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연주자 "베누스토"

평화뉴스
  • 입력 2004.03.1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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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유일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베누스토’
...음악으로 시민과 만나는 열린모임

50여명이 모여 앉자, 우아하고 아름다운 '베누스토'의 연주가 펼쳐진다.
50여명이 모여 앉자, 우아하고 아름다운 '베누스토'의 연주가 펼쳐진다.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한 음악연습실에서 웅장한 합주가 펼쳐진다.
바이올린, 플룻, 트럼펫, 첼로, 호른, 클라리넷, 섹소폰...
머리가 희끗한 지휘자를 중심으로 고등학생, 대학생, 30대 주부, 50대 장년층까지, 50여명의 사람들이 악기를 하나씩 들고 둘러앉았다.

“베누스토 대구 팝스오케스트라”...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아마추어 합주단

순수 아마추어들이 모인 ‘베누스토 대구 팝스오케스트라’
“베누스토”는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뜻의 이태리어.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이 모여 있으며, 학생, 직업군인, 교사, 간호사, 주부, 퀵서비스맨, 회사원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악기도 다를 줄 모르고, 악보에도 익숙하지 않지만 오직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클라리넷 연주를 시작한 이정호(41) 교수(대구대 생물교육)는 음악에 대한 참여 자체가 처음이다. 그는 “과연 나도 연주를 할 수 있을까 많이 망설였어요. 지금은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학원 강사인 정희정(31)씨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바이올린을 다루고 싶어, 5년 가까이 대구의 음악 모임을 찾아다녔다. “그동안 음악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말랐어요. 직장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지만 누구에게 배우는 것보다 더 빨리 실력이 늘어요. 합주는 다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배려도 배울 수 있죠. 이젠 음악이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신재경(28)씨 역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베누스토’에서는 트럼펫 연주자로 변신한다. “악기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어 더욱 좋다”는 신씨.

지난해 8월 온라인 모임으로 시작...회원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열린 모임

문화의 불모지로 인식되는 대구에, 시민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전국에서도 이러한 모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해 8월, 온라인 카페에서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 지금의 ‘베누스토’가 만들어졌다. 첫 모임에 10명이 참석했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 카페회원은 900여명, 오프라인 회원만 80여명으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다.

베누스토에서 일상의 활력을 얻는 아마추어 연주자들.
베누스토에서 일상의 활력을 얻는 아마추어 연주자들.


전문 음악가들이 연주를 위해 모였다가 끝나면 흩어지는데 비해, ‘베누스토’는 인간적인 교류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회원들이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평일에 하는 악기별 연습은 버스가 끊길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며, 초보자들도 3~5개월만 연습하면 충분히 전체 합주에 합류할 수 있을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합주 연습에는 결석도 지각도 없다. 6시면 어김없이 전체 합주가 시작되고, 다른 연령과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

4월 4일 ‘베누스토’ 첫 단독 공연...음악으로 대구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

생기 넘치는 ‘베누스토’에도 고민거리는 있다. 회원들의 회비만으로 연습실을 운영해왔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회비로는 연습실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6개월치 회비를 미리 내는 사람도 있고, 집의 물건들을 기증하는 사람들도 많다. 연습실의 물품들은 전부 회원들이 각자의 가정에서 가져와 마련했다.

더 나은 연습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홍보간사 류은영씨.
더 나은 연습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홍보간사 류은영씨.

류은영(28) 홍보간사는 “함께 음악을 배우고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원들은 고마워한다. 하지만 회원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연습하고,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스폰서 등 외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한다.

연습 환경이 비록 열악하지만 ‘베누스토’ 회원들은 요즘 갈수록 신이 난다.
올 2월, ‘경북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오프닝 행사’에서 첫 공연을 가진 뒤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3월 23일에는 대구대에서 공연을 한 뒤, 4월 4일에 마침내 대백프라자에서 하는 첫 단독 공연을 앞두고 있다.

전공자조차도 졸업 후 연주하기 힘든 대구의 문화 현실 속에서 ‘베누스토’는 시민들과 함께만들어가는 공연을 가장 큰 목표로 잡고 있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선율에 묻어난다.

* 베누스토 대구 팝스오케스트라
(http://cafe.daum.net/venusto, 053-621-9719)


글.사진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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