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사드 철회를 외쳐온 소성리 주민들의 농성장이 사흘 뒤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경북 성주군이 오는 28일까지 농성장을 철거하라며 행정대집행을 예고한 탓이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비폭력 평화적 투쟁에 대한 폭거"라며 반발했다. 특히 이재명 정부를 향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무책임한 태도로 방관해선 안된다"고 촉구했다.성주군에 18일 확인한 결과, '사드 배치 반대 6개 단체'가 초전면 소성리 진밭교 일대에 지난 2017년 설치한 "사드 철회 촉구" 천막농성장을 철거하라는 내용의 행정대집행 계고서를 지난 14일 보낸다.
대구 10월항쟁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족들이 목놓아 "아버지"를 외쳤다. 위령탑에 쓰인 부모님의 이름을 쓰다듬거나 헌화하고, 절을 올리며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두세 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던 유족들은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은 희끗해진 노인이 됐다. 가창골 어딘가에 묻힌 유해라도 찾고 싶지만, 여전히 행방은 알 길이 없다. 그리움과 아픔의 시월이 올해도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영원한 '진실규명'을 호소했다. 대구 10월항쟁 79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다.(사)1
대구 10월항쟁 79년, 지역 시민단체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항쟁의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국가기념일 지정을 촉구했다.'10월항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정신계승을 위한 시민연대', '시월항쟁예술제 추진위원회'는 30일 오후 10월항쟁 발상지인 대구역 앞 광장에서 '10월항쟁 79주년 진실규명·정신계승 대구경북시도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 채영희 (사)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과 임성종 10월항쟁시민연대 상임대표, 최수환 시월항쟁예술제 추진위원장, 김찬수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 윤금순 대
유달리 꽃을 좋아해 생전 '꽃 할머니'라고 불렸던 대구경북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순악(1928~2010), 심달연(1927~2010) 할머니.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꽃잎들을 꾹 눌러 압화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을 통해 할머니들의 기억들을 엿보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가 대구에서 열렸다.심달연 할머니는 꽃으로 폭탄이 터지는 모습을 형상화해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2007)라는 제목을 붙였다. 심달연 할머니는 "꽃이라 해도 폭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남겼다.풀숲과 파란 하늘을 꽃으로 표현한 뒤 "내 하나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수십만명이 사망하고 부상을 당하거나 방사능 피폭으로 고통을 입은 사람도 수십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20세기 핵무기의 피해자들은 이들에 그치지 않는다. 1945년 지구상 최초이자 최후의 핵공격 이후 미국을 비롯한 공식 핵보유국과 인도, 이스라엘을 비롯한 비공식 핵보유국들은 수많은 핵폭발 실험을 하면서 방사능 오염에 의한 피해를 초래하였다. 핵실험 대상이 된 지역은 방사능으로 오염이 되어 사람과 동식물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 되었고, 핵실험 당시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은 다수가 심각한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70만명이 넘는 사람이 피폭되어 수십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참혹한 비극이 발생한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로 지배받고 있던 조선의 민초들 중에도 일제의 수탈과 강제동원으로 일본의 각 지역으로 강제징용, 징병 등으로 끌려간 사람, 일제와 그 하수인들의 꼬임에 빠져 팔려간 사람, 생존이 어려운 정도의 가난을 겪는 조선을 탈출하여 먹고살 자리를 찾아 일본에 건너간 사람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살고 있었다.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의 숫자는 정확히 알려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아픈 역사를 보듬을 대구 첫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조례가 의회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일본 해저에서 83년 만에 유해가 발견된 조세이탄광(장생탄광) 등에 대한 추모사업 길도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육정미(비례대표) 대구시의원이 대표 발의한 '대구광역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및 추모사업 등에 관한 조례안'에 대해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8일 심사를 통해 전원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대일항쟁기 군인과 군무원, 노무자와 위안부 등으로 강제 동원돼 생명과 신체, 정신과 재산 등에 중대한 피해를 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나도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는데, 아버지 유골은 찾아서 금수강산 대한민국에 모셔놓고 왔다고 해야 할 것 아닌가" 한영용(83.경남 거창) '우키시마호 사건 배상추진위원회' 회장이 4일 대구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한 회장은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24일 일제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을 고향으로 송환하던 '우키시마호' 사건으로 숨진 고(故) 한석희씨의 아들이다. 사건 당시 한 회장의 나이는 3살이었다.한 회장은 우키시마호 생존자이자 아버지의 동료인 고(故) 유경수씨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은 뒤, 1970년대부터 50년이 넘도
조세이탄광(長生炭鑛.장생탄광) 수몰사고 유해 발굴 현장에서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로 추정되는 뼈 4점이 83년 만에 잇따라 나오자, 한국 정부가 "현장 유해 보존"을 요청했다. 행정안전부(장관 윤호중)에 29일 확인한 결과, 행안부는 최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유해 발굴 현장과 유해를 잘 보존해달라는 요청을 외교부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한국 잠수부는 지난 25일과 26일 조세이탄광 유해 발굴 현장에서 수중 탐사를 하던 가운데 치아가 붙은 온전한 두개골 1점과 허벅지 뼈(넓적다리뼈) 1점, 팔 뼈 2점 등 모두 4점의
