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의 성찰과 자기혁신이 관건이다”

평화뉴스
  • 입력 2005.02.2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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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의 시사칼럼 55>
...“부끄러운 교육계,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야”


요 며칠 필자는 무척 착잡하고 또 황망하게 지냈다.
교육 현장의 몇 가지 추악한 사건들 때문이었다. 불량 청소년 얘기가 아니다. 왕따당하는 학생 얘기도 아니다. 교수와 교사, 학부형이 비리와 거짓과 돈으로 얽혀, 교육 현장을 타락시키고 나라의 내일을 좀먹고 있는 비극적인 뉴스들 때문이었다.

우선 서강대학교 사건이다.
입학처장이 아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입시 부정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진 것이다. 동료 출제위원 교수에게 문제지를 건네줘 그대로 출제토록 하고, 실력이 모자라는 아들에게는 문제지와 모범답안을 공부시켜 무난히 서강대학교에 합격케 했다는 것이다. 결국 두 교수가 구속됐지만, 그 충격은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그 이상의 부정이 과연 없었는지, 필자는 마음이 편치 않다.

뿐만 아니다. 대학입시 자율화를 누구보다 목소리 높여 주장했던 서강대학교 아니었나?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 차라리 학교를 폐쇄하겠다고까지 으름장을 놓았던 서강대학교 아니었나? 위 사건이 불거졌던 초기에 대학 쪽의 부정은 있을 리 없다며 교육부의 자료 제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던 서강대학교 아니었던가? 그런 서강대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서강대학교는 대체 무슨 낯으로 전국의 고등학생과 학부형을 대할 것인가? 이제 전국의 학생과 학부형들은 서강대학교, 나아가 이 나라 대학들의 입학 전형 절차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서울대학교 얘기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6년 반 전, 미대의 김민수교수를 재임용 탈락시켰던 것이 부당한 조치였음이 시민사회의 공론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사법적 판단을 통해서도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대 교수들은 김민수교수의 복직에 반대한다며 일괄사표를 제출했다고 보도되었다. 그리고 사흘 전에는 한술 더 떠서 대학본부의 인사위원회마저도 복직 안건을 부결시켰다고 했다. 그것이 이 나라 최고 대학의 교수들, 가장 공부 많이 했다는 교수들의 수준인 것이다.
이쯤 되면 몇몇의 자질 미달 교수들이 아니고 서울대학교 교수사회의 일반적인 인식과 철학과 판단의 수준을 보여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는 자세, 사법부의 결정마저 깔아뭉개는 안하무인의 자세, 동료 교수를 부당하게 재임용 탈락시킨 것도 모자라 집단 사표까지 제출하면서 유치하게 협박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당혹스럽다 못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역의 한 대학에서도 최근 어이없는 일이 하나 발생했다.
계명문화대학이 교수협의회 의장을 해임한 것이다. 계명대학교와 그 재단에서 일상적으로 저질러져 온 교권 유린과 비합리적 학사 운영을 우려해 온 지역의 교육계와 시민사회는, 이번 사건도 대학과 재단에 비판적인 교협과 교협 의장을 괘씸죄로 해임시킨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일희 전총장의 불명예 퇴진을 겪고 나서도, 계명대학교 재단은 비판적인 교수 목 자르는 그 못된 버릇을 못 고쳤나 보다. 착잡하고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지성의 위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식인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음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기에 새삼 놀랄 일도 못되지만, 심히 걱정스러운 것은 지식인 사회가 단순히 기능을 못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부패했고 탐욕과 이기주의의 노예가 되어 최소한의 도덕적 판단도 못하고 있으며, 나라와 지역사회와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립학교법 개정되면 학교 폐쇄하겠다던 서강대..법원 판결마저 깔아뭉개는 서울대..교협의장 해임한 계명문화대“
“터져나오는 비리, 부끄러운 우리 교육계...문일고, 안양예고, 배재고, 서울예고...광주교육청, 경북교육청, 교육부...”


