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같이 살았으면 천생배필이제...”

평화뉴스
  • 입력 2005.06.0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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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김봉성(79).전영석(77) 노부부...
1945년 해방 한달 전에 혼인, “올해로 꼭 60년”

혼인한 지 올해 꼭 60년...영주 풍기에 사는 김봉성(79) 할아버지와 전영석(77) 할머니.
혼인한 지 올해 꼭 60년...영주 풍기에 사는 김봉성(79) 할아버지와 전영석(77) 할머니.


"60년 사니 부부가 아니라 오누이 같애, 좀 닮았지?"

부부가 60년을 같이 살았다고 한다.
해방 한달 전인 1945년 7월, 열일곱.열아홉에 혼인한 부부는 어느 듯 팔순을 바라본다.
아직 6년도 못 살아본 기자에게 ‘60년 부부’는 헤아리기도 먼 훗날의 상상일 뿐이다.

올해로 꼭 60년째 같이 사는 노부부가 상을 받는다기에 경북 예천으로 갔다.
지난 29일, 예천진호양궁장에서 열린 천주교 안동교구(교구장 권혁주 주교)의 ‘가정의 달’ 행사.
영주시 풍기읍에 사는 김봉성(79) 할아버지와 전영석(77) 할머니가 ‘장수부부상’을 받았다.
양궁장 푸른 잔디 벗삼아 할아버지.할머니의 ‘60년 해로’ 얘기를 들어보았다.

“우리 영감 별명이 ‘꽃미남’이야...자기는 재밌게 살고 나는 고생만 했지...”

 “우리 영감 별명이 꽃미남”이라며 웃는 전영석 할머니
“우리 영감 별명이 꽃미남”이라며 웃는 전영석 할머니
전영석(77) 할머니는 “60년동안 같이 살면 어떠냐”는 물음에,
“뭘 어때, 60년동안 붙어 사니 부부가 아니라 오누이 같애, 우리가 좀 닮았지?”라며 웃었다.

할머니의 고향은 풍기가 아니라 충남 서천이라고 한다.
할머니의 조부님이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모진 고생을 했는데, 단속을 피해 소백산 기슭 영주 풍기로 왔다고 한다. 그것이 김봉성(79) 할아버지와 60년을 살게 된 계기가 됐다.

“조부님이 독립운동하다 끌려가 고문도 받고 참 고생을 많이 하셨지...집 앞에는 늘 일본 순사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놈들 피해 다니다보니 온 가족이 풍기까지 오게 된 거야”

하지만, 독립운동을 하신 조부님은,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해방을 불과 두달 앞둔 1945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조부님은 일본 순사의 단속 때문에 고향을 ‘이북’ 어디쯤으로 신고했는데, 그것 때문에 아직까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충청도에서 이사 온 전 할머니와 김 할아버지는 두집 건너 이웃에 살았다고 한다.

-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어요?”
= “뭘 어떻게 만나, 그때야 무조건 중매였지. 그저 부모님이 하라고 하면 해야지. 허허”
- “그때 할아버지가 마음에 드셨나요?”
= “어디, 우리 어머니는 날 안보낼려고 하고, 우리 영감 어머니는 하루 열두번도 더 찾아와 빨리 달라고 하고...우리 영감이 복받은 거지...”

그렇게 열일곱 새색시는 1945년 7월 16일, 열아홉 총각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풍기에서 혼인한 뒤, 할아버지 직장따라 부산과 서울, 인천으로 많이 옮겨 다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법률사무소’ 일을 했다고만 짧게 말했다.

- “할머니 고생 많으셨겠네요?”
= “말도 마, 우리 영감은 재밌게 살고, 나는 고생만 했지...우리 영감 별명이 꽃미남이야. 돌아댕기며 재미 좋았지...”
할아버지는 쑥스러운 듯 뒷짐지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할아버지, 올해 60주년인데 할머니께 무슨 선물 같은 거 하시나요”
= (무뚝뚝한 표정으로) “뭐 해야지”
- “할머니 무슨 선물 받고 싶으세요?”
= “몰라, 저 영감이 뭐라도 좋은 거 하나 해 주겠지. 뭐 할라나 모르지....”

서로 어깨를 두드려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지난 60년을 이렇게 보듬으며 살았지 않을까...
서로 어깨를 두드려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지난 60년을 이렇게 보듬으며 살았지 않을까...


이들 노부부는 1남4녀를 키웠다. 큰 아들과 두 딸은 서울과 경기도에, 다른 두 딸은 미국과 캐나다에 살고 있다고 한다.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풍기에는 노부부만 살고 있다.

- “자녀들이 모두 멀리 있는데, 적적하지 않으세요?”
= “아냐, 이렇게 사는게 편해...며느리 귀찮게 안하고 자식들한테 부담주기도 싫고...그래서 처음부터 따로 살았어...그래도 자식들 곁에 없으니 아플 때가 제일 걱정이야”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많이 아팠는데, 아직도 몸이 완쾌되지 않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딸이 결혼기념일에 놀러오라고 하는데, 우리 영감 몸이 성치 않아 못갈 것 같애”

할아버지 할머니는 20년전쯤 인천에서 영세를 받고 성당에 다녔다고 한다.
요즘도 매주 일요일마다 성당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신앙생활도 하고 있다.
매월 자녀들이 보내주는 용돈과, 젊을 때 모아 둔 돈으로 큰 걱정없이 살림을꾸려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보통인연이 아닌 것 같애...충청도에서 경상도까지 온 것도 그렇고, 두집 건너 이웃에 산 것도 그렇고...60년 같이 살았으면 천생배필이제...”

천주교 안동교구가 마련한 ‘가정의 달’ 행사에서 [장수부부상]을 받은 노부부...
천주교 안동교구가 마련한 ‘가정의 달’ 행사에서 [장수부부상]을 받은 노부부...


60년 같이 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살았을까?
“그저 참고 참고 또 참고 사는거야. 보통 해가지고는 못살아...그러고 보면 여자는 참 불쌍해...”

할머니는 요즘 젊은 부부들을 보면, “너무 참지를 못해, 좀 참아가며 살아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또, “조금씩 양보하고, 항상 감사하며 살다보니 행복했다”며 부부 사랑의 길을 전해주었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 60년.
그동안 말못할 사정들이 왜 없었을까.
다섯 자녀를 키운 세월, 둘 만의 사랑 챙길 겨를이나 있었을까.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아 털어놨으면 몇 밤을 지새도 모자랄 60년의 이야기.
사연일랑 묻어도 그만, 이제는 몇마디 농으로 눈빛으로 주고 받아도 흐뭇한 노부부가 됐다.
60년 세월은 열일곱 열아홉을 팔순에 이르게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친남매처럼 닮아갔다.

헤어짐이 자연스런 것처럼 된 요즘,
60년을 같이 살아 온 노부부의 다정함이 그렇게도 평화스러웠다.
팔순을 넘어 구순으로, 60년을 넘어 ‘백년해로’할 노부부의 사랑을 그려본다...

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이 글은, 2005년 5월 28일 <평화뉴스> 주요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가정의 달 행사에 함께 나온 풍기성당 신자들...노부부에게 이들은 한 가족처럼 다정하다.
가정의 달 행사에 함께 나온 풍기성당 신자들...노부부에게 이들은 한 가족처럼 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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