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국민 앞에 무릎 꿇은 민주당'... 2011년 11월 24일자 7면(종합)( 2011년 11월 23일자 2면(종합) ) 2011년 11월 22일자 10면(기획) 2011년 11월 22일자 1면1. 97년 체제의 화룡점점 5년 넘게 지루하게 이어지던
경기도 어느 중학교의 선후배 사이에서 일어났던 "막장 졸업식 뒤풀이"로 세상이 떠들썩할 무렵, 이명박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이 나설 일"이 아닌, "문화의 문제"로 평가한 것은 정말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본 명쾌한 진단이라 평가할 만하다. 피해자들의 부모들이 가해자를 형사 고소한 사건에 대해 대
"MB 정부 가능성 안보여...."이 말은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라 한나라당 지지자들로 구성된 자칭 "중도보수 원로"들이 한 말이다. 그리고 보수성향의 원로들은 MB 정부의 비판수준을 넘어 중도보수 가치구현을 위한 시민정치운동까지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보수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정당 출신의 정치
"아아!!!. 뭐하는 짓이야... 저기 사람 있어요!!" 발을 동동 구르며 내지르던 비명과 아우성은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 파묻히고, 그 불덩이는 바로 그 전까지 멀쩡한 육신들을 순식간에 숯덩이로 만들어버렸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들이 꾸는 악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모습들이 올해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일어났다. 설 명절을 며칠
최근 몇 주 사이에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와 규범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그 사건들은 대다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상식에 반하는 것들이었기에 그 충격과 파장들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시민저항권과 '용산' 판결 먼저 1년 가까이 끌어온 용산참사의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상식 밖의 중형을 선고했다. 피
얼마 전 "X 같아서" 시골에 은둔하고 있다는 김지하 시인이 "한마디로 X 같아서" "주둥이 까는 자리"에 써놓았다는 글 한편이( 2009. 09.26 시론 '천만원짜리 개망신')이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보통사람의 상식으로 보면 조간신문의 시론에 올라온 표현치고는 좀 거
약속이나 한 듯이 두 전직 대통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졌다. 그리하여 한 시대가 저물었다. 허망하다. 허무하다. 마음 붙일 곳 없어 더 허전한 시간들이 속절없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참세상, 민주주의가 피운 형형색색의 꽃들이 한반도 삼천리에 만발하는 그런 세상을 위하여 피 흘리며 싸워 온 세월이 그 얼마
사방을 두루 살펴보아도 꽉 막혀 있다. 치고 나갈 틈새도 보이질 않고 물러 설 수 있는 퇴로를 찾기도 어렵다. 먹빛 같은 어둠 속에 바람소리조차 아득한 정적 속에 꼼짝 할 수 없이 갇혀 있는데 간간히 귓전을 때리는 함성소리가 온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든다.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하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입술은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한 순간 흐드득 쏟아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그 갑작스런 죽음에 가슴이 툭 내려앉는 것은 그가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지도자여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이 너무 참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참담한 죽음을 앞에 두고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애도가 아니라 그 죽음에 대한 해석이다. 그 해석을 바탕으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숙제를
다산의 에 실려있는 애절양(哀絶陽)은 자식 때문에 당할 군액(軍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물(陽物)까지 칼로 잘라내야 했던 조선조후기 백성들의 참담했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7언시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착취와 차별은 봉건시대도 아닌,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온 인류의 해묵은 과제이긴 하다. 하지만 살아남기
“오늘, 검찰은 죽었습니다” 짤막하고도 무미건조한 이 조사(弔辭)는 지난 2월 9일 검찰의 용산참사 수사발표 이후,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희생자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이 수사결과에 항의하며 내걸었던 펼침막에 적혀있던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시퍼렇게 살아있는 권력 앞에, 그것도 부패하고 부정한 권력 앞에서 검찰이 ‘살아 있었던&r
기축년 정초에 지금 희망에 들떠 웃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절망과 공포에 찌들어 떨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타종행사를 생중계한 KBS 화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KBS는 전 세계 어느 방송국도 따라하기 힘든 KBS만이 가진 “방송테크닉”을 발휘하여 생중계 현장을 절묘하게 각
참 고단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 해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 지난 봄 도시의 길거리를 가득 메웠던 촛불들도 몇 남지 않은 채 애처로이 하늘거리고 있는데,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절대권력의 드잡이가 광폭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어느 곳 하나 의지하며 기댈만 한 곳이 없다. 이 나라의 법은 만인의 평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힘있는 자들의 전유물이요 전리품이란 사실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로는 확실히 증명이 되었다. 경제마저 나락으로 곤두박질 친 탓인지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데, 사람들의 마음까지 꽁꽁 얼어 붙어 있는 것 같다. 이미 길거리로 내몰려 있는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의 자리에 어렵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위태롭기 그지없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뜯어내기가 두려울 정도로 내일의 전망을 가질 수 없는 요즘, 다가올 또 한 해는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오려는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은 흉흉하기 짝이 없다. 