다. 다른 동네 가면 1시간에 50개도 못 한다"고 토로했다.

◆ 검침원들 '혹서기 격월 검침' 촉구...서울시는 올해 시범사업 후 내년 전면 시행

이씨는 폭염에 쓰러지지 않도록 혹서기만이라도 '격월 검침'을 시행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정수기 물 한잔만 할게요"...이희자씨가 한 식당 건물의 가스 검침을 한 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정수기 물 한잔만 할게요"...이희자씨가 한 식당 건물의 가스 검침을 한 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2025.8.4)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서울시는 지난 7월부터 '서울특별시 도시가스 공급규정'을 개정해 도시가스 검침원들의 격월 검침을 의무화했다. 폭염을 고려해 7월을 거르고 8월에 검침하거나, 8월을 거르고 9월에 검침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격월 검침으로 발생하는 과금 공백은 사후 정산 방식으로 해소할 방침이다.

우선 올해부터 도시가스 회사별로 주택용의 50%에 대해 1개월 격월검침을 시범실시하도록 한 뒤, 내년 1월부터 전면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씨는 "여름에는 체력이 안 돼 옥상 올라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다"면서 "가스 사용량이 적은 곳들의 경우 여름에 검침을 빼주거나, 아니면 혹서기에만 두 달에 1번 검침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규태 공공운수노조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장은 "여름철 검침 기간의 경우 점검원들이 차량 등 쉴 곳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야외에서 더위에 노출된 상태로 하루 종일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업무 강도 측면에서도 그저 걸어 다니는 것만이 아니라 옥상을 올라가는 경우도 많다"며 "여름철이라도 한시적으로 격월 검침 등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 대성에너지 "서울시 격월 검침 확인한 뒤 사업 검토...원격 검침 시행 중" 

대성에너지는 서울시의 격월 검침 시행 결과를 확인해보고 사업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는 원격 검침 등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성에너지 홍보팀 관계자는 "서울 도시가스 회사들에 확인한 결과, 6~9월 하절기에 격월 검침을 위해서는 도시가스 공급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며 "올해 서울시 격월 검침이 끝나는 가을쯤 가서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폭염 격월 검침을 하려면 가스공사와도 협의해야 하고, 공급 규정을 담당하는 대구시와도 협의를 해야 한다"면서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관리소에서 전산으로 수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시는 서울시에서 격월 검침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대구시 에너지산업과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올해 시범적으로 혹서기 격월 검침을 하고, 내년부터 전면 시행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 "대구시는 한다, 안한다를 답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 "도시가스 공급규정도 살펴봐야 하고, 대성에너지와도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면서 "검침 규정을 바꿨을 때 장단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명확한 답을 드리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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