최근 필자가 더욱 황망스러웠던 것은, 그런 부도덕과 탐욕과 범죄가 비단 대학만이 아니라 고등학교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보여 주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막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며칠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만 들춰 봐도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먼저 서울의 문일고등학교 일이다.
어머니회의 간부 학부형은 교장과 교사들에게 돈을 주고 밥과 술을 사주며 아이를 부탁했고, 교장과 교감, 교사들은 그런 아이들의 성적을 조작하고 내신을 특별관리해 줬다는 것이다. 답안지 바꿔치기, 정답 알려주기, 시험문제 미리 알려주기 등이 동원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대학 수시모집 때 유리한 표창장까지 줬다고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서울시 교육청이 이런 엄청난 비리를 확인하고도 입을 다물었다는 것이다. 교무부장 두 명이 구속되고 학부형 8명이 불구속입건됐으며, 미국에 도피중인 교장은 수배했고, 서울시 교육청 공무원 4명에 대해서는 징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정말 탄식할 일이다.

안양예고 사건도 충격이긴 마찬가지였다.
편입학을 대가로 학부형과 교장, 교사 사이에 거액이 오갔다는 것이다. 교장이 2001년 3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모두 60명의 학부형으로부터 4억 천 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니,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장을 포함해 8명이 불구속입건됐으며, 돈을 건넨 학부형도 51명이나 불구속입건됐다고 한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전에 터진 배재고등학교에서의 검사 아들 성적 조작 사건, 서울예고 편입학 부정사건 등도 마찬가지다. 뿐만이 아니다. 지난 해 말, 교육부총리까지 퇴진시켰던 수능 부정 사건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는데, 그것도 들여다보면 전신에 힘이 죽 빠진다. 광주교육청과 교육부가 수능 시험일 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숱한 비리 제보를 묵살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지만, 수능 시험 당일 날 교육부에서 파견된 광주 감독관은 지각 출근한데다 시험 시간에는 사우나에 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진 것이다.

대체 그런 이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주고, 그런 이들에게 나라 교육을 맡겼다는 것이 슬프기만 할 뿐이다.
경북교육청의 교구 비리 사건도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며칠 전 발표된 경북교육청의 자체 감사 결과(관련자 68명 경징계 요구, 61만원 변상조치)는 교육계의 책임자들이 어떻게 해야 나라의 교육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살아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음을 보여 주었다. 비리를 저지른 이들이나 그들을 감독해야 할 이들이 모두 한통속이라는 의혹만 부추겼을 뿐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지금 그런 부끄러운 일들이 극히 예외적인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기 시작했다.
많은 학부형들이 그런 비리와 유착, 성적 조작과 감독 소홀이 전국의 학교 현장에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몇 개 학교의 부정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어쩌면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비극이다. 나라의 내일을 위해서도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이 있다. 성실하게 학생을 가르치고 양심껏 교편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교사들까지도 함께 매도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 학생의 복지 향상을 위해, 그리고 학교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애쓰는 학부모회의 간부 학부형들까지도 의혹의 눈길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열심히 일해 온 선생님과 학부형들까지도 의욕을 잃고 있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 학교와 학부형 사이에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손실이요, 나라의 내일을 위해 너무나 안타까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교육개혁의 우선적 과제는 ‘도덕성’과 '자기혁신'...신뢰받지 못하는 교수.교사.학교는 어떤 가치도 해낼 수 없다“


학교 선생님을 믿을 수 없고, 학교 어머니회의 간부 어머니를 믿을 수 없고, 수학능력시험을 믿을 수 없고, 대학교의 입학 사정 절차까지 믿을 수 없고, 나아가 감독 기관마저 믿을 수 없다면, 이 나라 교육은 끝이다.

돈 많은 학부형의 아이가 돈으로 점수를 사고, 검사 아들이 학교에서 특별 대접받고, 대학교의 간부 교수 자녀가 아버지 빽으로 대학 합격증을 손에 쥐게 되고, 양심을 팽개친 아이들이 점수를 훔치는 세상이라면, 누가 열심히 공부하고, 누가 선생님과 학교를 신뢰하며, 누가 양심껏 살려 할 것이고, 누가 높은 점수 받는 아이와 일류대학에 진학한 아이를 인정하며 존경할 것인가?
교육 현장의 비리를 감독하고 바로잡아야 할 기관이 공범자일 뿐이요 한통속이라고 국민이 의심한다면, 누가 이 나라의 미래 교육에 기대와 희망을 걸겠는가? 지금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교육에 대한 그런 불신과 탄식과 우려가 팽배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교육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일 수도 있기에 우리는 더더욱 교육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곧 조국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지만으로는 안된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제대로 분석하고 제대로 처방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대체 국회의원들이 뭐하고 있는지, 아직도 국회에서 낮잠자고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쉬운 일 중의 하나다. 더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다. 교육이 감당해야 할 일이 많고 개혁해야 할 과제도 많지만, 그 기반과 조건은 첫째가 도덕성이요 둘째는 신뢰라고 할 수 있다.