구세군의 종소리가 올해처럼 공허하다 못해 시끄럽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희망이 없는 삶은 절망을 넘어 죽음과도 같다. 그래도 사람들은 쉬 삶을 포기할 수 없기에 어느 한 구석에 깊숙이 숨어있는 희망 한 쪽을 찾으려 발버둥을 친다. 그런 애처로운 마음을 달래려는 듯 ‘희망’을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렇다. 사람만이 희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인가 아니면 사람들로부터 희망을 빼앗아간 사람들인가? 사람값이 개값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사람의 쓰임새가 일회용 반창고 수준으로 전락해버린 이 시대에,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무너진 이 시대를 버티어 내기에는 너무 한가한 선문답이다. “지역이 희망이다” 지역에서 희망을 찾으라고?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시대로부터 오늘 이 순간에도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든 지역에 흘러넘치는 희망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눈 뜬 봉사들이었던가?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지방정치의 부패는 갈수록 심해지는 반면, 시민사회의 견제력은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있다. 그 책임을 지역주민들이 전적으로 감당하라 요구하려면 수도권과 중앙정부,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수도권 시민들이 틀어쥐고 있는 권력과 힘이 너무 크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들은 하나 둘씩 소리소문없이 문을 닫고 있는데, “지역에서 희망을 찾으라”는 서울 사람의 고상한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에게는 뜬금없다 못해 가혹하기까지한 이야기다. 썩어빠진 이 나라의 교육제도가 개혁되지 않고서는 지역에서 희망의 싹이 한 뼘이라도 자라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광역 대도시의 대학들마저 휘청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서울 사람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알 턱이 있겠는가? 진보와 보수를 떠나 ‘수도권규제완화’를 반대한다는 수도권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역이 희망”이란 이야기는 희망을 빼앗긴 지역사람들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라 수도권 사람들을 향해 던져야 할 메시지다. ‘지역이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서울이 문제’임을 먼저 부각시키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청계천에서 솟아 오른 괴물이 용인지, 이무기인지, 용가리인지 침묵이 강요되는 시대인지라 사람들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지만,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괴물을 만들어낸 것 또한 바로 ‘우리’들이요, 우리들의 ‘희망’때문이었다. 그 희망이 망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코 희망은 권력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란 사실도 깨닫게 해 준 한 해였다. 고단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성급한 희망을 이야기하기 전에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패배의식을 털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의료특별시 메디시티, 대구'에 감동할 시민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지만, 이 사업에 공감하고 적극 동참할 의사들은 또 얼마나 될 지도 의문이다. 경제위기가 주식과 환율이 펼치는 연극이 아니라 점점 현실이 되어가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 여행관광업이라는데, 이런 형편에 '의료관광사업'으로 대구의 성장동력을 이끌겠다는 대구시의 생뚱맞은 발상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한 국가의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면, 또 그것이 장기화될 때 전체 국민의 건강수준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게다가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한 사회보장체계마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는 국가라면? 우리가 10여 년 전에 겪었던 외환위기 때의 기억들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와 메릴 린치가 한순간에 몰락한 뒤, 그 이튿날 한국의 증권시장도 폭락을 거듭하여 그날 하루만 ‘50조원’이 증발했다고 했다. 주식시장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로서는 증권시장에서 하루 만에 사라져버린 50조원이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인지 가늠하기도 힘들고,
장마가 시작되었다. 잠시 비가 그친 하늘은 언제라도 비를 다시 퍼부을 듯이 바람을 몰고다니면서 잔뜩 찌푸리고 있다. 이 장마 그치더라도 기후변화에 따른 집중호우가 7, 8월 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니 당분간은 이명박 대통령이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기나긴 촛불의 행렬을 구경하기 어려워 질 지도 모르겠다.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기 위
몇 해전 황우석 박사의 사기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 책임마저 끝내 검찰의 손아귀로 넘어갈 즈음에 서울의대의 어느 교수는 그 사건을 두고 “한국 과학계의 국치일”이라고 해도 좋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언론관련 시민단체는 우리사회 “주류언론의 국치일”이라고도 했다. 황우석 박사의 거짓신화를 만들내는 데 일등공신이었으면서도, 황
객기와 만용으로 헛발질만 하던 인수위시절부터 충분히 예상되었던 일이었지만, 정권의 지지기반이 경찰특공대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는 시점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아직 임기 100일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잎들이 피워 올린 촛불에 둘러싸여 청와대에 ‘위리안??퓸?있는 꼴아 되고 말
‘강부자’ 정권이란 별칭을 얻으면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각료와 비서관들이 펼치는 아슬아슬한 장애물경기가 정권 출범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웃을 일도 없고, 볼거리도 없는 어수선한 시절에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유일한 볼거리라면 볼거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난 주말은 박미석 사회정책 수석의 거취가 야당과 언론의 주된 관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