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하라"

평화뉴스
  • 입력 2007.04.1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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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성의전화] 창립 20년.
87년 '애린회'에서 '주식회사 유치패밀리'까지..

창립 20주년을 맞은 [대구여성의전화]...(앞줄 왼쪽부터) 이두옥 대표, 김진명 활동가, (뒷줄) 윤은희 상담부장, 양숙희 활동가, 허복옥 사무국장 대행, 권옥빈 조직부장, 정주연 인권부장.
창립 20주년을 맞은 [대구여성의전화]...(앞줄 왼쪽부터) 이두옥 대표, 김진명 활동가, (뒷줄) 윤은희 상담부장, 양숙희 활동가, 허복옥 사무국장 대행, 권옥빈 조직부장, 정주연 인권부장.

대구시 남구 봉덕동 [대구여성의전화]를 찾아간 날, 사무실은 시끌벅적했다.
올해 창립 20주년 행사 때 상영할 영상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잔칫집 분위기'에 들이닥친 기자에게 캠코더를 내밀며 자신들을 찍어달라고 함박웃음을 짓는 그녀들. 그녀들의 웃음 속에 지역 시민단체로 20년을 살아온 건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두옥 [대구여성의전화]대표는 단독장면을 찍기 위해 딸 나이 또래의 활동가가 시키는 동작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렇듯이 다양한 연령이 함께 활동하는 [대구여성의전화]가 20주년을 맞아 이 대표를 비롯한 활동가들과 [대구여성의전화]의 지난 20년에 대해 ‘상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머니 같이 온화한 얼굴로 이 대표는 "여성이 먼저 가정과 직장에서 당당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드센 여성으로 보일지라도 '자기를 긍정하는 힘'은 바로 '여성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대구여성의전화]는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을 지원하는 여성인권운동단체다.
여기엔 20년간 여성인권운동을 해온 이두옥 대표도 이제 갓 발을 내딛은 20대의 활동가도 있다.

이 대표는 "상처받은 여성은 과거, 안 좋은 기억에 스스로 억압받은 채 살아가요. [대구여성의전화]는 그들의 과거까지 따뜻하게 감싸고 보듬으려 해요"라고 말했다.

지난 87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매 맞는 여성을 위해 '애린회'란 이름으로 시작한 [대구여성의전화], 그때 회원은 8명이었다. 그 뒤 89년 상담사업을 시작하고 92년 3월에는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은신처인 '쉼터'를 만들었다. 같은 해 11월 [대구여성의전화(애린회)]로 명칭을 바꾸고 '성폭력대책 대구시민단체협의회'를 꾸렸다. 94년 성폭력특별법, 97년 가정폭력방지법, 2004년 성매매방지법 입법을 이끌어냈다.

[대구여성의전화]는 해마다 5월을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로 정해 양성평등교육과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대구의 한 구.군이나 동네를 '성 평등 마을'로 선정해 지역여성과 많은 얘기를 나눌 예정이다.
회원수는 20년 동안 크게 늘어 38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대구지역의 보수성으로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역대학 K교수가 2000년 제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다. 가해자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단체를 고소하고 다시 이 단체가 교수를 역고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이들 단체는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지역 일부신문은 보도태도는'유죄'판결로만 기사를 냈다. 다시 말해 '성폭행 가해자 실명공개'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보다 '성명서 일부내용이 허위사실'에 대한 '유죄판결'로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5년간 힘든 싸움이었어요. '무죄'라고 선고될 때 우리 모두는 뛸 듯이 기뻤죠. 그러나 대구에 일부 신문들의 보도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더군다나 대구에서는 '여성운동 한다'고 하면 '설치는 여자'라고 보잖아요. 하지만 몇몇 뜻있는 분들의 도움이 컸어요. 이번 20주년 행사는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이 대표는 또 무죄판결이 난 해(2005년) 있었던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대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한사람이 아픈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듣던 사람들도 하나둘 힘든 고백을 하기 시작했어요. 비공개로 이뤄진 자리에서 모두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는 시간이 됐던 것 같아요."

20주년 행사 때 상영할 영상...이두옥 대표가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윙크하고 있다.
20주년 행사 때 상영할 영상...이두옥 대표가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윙크하고 있다.



이번 20주년 행사는 오는 4월 20일 저녁 7시 문화웨딩홀에서 열린다. 슬로건은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하라'.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이유를 물어봤다.

'우리가 할머니나 어머니의 삶을 살아보진 못했지만 상상할 순 있잖아요. 사고의 전환이죠. 또 내 딸과 아들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세상을, 미래를 기억하려 한다는 거고요.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는 게 아니라 차별과 폭력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그려나가려 합니다."

특히 이번 20주년 행사에는 4월로 활동을 접는 조윤숙 사무국장을 포함한 [대구여성의전화] 회원 5명이 '주식회사 유치패밀리'라는 이름으로 아마추어밴드공연을 한다. 2005년부터 틈틈이 연습을 해왔다는 그녀들은 모두 지역에서 '멋진 여성'들로 통한다. 보컬은 동화작가 차정옥씨가 하고 키보드는 연극인 손병숙씨, 베이스는 전 사무국장 고명숙씨, 드럼은 사무국장 조윤숙씨가 맡았다. 10년 지기 선후배사이인 이들은 '정기공연 전에는 절대 선보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깨고 [대구여성의전화] 20주년을 맞아 특별히 회원들에게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인다.

주식회사 유치패밀리? 유치한 가족이란 말인가? 주식회사는 또 뭔가?

조윤숙 사무국장이 밴드이름을 설명했다.
"먹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주식'회사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또,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행동이나 말이 얼마나 유치해요? 하지만 그 유치함이 갖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이라는 뜻의 '패밀리'가 합쳐져 '공동체'란 의미도 가지고 있어요.”

이 단체에는 건강한 소모임이 많다. 4,50대 회원들의 모임 [사오정]도 있고, 매달마다 지역방송이나 전국방송을 모니터링 하는 [네잎찬: 수다로 찾는 괜찮은 방송]모임도 있다. 네잎찬이란 '괜찮은 프로그램의 네 가지 기준(현실성, 창의성, 공익성, 지역성)을 칭찬한다'란 뜻이다. 이 모임은 드라마나 쇼.오락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여성비하', '성상품화'를 비판한다. 특히 두 달에 한번씩 이 기준에 맞는 '괜찮은 프로그램'을 선정해 발표하기도 한다.

활동가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집단상담이나 중심성격을 파악하는 심리검사가 그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누가 어떨 때 화내고 기뻐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녀들은 이 단체를 만난 지금이 '내 인생의 최고'라고 손꼽는다.
또 자신들이, 여성으로 잘 성장할 수 있게 '선택받은 여자들'이라고 했다.
서로 부족함을 보듬고 감싸주는 '그녀들', 그녀들이 [대구여성의전화] 20년을 이어온 '힘'이 아닐까.

사무실을 나서며 그녀들이 준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글.사진 평화뉴스 오현주 기자 pnnews@pn.or.kr / uterin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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