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때려맞히기, 아니면 말고"(6.28)

평화뉴스
  • 입력 2005.07.0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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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비평]
...매일신문.영남일보, 넘겨짚기식 보도
영남일보, 1면 톱기사 오보 내고도 '나 몰라라'
6월 23일 지역 석간 1면 톱기사...영남일보(좌)과 매일신문(우)
6월 23일 지역 석간 1면 톱기사...영남일보(좌)과 매일신문(우)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날인 6월 23일, 지역의 석간신문들은 대구경북에 이전하는 공공기관을 ‘때려’ 맞히는 게임을 했다. 매일신문은 <“道公 경북이전 유력”>을, 영남일보는 <“대구에 주택공사 유력”>을 1면 톱기사로 각각 냈다.

그러나, 다음 날인 24일, 정부가 대구에 ‘한국가스공사’를, 경북에 ‘한국도로공사’를 이전한다고 발표하면서 매일신문은 정확한 보도로, 영남일보는 1면에 오보를 낸 것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영남일보는 24일, 25일, 27일 그 어디에도 '1면 톱' 오보와 관련된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해명이나 사과는 고사하고 이 과정을 알려주는 기사도 없다. 영남일보는 신문사의 이름을 걸고 1면에 낸 <“대구에 주택공사 유력”>이란 오보에 대해 ‘아니면 말고’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어떠한 이유와 사정이 있든, 1면 톱으로 게재한 기사가 오보가 됐다면, 독자에 대해 정정 보도를 하든가 아니면 해명기사를 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는 정말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처사고, 독자에 대해 예의를 저버린 행동이다.

그럼, 이날 두 신문의 보도 내용을 살펴보자.
이날 두 신문은 ‘때려 맞히기'를 했다.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공공기관 이전문제를 두고, 석간신문들이 최소한 ‘확정’은 아니더라도 ‘유력’정도는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으로 보인다. 기사의 근거가 부족한데 ‘유력’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을 보면 이렇게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당시 청와대는 공공기관 이전문제를 두고 건설교통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함구령을 내린 상태였다. 게다가 정부가 다섯 번이나 발표를 연기할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정치적 파워게임이 작용하는 사안이었다.
때문에, 두 신문의 기자들은 대구시도, 건설교통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청와대 요로의 취재원들에게 계속 핵심내용을 수차례 찔러 보았을 것이다. 결국, 매일신문과 영남일보의 정보력 싸움이었고, 최종 '핫라인'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은 매일신문의 완승(?)이었다. 이날 연합뉴스의 서울발 기사도 오락가락한 것을 보면 당시 핵심라인과의 소스 싸움을 짐작할 만하다.

이제 두 신문의 구체적인 기사들을 뜯어 보자.
이날 신문에서 이뤄진 ‘문법’은 통상의 것과 다르다. 기사의 제목은 편집기자들이 기사 속에서 제목을 뽑아내는 게 원칙인데 이날 기사들은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 <영남일보 6.23자 1면 톱기사>
<지방으로 옮겨 갈 177개 공공기관의 배치안 확정 발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공공기관 이전 업무를 담당한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구 출신 청와대 고위 인사가 (이전 효과가 큰 공공기관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실망시키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고위 당국자도 "4대 대형 공공기관(한국전력.토지공사.도로공사.주택공사) 중 한 곳은 대구로 이전하는 것이 확정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구로 이전할 대형 공공기관은 대한주택공사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22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177개 공공기관 시·도별 배치안에 따르면 최대 공공기관인 한국전력을 광주로 옮기는외에, 토지공사-전북, 도로공사-경남, 한국관광공사-강원, 한국자산관리공사·증권예탁결제원-부산 배치가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대구에는 4대 대형 공공기관 가운데 이전 지역이 확정된 한전.토공.도공이 아닌 주공이 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뒷부분 줄임)

먼저 영남일보 <“대구에 주택공사 유력”>기사를 보자.
기사의 세 번째 문장에 ‘주택공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는 표현이 있다. 기사 속의 ‘관측’이 제목의 ‘유력’으로 둔갑한 것이다. ‘관측’과 ‘유력’이 같은 의미인지 다른 의미인지는 독자 누구라도 알 수 있다. 특히, 제목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없고, 이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소스(취재원)도 밝히지 않은 점을 보면 더더욱 ‘때려 맞히기’ 의혹이 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제목과 관련된 내용은 기사 앞부분에 나오는데 비해, 이 기사에는 세 번째 문장에 처리됐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이 기사가 제목과 기사와의 관계에서 통상적인 원칙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매일신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신문도 <“道公, 경북이전 유력”>기사에서 제목의 내용은 네 번째 문장에 나온다. 물론 네 번째 나오는 수도 있다. 그런데 기사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이 내용을 밝히는 소스(취재원)도 부족하다. 영남일보에 기사내용과 절차에서 완승했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통상의 원칙에 일부 어긋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매일신문 6.23자 1면 톱기사>
<지방 이전 공공기관 가운데 한전을 제외한 '빅 4' 중 하나가 경북으로 올 것으로 보인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관계자는 23일 이같이 밝히고 대구에는 근무 인력, 지방세 납세 규모, 예산 등을 평가해 지방이전 효과가 10위권 이내인 공공기관 한 곳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각 지방마다 유치를 희망하는 한국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빅4'는 경북과 전남·북, 부산·경남 지역으로 분산 배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도로공사는 경북이 확정단계라는 것이다. 관심을 끌었던 한전은 광주행이 확실하다는 것.
이와 함께 기능군별 배치 공공기관은 대구에 교육·문화, 방재기능군이, 경북은 정보통신(IT) 기능군으로 나뉠 가능성이 크다...>
(뒷부분 줄임)

이 글에서 분명하게 주장하자면 영남일보가 결국 오보를 했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대응은 책임있는 언론으로 해야 할 처사가 아니다. 현재의 관행으로 ‘때려 맞히기’식 관행에 젖은 한국언론의 측면에서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보도에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보도가 아니라 ‘자신이 보도한 내용’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다. 그것이 독자에 대한 충실도를 높이고 책임있는 언론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영남일보나 매일신문이나 이런 ‘때려 맞히기’ 식 관행을 지속해야하느냐 문제는 당연히 제기될만하다. 다음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데 굳이 하루전에 이런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지라는 의문이다. 계속 해야한다면 영남일보와 같은 오보는 다시 양산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보도가 지난 5월 중순, '광업진흥공사 대구 이전설'처럼 '확인없는 보도'의 연장선에 있는한국형 언론 관행인 것 같아 더 씁쓸하다. ('대구경북 또 물 먹이나', '시.군까지 들끓는다'며 지역 석간이 호들갑을 떨었던 '광업진흥공사'는 결국 강원도로 가게 됐다.)

매일신문 5월 13일자 1면-4면. 영남일보 5월 13일자 3면- 5월 14일자 3면(왼쪽부터)
매일신문 5월 13일자 1면-4면. 영남일보 5월 13일자 3면- 5월 14일자 3면(왼쪽부터)


<평화뉴스 매체비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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