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참사 부르는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현장

민중의소리 구자환 기자
  • 입력 2012.07.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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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주민, 한전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영광스럽게 받겠다"


밀양 보라마을 이치우씨의 분신이후 중단됐던 765Kv 고압송전탑 공사가 재개되면서 불상사도 우려되고 있다.

몇몇 주민은 수차례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며 마을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에 반해 시공사측은 주민과의 충돌을 피하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나타냈지만, 공사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공사경비도 늘어나게 되어 누적손실을 계속 감당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주민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공사를 계속 미룰 수 없다는 결론이고 보면 임계점에 달하면 시공사와 주민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시공사측은 한국전력이 빨리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송전탑 건설을 두고 한국전력과 정부는 지금까지 공식적인 대화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한편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의 밀양방문이 추진되고 있지만,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주민들은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놓고, 협의를 하자는 것은 협박 아니면 공사를 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라는 것이 주민들의 입장이다.

지경부 장관과 주민의 만남에는 또 다른 장애물이 있다. 주민들은 ‘4개면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 4명과 ‘이치우열사분신대책위’ 등 5인을 주민대표로 선정하자는 입장인 반면, 지경부는 주민대표를 1인으로 하자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한국전력으로부터 송전탑 공사를 수주한 동양건설은 주민 분신사태 이후 시공사를 대동건설에서 (주)화운비나로 교체하고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 동안 침묵하던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들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천막을 설치하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그 동안 침묵하던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들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천막을 설치하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밀양 용회마을 전경. 마을과 인접한 우측산에는 100번 송전탑이, 좌측산에는 101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구자환 기자
밀양 용회마을 전경. 마을과 인접한 우측산에는 100번 송전탑이, 좌측산에는 101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구자환 기자
 
침묵하던 단장면 주민들, “죽기 살기로 송전탑 막아내겠다”

4일 찾은 밀양 단장면 용회동 마을은 주민 20여명이 마을 입구에서 천막을 치고, 차량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들 대다수는 80세를 전후한 할머니들이다.

이곳 주민들은 이치우씨의 분신이후 마을회의를 통해 765kv 송전탑을 저지하기로 뒤늦게 결정했다. 표충사로 이어지는 길목에 접한 이 마을 뒷산에는 100호 송전탑과 101호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용회동 주민은 지난 6월8일부터 마을 입구에 천막을 설치하고 24시간 동안 교대로 공사차량을 감시하고 있다. 이날 오전 8시30분께는 시공사 관계자 6명이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모습을 드러냈다가 주민과 실랑이를 벌였다.

송 모(57세)씨는 “송전탑이 너무 마을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막을 것”이라고 했고 또다른 할머니는 “(한전이) 사람을 시달려(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어) 죽이려 한다”며, “우리는 늙어서 오갈 데도 없고 이 마을이 직장”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는 35가구가 살고 있다.

천막에 머물고 있는 할머니들은 “고추와 깻잎, 대추 등 작물을 돌봐야 하는데, 이곳까지 오고 가고 하는 시간이 많이 걸려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용회마을 이장은 이날 저녁 촛불집회에서 “뒤늦게 투쟁에 가담해서 미안하다”며 “부북면과 상동면 주민의 투쟁을 보면서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결심을 주민들이 내렸다”고 말했다. 또,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 가서 보니 온 산천에 철탑뿐이고 그날 잠이 안 오더라”며, “뒤늦었지만 한층 더 굳게 투쟁을 하려고 주민들은 마음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109번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상동면 이장들이 지켜보고 있다. 주민들은 5일 공사를 저지할 예정이다.ⓒ구자환 기자
109번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상동면 이장들이 지켜보고 있다. 주민들은 5일 공사를 저지할 예정이다.ⓒ구자환 기자
송전탑 127번이 예정지에 시공사 인부들이 포크레인으로 기초작업을 하고 있다. 시공사는 헬리콥터를 이용해 건설장비를 운반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송전탑 127번이 예정지에 시공사 인부들이 포크레인으로 기초작업을 하고 있다. 시공사는 헬리콥터를 이용해 건설장비를 운반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상동면 주민, 험한 산속에 통행길 만들며 송전탑 저지
시공사 관계자, 주민과의 충돌 피할 것... 한국전력이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3일 오전에 헬리콥터로 공사 장비를 공수한 109번 송전탑 건설지는 밀양시 산내면 희곡리와 상동면의 경계지점의 깊은 산속에 있다.

희곡리에서 차량을 이용해 10여분 가량 중턱으로 이동 한 후 성인 남성이 산 정상을 향해 직선으로 30여분 부지런히 걸으면 108번 송전탑 건설지가 나온다. 여기에서 다시 약 10여분 걸으면 109번 송전탑 건설지에 도착할 수 있지만, 산세가 가파르고 수풀을 헤치면서 올라야 한다.

