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의 비밀"

평화뉴스
  • 입력 2006.11.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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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최경화(영남일보 객원기자)
“콩알을 옮겨담던 Y, 엄마는 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언젠가 늦둥이 엄마들이 애 학교 보낼 즈음에 얼굴에 보톡스 주사를 맞는다는 기사를 봤다. 자칫 쳐진 피부에 뒤쳐진 패션으로 아이와 동행했다가는 할머니 소리 듣기 십상이라서, 보톡스 주사를 맞아 쳐진 피부를 당기고 간혹은 볼에 지방을 살짝 넣어 통통하게 보이게하는 시술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나역시 늦은 나이에 아이를 둔터라 ‘아이가 학교갈 때 즈음에는 나도 보톡스 주사 한대 맞아야하는거 아닌가? 볼에 지방을 넣어 통통하게하면...?‘하면서 거울을 보고 볼을 부풀려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만난 Y는, 젊음과 아름다움의 열쇠라고 생각했던 보톡스에 가슴아픈 비밀이 숨어있었음을 알려주면서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당연한 듯 무심하게 살아온 나를 부끄럽게 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팔자(?)에도 없는 신문사 객원기자가 된지 7개월째.
그동안 영혼이 아픈 아이들, 몸이 아픈 아이들, 정신이 아픈 아이들.. 그리고 아픈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도인(道人) 아니면 폐인(廢人)이 되었을 많은 엄마들을 만났다. 그 와중에 만난 아이가 Y다.

Y는 태어나면서 세균감염으로 뇌병변을 앓는 아이로 지금 10살이다.
옮겨다닐 때마다 배밀이를 해야하는 Y는, 걷는데 도움이 될까해서 지난해 여린 다리를 절단해서 다시 붙이는 대수술을 받았다. 워낙 천성적으로 밝고 명랑한 아이라서 회복기를 잘 이겨낸다고는 하지만, 어른도 참아내기 힘든 수술과 통증을 10살짜리가 참아내면 얼마나 참아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이는 육체적인 고통을 ‘걷는’ 희망으로 바꾸어내는 강단을 보였다.

그러던 중에 Y가 보톡스 주사를 맞았다.
얼굴의 주름살을 펴기 위해서가 아니라 뇌병변에 수반되는 뒤틀린 팔과 굳은 손가락을 펴기 위해서였다.
처음에 담당의사는 Y가 10살이나(?) 돼서 보톡스 주사를 맞아도 팔과 손가락이 펴질 정도가 적다고 판단, 주사 한대에 80만원이나 하는 비싼 보톡스를 굳이 맞힐 필요가 있겠냐며 만류했다. 그러나 Y의 엄마는 아이에게 보톡스 주사를 놔주고 싶었다. 효과가 적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을 테고 부드러워진 육체의 느낌을, 자신감을, 희망을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오전 9시에 Y는 보톡스 주사를 맞았다.
기다란 주사는 팔과 손가락에 표시된 여덟군데 여린 살을 파고들었다.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Y는, 그 주사가 어떤 주사인지 아는 어린 아이는, 어른도 견디기 어려운 그 고통을 참아냈다.

접종후 10시간이 지난 오후 7시, Y가 “엄마, 내 팔 좀봐, 엄마, 내 손가락 좀봐”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뒤틀린 팔이 펴지고 굽었던 손가락이 펴지면서 콩알 하나를 집을 수 있게 된 Y는 다음날 그릇 가득담긴 콩알을 하루종일 이리 저리 옮겨담았다. 기뻤던 것이다.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10살이 될 때까지 엄마가 떠먹여주고 엄마가 씻겨주었을 Y가 펴진 팔과 손가락을 보면서 얼마나 좋아했을까, 생각하면 그 모습을 지켜본 Y의 엄마는 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느껴진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뇌병변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한 엄마가 줄기차게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탄원서를 올렸다.
있는 여자들은 주름살을 펴려고 수시로 맞는 보톡스지만 우리 애들은 보톡스를 안맞으면 팔이 뒤틀리고 손가락이 굽은 채로 굳는다, 가격을 내려서 우리 애들이 꼭 맞아야하는 보톡스 주사를 가정형편 때문에 맞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엄마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가격이 절반이나 내렸지만, 보톡스 주사는 여전히 한대에 40만원이나 한다.
보톡스의 효과가 겨우 3개월이라서 아이는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 3개월마다 40만원의 여유돈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일.. 그래서 Y는 지금 다시 팔이 돌아가고 다시 손가락이 굳어가고 있다. 어린 마음에 펴졌던 팔이 다시 뒤틀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드러워졌던 손가락이 조금씩 굳어가는 걸 느끼면서, 어린 마음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밝게 웃던 Y가 생각난다. 개구쟁이였다.
환하게 나를 향해 웃어주던 그 어린 마음이 살면서 다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나는 이 애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거울을 본다.
원래 가꾸는 걸 천성적으로 못하는데다 가꾸어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인 탓에 행여 보톡스 주사를 맞았을까만은, 그날 이후로 내 얼굴 여기저기에 편하게 자리잡은 주름살이 그런대로 안심이 된다. 40만원의 여유돈이 없어서 굳은 팔과 손가락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이땅의 Y들,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내 이성의 최소한의 징표일테니 말이다.

덧붙여, 보톡스가 의료목적으로 사용될 때는 의료보험이 적용되길 촉구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못걷는 아이가 어느날 벌떡 일어나서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에 국가의 역할이 있을 터, 돈을 들여서 개선될 수 있는 장애가 있다면 국가가 당연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그 누구도, 장애를 선택해서 태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말 에세이 20]
최경화(영남일보 객원기자)

* 최경화(40)씨는, TBC대구방송과 PBC평화방송 작가로, SCN성서공동체FM PD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영남일보 객원기자로 글을 쓰며, 경북대 비정규교수로 사회학과에서 ‘매체예술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6년 11월 1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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