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토지 백지신탁제 필요하다

평화뉴스
  • 입력 2008.04.0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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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17대국회 발의, 폐기될 운명...'강부자' 논란 잠재울 대안


대한민국에서는 부동산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법이 부동산 소유를 금하는 것도 아니고 나만 뒤처질 이유가 없으니, 너도나도 부동산 경쟁에 뛰어들었다. 상류층일수록 자금과 정보가 많아 알짜 부동산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위 공직자의 재산이 공개될 때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갓 성립한 이명박 정부에 새로 자리를 얻은 고위 공직자도 예외가 아니다. 중요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투기 목적이 아니었다”고 해명하거나 심지어 “땅을 사랑하기 때문에 매입했다”는 어이없는 해명도 했다.

하지만 여론은 이런 해명을 흔쾌히 수용하지 않는다. 국민의 마음에는 부동산 불로소득은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 정서나 제도 중 적어도 하나는 잘못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고위공직자 부동산 투기의혹 곱잖은 시선

부동산 불로소득은 주로 토지에서 생긴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낡고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불로소득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토지에 국한해서 생각해 보자. 토지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생산물이 아니다. 국토는 국민 모두에게 하늘이 준, 유한한 삶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토지를 소유한다는 사실만으로 불로소득을 얻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는 데 특별한 지능이나 도덕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상식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실수요와 무관한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단순히 부러움과 시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미 고위 공직자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사람이 젊어서부터 자신이 고위 공직자가 될 때를 대비해서 부동산 재테크를 삼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문제는 이런 행위를 허용하는 제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제도를 상식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토지불로소득을 차단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며, 그 최선의 방법은 토지보유세의 강화다.


취임때 토지신탁... 선택은 본인에게

이런 완벽한 장치가 상당 기간 계속된다면 부동산 때문에 의혹이 생기는 일은 사라진다. 그러나 그 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위 공직자 재산이 공개될 때마다 비난과 변명을 되풀이 할 건가? 그 자체로 소모적일 뿐 아니라 그러다가는 고위직 인재 풀이 빈약해질 수도 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투기 목적이 아니었다”는 당사자의 변명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국민정서에 맞도록 재산 상태를 세탁(?)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구체적으로는 토지 백지신탁제도를 두자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가 취임 시에 실수요 아닌 토지를 신탁하도록 하되, 과거 그 토지를 매입했을 당시의 시가의 원리금과 신탁 시점의 시가 중 적은 금액을 신탁한 것으로 간주한다. 당사자도 투기 목적이 아니라고 하므로, 이렇게 해도 불만이 없어야 해명의 설득력이 있다. 퇴직 시에는 신탁액의 운용 결과를 내준다. 또 신탁 시점부터 퇴직 후 2년간은 실수요 아닌 부동산을 취득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만 하면 과거의 투기 의혹도 해소되고 공직 취임 후 펴는 정책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도 줄일 수 있다.


공직자 덕목보다 재산 중시한다면 "자격없다"는 증거

그러나 획기적인 제도가 나올 때마다 위헌론이 제기되는 것이 이제는 관행이 되다시피 하였다. 토지 백지신탁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토지수용과 다름없으며 따라서 재산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실제로 제기될 것이고 실제로 제기된 적도 있다. 이런 위헌론마저 잠재우려면 토지백지신탁을 선택 사항으로 하면 된다. 백지신탁을 할 수 있는 제도만 만들어 두고 본인의 선택에 맡긴다는 것이다.

선택제로 해서 효과가 있을까 우려하는 분도 많겠지만 필자는 괜찮을 것으로 본다. 고위 공직자의 필수 덕목에는 능력과 함께 도덕성이 빠지지 않는다. 도덕성보다 재산을 더 중시하여 백지신탁을 원하지 않는다면 고위 공직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증거가 된다. 따라서 의혹이 있는 토지를 백지신탁하지 않고 공직에 취임한다면 상당한 도덕적 비난이 일어 취임과 백지신탁 중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임명권자도 여론 앞에서 난감해 할 것이다. 또 일단 이런 제도를 두기만 하면 임명직이 아닌 국회의원, 대법관, 헌법재판관도 백지신탁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이미 17대 국회에서 지병문 의원이 대표로 발의해 둔 제도지만 이제 국회가 파장이어서 자동 폐기될 운명에 놓여 있다. 새 국회에서는 반드시 제도화되기를 기대한다.


<김윤상 칼럼 10>
김윤상(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법과대학 행정학과 )



(이 글은, 2008년 3월 31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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