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앞에 자유롭지 않은 기자들” - 교육저널 강성태 대표

평화뉴스
  • 입력 2004.09.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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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권력앞에서도 언론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터넷 언론들이 생겨나기 이전인 불과 몇 년전만해도 절대 그렇지 못했다. 재정적으로 넉넉치 못한 지방 언론사에게서 그런 자유를 찾기는 더욱 힘들었다. 왜냐하면 지역마다 대기업들이 연간 수십억원대의 광고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도 일부 언론사들이 갈등을 겪고 있는 경영권과 편집권의 분리가 요원했기 때문에 인사권을 가진 경영주가 편집에도 상당부분 관여하면서 그를 통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뤄진 불법이 비일비재 했기 때문에 권력에 대해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1999년 여름, 울산광역시에 위치한 U일보에서 사회부 기자로 근무할 때였다. 당시 필자는 동구지역 일대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각 구청마다 10여개 안팎의 언론사 기자들이 기자실에 출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실에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출입하고 있었는데 바로 대기업의 홍보담당 직원들이다.

그중 H기업 홍보직원들은 2일 주기로 한번씩 기자실을 들러 홍보자료를 가져다 주면서 기자들과의 친분을 쌓아 갔고, 1주일 간격으로 회식을 갖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H기업이 연간 회사의 이미지 광고만 1천억대를 뿌려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회사에서 나오는 홍보자료는 여과없이 기사화됐고, 왠만한 문제거리는 눈감아주는게 관례화되다시피 했다.

이 거대 기업에서 환경법을 위반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것도 일반 회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물량의 폐기물을 불법 처리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현장을 단독으로 취재한 결과 15t 트럭의 8천대 안팎의 산업폐기물이 하나의 산처럼 위장처리돼 있었다.

특종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상대인만큼 혼자힘으로는 왠지 ‘보이지 않는 권력의 벽’에 부딪힐 것 같아서 이 기사를 풀기사(하나의 기사를 각 언론사에서 일제히 보도하는 것)로 돌리기로 했다.

기자실에서 기사를 작성한 후 방송사 기자들을 비롯한 10개 안팎의 출입기자들에게 일제히 기사를 돌렸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와 편집국장과 회의를 거쳐 기사를 송고했는데 2시간여쯤이 지난 마감시간 무렵 이미 송고한 기사가 사라져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H기업에서 손을 쓴 것이었다. 당시 데스크였던 C부장과 앞서 동구청에 출입하면서 이 회사와 친분을 갖고 있던 L모기자가 마감시간이 임박 할 무렵 기사를 아예 빼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대 광고주이자 막강한 힘을 가진 H기업과 혼자서 싸워봤자 이길 수도 없거니와 오히려 신문사에 큰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한참의 논란이 있었지만 기자실에서 풀기사로 다뤘기 때문에 내일이면 다른 언론사에서도 일제히 보도될 것이라는 필자의 설명에 겨우 기사를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U일보를 제외한 여타 언론사에서는 이와 관련한 일체의 기사는 보도되지 않았다. 오히려 홍보성 기사가 실린 곳도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미 기사가 보도됐는데도 속보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수천만원 상당의 대가성 광고제안도 들어왔으며, 관할관청인 동구청 역시 조용히 마무리 하자는 쪽으로 필자를 회유하기도 했다.

그렇기도 한 것이 당시 폐기물 처리단가가 t당 2만원이 넘었는데 15t 트럭의 8천대분이면 어마어마한 처리비용이 든다. 무엇보다도 회사 이미지 광고로만 연간 천억대를 뿌려대면서 환경친화기업으로 알려진 H기업으로서는 상당한 타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같은 내용의 기사를 3일 연속 속보로 내보내고서야 구청에서 처리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구청에서는 환경법을 위반한 업체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에 형사고발토록 돼 있는데 이 것만은 봐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와 관련된 기사를 5번씩이나 내보내고서야 H기업 대표를 형사고발하는 원칙아닌 원칙처리를 하게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풀기사로 돌린 기사가 왜 여타 언론에서는 보도되지 않았는가에 대해 뻔히 들여다보이는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또 불법을 저지른 대기업에 대해 마냥 관대하려만 한 구청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정말 심증은 가지만 풀지 못한 숙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구청장이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부구청장이 청장을 대행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민선시장에 당선됐다는 것이다.

대한매일신문사 등 일선에서 10여년동안 현직 기자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기사로 보도되지 못했거나 풀지못했던 의문들을 독자들과 함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또한 관행화된 기자들의 보이지 않은 특권의식과 그에 따른 사회풍토, 그리고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기자에게 뿌려되는 수백만원의 취재비...

교육저널 강성태 대표(stkitty@hanmail.net)

* 강성태 대표는, 지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대구경북과 울산지역에서 기자 활동을 했으며, 오는 9월 20일 월간 [교육저널]을 창간호를 펴냅니다. 평화뉴스 [기자들의 고백]을 보고 서울에서 글을 보내왔으며, 필자의 뜻에 따라 원문을 그대로 싣습니다. [교육저널]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19-2. 하이센빌딩 405호 (02-541-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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