부도덕한 교사와 교수, 학교와 재단은 학생과 국가를 위해 아무런 의미있는 일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형과 지역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교사와 교수와 학교와 재단은 그 어떤 가치있는 일도 결코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리고 교육 당국은 뼈아프게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교사와 교수와 학교 경영자가 최소한의 도덕성과 양심을 회복해 내지 못하면, 교육 현장을 신뢰와 정의가 살아 있는 곳으로 환골탈태시켜 내지 않으면, 이 나라 교육의 미래는 없고 조국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교육자와 학교 경영자와 교육 당국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깨달아 대대적인 교육개혁 운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교사와 교수 자신을 도덕적으로 혁신해 내는 운동, 학교와 교육행정에 정의를 세워내는 운동이 불길처럼 타올라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필자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부끄러운 사건들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심각한 교육위기도, 나라가 살아나는 계기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교사개혁, 교수개혁, 교장개혁, 재단개혁, 학부형개혁, 교육부개혁. 그렇게 해서 기필코 교육개혁을 이뤄내지 않으면 안된다. 모쪼록 교육의 위기를 교육의 기회로 일궈내는 지혜로운 국민이기를 기대해 본다.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drh1214@hanmail.net)

* 홍덕률 교수는,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시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대학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재단에 의해 해직(1993)됐다가 임시이사 파견 뒤 1년 만에 복직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구사회연구소> 부소장과 <대구경북분권혁신아카데미> 부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분권과 혁신’을 위해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홍 교수는 또, 지역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시사칼럼을 쓰거나 토론.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는데, 지금도 대구KBS <화요진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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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께 드리는 인사>

필자는 오늘의 이 칼럼을 끝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실었던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마치게 된다. 작년 2월 28일, 평화뉴스의 창간 일에 <홍덕률의 시사칼럼>이라는 타이틀로 독자 여러분을 만난지 꼭 1년 만에 여러분 곁을 떠나는 셈이다.

오늘까지 모두 55개 꼭지의 칼럼을 여러분 앞에 선보이면서, 때로는 설레기도 했고 때로는 필자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보람도 있었다. 그동안 부족한 필자의 칼럼에 관심과 성원을 보내 준 독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아울러 지난 1년 동안 갖은 역경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와 지역사회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평화뉴스 편집진에, 그리고 필자에게는 과분한 지면을 할애해 준 평화뉴스 편집진에, 창간 1주년 축하 인사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평화뉴스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빌면서 꼭 1년 전 오늘, <평화뉴스에 몸을 실으며>란 제목의 첫 칼럼에서 필자가 두 손 모아 간절히 염원했던 바를 다시 한번 편집진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평화뉴스로 인해 대구의 강고한 편협성이 눈 녹듯이 녹아내릴 것을 기대해 본다.
폭력으로 얼룩지고 불의로 점철된 대구사회를 혁신하는데, 평화뉴스의 젊은 일꾼들이 흘리는 땀과 열정이 작지만 큰 밀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평화뉴스로 인해 나눔과 섬김의 정신, 열림과 상생의 문화가 달구벌에 가득해지길 염원해 본다. 대구가 생명의 도시, 안전의 도시, 평화의 도시로 세계 속에 우뚝 서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그래서 멀지 않은 훗날, 대구 곳곳에 평화와 정의의 깃발이 휘날리고 봉사와 사랑의 이야기꽃이 만발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훗날의 역사가들이 평화뉴스가 창간된 오늘을, 2004년판 2.28 의거일로 기록하게 되기를 염원해 본다.”

대구경북에서 양심과 평화와 정의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많은 시민과 독자분들의 관심과 성원이 평화뉴스와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그리고 평화뉴스의 편집진과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항상 행복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빌면서, 아쉬운 고별인사에 대한다.

2005년 2월 28일 홍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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