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232. "원칙의 아성"..(2009.9.14)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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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의 아성"
"함께 갈 수 있으려면
적어도 소수 최악의 적을 제외한
다른 입장들 사이의 상호인정이 불가피하다.
상대에 대한 인정은
자신의 영역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상대를 소극적으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상호인정은 자기변화를 전제한다.
그런데 자기변화는 원칙에 대한 배반으로 치닫기도 한다.
허나 완벽하고 깔끔한 원칙의 아성 안에 머물면서는
이 질퍽한 현실의 한 구석도 바꿔내기 어렵다.
부단한 갈등의 재연 가능성을 감안하면서도
사회적 혼란과 고통의 완화를 위해 힘을 모으고
한 걸음이라도 함께 질퍽거리며 내디딜 필요가 있다”
(평화뉴스 [홍승용 칼럼] '플라톤과 통일전선' 중에서)
'자기 변화' 없는 연대가 가능할까요.
원칙의 아성에 머물면 상대를 인정할 여지가 적고
자신의 색이 오직 옳다면, 조금만 달라도 옳지 않게 되고
나홀로 선명성을 드러낼 수는 있으나 같이 가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죽어도 지켜야 할 원칙, 그 시대의 원칙이 있고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동행도 안되지만,
문제는 하나, "누구를 위하여" 아닐까요.
가파른 주장이 앞서 내달리고
흩어졌다 모이는 시대,
누구를 위하여?
나의 원칙은?
반드시 옳은 원칙인가?
원칙의 아성에 갖힌 건 아닌가?
세상의 흐름 속에 스스로 자주 물어봅니다.
...
가을 바람이 제법 선선합니다.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하는 날들입니다.
빠듯해도 여유 가지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평화뉴스 독자와 후원인들의 마음
"늘 감사합니다"
2009년 9월 14일 평화뉴스 유지웅
작성일:2009-09-16 13: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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