108번 송전탑 건설지는 제법 굵은 소나무들이 잘려진 채 방치되어 있고, 수풀 대신에 황토색 흙을 드러낸 산야에 포크레인 한 대가 놓여 있다. 그 위로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움막이 버티고 있다.

능선을 넘어서면 109호 송전탑 예정지가 눈에 들어온다. 시공사 직원들은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하고 있고, 상동면 5개 마을 이장들은 현장을 지켜보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박영규(56세) 도곡리 이장은 “3일 오전에 헬리콥터에서 무언가를 내리는 것을 보고 확인하기 위해 상동면에서 1시간 30분 동안 걸어 산을 올라 왔다”며, “내일은 주민 50여명과 다시 와서 공사를 막겠다”고 했다.

굳은 모습으로 공사현장을 지켜보던 여수리 마을 이장은 “대한민국은 공산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나라인데 정부에서 말없이 재산을 빼앗는데 누가 보고 있겠느냐”며, “산을 팔 생각도 보상금을 받을 생각도 없지만 5만 4천평의 임야에 송전탑을 세우면서 보상금으로 190여만원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몇 백년 동안 조상이 살아 온 곳이고 땅을 내 주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못살게 된다”며, “주민들은 죽음이나 몸을 안 아낀다. 사람은 언제 죽어도 죽는다. 죽어도 떳떳하게 죽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화운나비 현장소장은 “공사를 하기 위해 자재를 쌓을 공간을 만드는 사전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사기간이 길어지면 비용이 늘어나게 되어 어렵게 된다. 내일도 공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어르신들이 이렇게 나서는 것이 우리도 안타깝다. 주민과 충돌을 할 생각은 없고, 충돌할 상황이 되면 물러서거나 다음날 다시 와서 공사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도 주민의 환영을 받으며 일하고 싶다. 주민과 우리가 싸울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문제인 만큼 한국전력에서 빨리 해결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령의 부북면 주민 3명이 움막에서 생활하며 송전탑 공사를 감시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고령의 부북면 주민 3명이 움막에서 생활하며 송전탑 공사를 감시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고령의 부북면 주민 3명이 움막에서 생활하며 송전탑 공사를 감시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고령의 부북면 주민 3명이 움막에서 생활하며 송전탑 공사를 감시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부북면 주민들, 10억 손배소송에 “영광스럽게 받겠다”
전원개발촉진법 헌법소원제기... 공동변호인단 구성


송전탑 126번, 127번, 128번이 들어설 예정인 부북면 역시 주민들이 송전탑 진출입로에 천막을 설치하고 쇠사슬로 도로를 차단한 채 감시를 하고 있다. 127번 송전탑 예정지의 숲속 움막에도 변함없이 고령의 노인들이 기거를 하며 감시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이남호 이장을 포함한 주민 3명에게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에게 금 10억원 및 이에 대한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로부터 이를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장을 법원에 냈고, 주민들은 3일 소장 부본을 전달받았다.

이보다 앞서, 한국전력은 주민 10명에게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면서 “이남호 이장외 10인에게 위반행위가 지속되는 동안 1일 1백만원의 비율에 의한 돈을 채권자에게 지급하라”는 청구도 동시에 했다.

이에 대해 부북면 주민대책위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상태다. 또한, 전원개발촉진법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765 송전탑 무효소송도 제기한다는 입장이다.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관련해 이남호 이장은 “한전이 돈으로 짓누르려고 하지만 우리는 더 강하게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부북면에만 소송이 집중된 것에 대해 “우리에게만 소장을 보낸 것이 다행스럽다”며, “부북면이 없어져도 다른 면이 살면 밀양은 살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주민은 “죽을지도 모르는데 100억이라도 청구해라. 영광스럽게 받겠다”고 말했다.

127호 송전탑 예정지 움막에서 만난 손희경(77세)는 “예전 싸울 때 생각하면 눈물이 나서 말을 못 하겠다”며, “웃대 조상들도 고향을 지키며 살았고, 나도 평생 동안 여기서 살았는데 마을을 빼앗기면 죽어서 어떻게 조상을 보느냐”고 말했다. 손 할머니는 다른 두 명의 할머니와 함께 2박3일 동안 움막에서 감시를 하고 교대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서 ‘이치우열사분신대책위’는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1만원에서 20만원까지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고, “100만원을 보낸 익명의 후원자도 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영남루 앞에서 열린 42번째 수금 촛불문화제에는 4개면 주민과 초록농활활동 중인 성균관대 학생 등 100여명이 참가했다.

[민중의소리] 2012-07-05 (민중의소리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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