1942년 일본 해저 갱도 수몰사고로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136명이 잠든 '조세이탄광(長生炭鑛.장생탄광)'에서 83년 만에 유해가 발견되자 유족들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국가가 유해 발굴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일본 장생탄광 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와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은 29일 오후 대구시의회에서 보고대회를 열고 "조세이탄광 갱도 속에서 드디어 인골이 발견되는 역사적인 장면을 우리는 마주했다"며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처절한 증언이자 우리가 응답해야 할 역사의 울부짖음"이라고 했다. 특히 "이 기적은 유족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136명이 수몰된 일본 조세이탄광(장생탄광)에서 또 유해가 발견됐다. 하루 전 희생자 4명의 뼈로 추정되는 유해가 83년 만에 처음 나온데 이어, 유해 발굴 작업 이틀째인 오늘(8.26일) 사람의 두개골로 추정되는 유해가 추가로 나왔다. 일본 바다에 잠든 조선 징용 노동자들의 유해가 83년 만에 하나둘 나오고 있는 셈이다. 유족들과 시민단체는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유해발굴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일본의 시민단체인 '조세이탄광 몰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회'와 한국 시민단체 '장생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136명이 잠든 일본 조세이탄광(長生炭鑛.장생탄광) 바다에서, 오늘(25일) 수몰사고 83년 만에 처음으로 희생자 4명의 뼈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됐다. 일본 시민단체인 '조세이탄광의 몰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회(長生炭鉱の水非常.새기는회.이노우에 요코 공동대표)'와 한국 시민단체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 추진단(대표 최봉태)'은 "25일 오후 2시쯤 수몰사고 현장에서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한일 공동조사를 하던 중 유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난 1942년 2월 3일 야마구
오는 23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21일 요미우리 신문을 통해 보도되면서 그 중 '합의 번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라고 하는 타이틀을 달았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은 19일 오후 서울 청와대에서 요미우리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 응했다. 한일 현안인 위안부·전 징용공(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 소송 문제를 놓고 한국의 과거 정권이 일본과 맺은 합의에 대해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답습할 뜻을 강조했다."(韓国の 李在明イジェミョン
취임 후 첫 한일 정상회담(8.23일)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이 한일 과거사 중 가장 민간한 '한일 위안부 합의'와 '일제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국가 간 약속을 뒤집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해 파장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은 21일 공개된 일본 와 단독 인터뷰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질문에 "가능한 한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대립적이지 않도록 해결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또 "한국 국민으로서 전 정권과의 합의는 매우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국가로서의 약속아니겠냐"며 "위안부 합의 및
"아버지"세 살 아들 영용이가 83살이 되었습니다.저도 이제 아버지를 만나러 하늘나라에 갈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유골조차 아직 못 찾고 있으니 아버지를 만나서 '나만 왔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아버지" 아버지 유골은 대한민국 땅에 꼭 모셔 놓고 가겠습니다. 그래야 아버지도 나라가 있는 줄 아시겠지요. 아버지 계시는 곁으로 갈 때 꼭 그 이야기는 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2012년 5월 마이즈루 해저에 있는 유골을 조사하러 사비를 털어 수중 조사를 했지만 아직 유골을 찾지 못했습니다."아버지"최근 한국에서는 '우키시마호'
단 6명. 우리 곁에 남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이다. 국내에 등록된 240명 피해자 가운데 234명이 일본으로부터 사죄나 배상을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살아있는 피해자들도 모두 95세를 넘겼다. 할머니들의 시계는 빠르게만 흐르고 있다.이 가운데 앞서 8.15 광복 80주년 이재명 대통령 경축사에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노동자' 등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대 아픔을 겪은 '한일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오는 23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둔 이 대통령의 상대국 '배려'라는 평가가
올해로 아흔일곱 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며 "일본에 배상을 꼭 받아내달라"고 호소했다.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지 34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은 받아내지 못했다.그 동안 정권이 여러 번 바뀌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올해까지 오자 이용수 할머니는 "이재명 대통령님 들리십니까. 저는 14살에 끌려가 대한민국을 찾은 이용수입니다"라고 소리쳤다.(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대표 서혁수)은 9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사흘 뒤인 9일 나가사키에도 떨어졌다. 일본 제국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미국의 반격이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한 원폭 투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피폭의 아픔은 80년 지난 지금까지 1세대에 이어 2, 3세대까지 대물림되고 있다. 당시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강제징용노동자들을 비롯해 유학생, 이주민, 일반 근로자 등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살던 많은 한국인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대구지역의 경우 경상남도와 부산에 이어 전국에서 원폭 피해자가 3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지 34년이 흘렀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전국의 생존자들이 잇따라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국제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알려졌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는 진정한 사과와 손해배상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그 동안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40명 중 이제는 6명밖에 남지 않았다. 대구경북에는 올해로 아흔일곱 살 이용수·박필근 할머니 두 분만이 생존해 있다. 피해자들은 "남은 시간이 없다"며 "문제 해결"을 외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6.25 한국전쟁' 정전(停戰)협정을 체결한 지 올해로 72년이다.남북은 오랜 세월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평화로 나아가는 대화의 물꼬조차 트지 못하고 있다.윤석열 정부 3년 내내 경색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정전이 아닌 종전으로 가기 위한 평화를 기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시민단체는 이재명 정부를 향해 "전쟁을 끝내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했다. 대구경북자주통일평화연대와 대구경북겨레하나, 평화통일실천연대 등 26개 단체가 참여하는 '광복 80주년 대구경북 8.15대회 추진위원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