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그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것"

평화뉴스
  • 입력 2006.05.0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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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문화신문 안)...
"150여년 전 프랑스 파리, 그리고 지금 대구의 앞산"


재미있게 살자. 한동안의 모토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봤자 강 한번 보러가자 산에 한번 가자가 바램의 전부였거늘, 가만 생각해 보면 ‘그 정도 여유도 없나....’ 헛! 혀를 끌끌 찰 일이다. 게다가 지난 한 달간 틈틈이 재미있자고 읽었던 책조차 마지막으로 갈수록 사회니 자본이니 하는 복병이 나타나 그렇잖아도 시끄러운 대구와 얼추 맞아떨어지는 쿵짝이 되고, 이는 못 말리게 부풀어올라 이 나라를 한탄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이봄, 꽃구경 재미한번 못 가져본 청춘이 딱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먼저, 발단은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앞산터널 반대 서명 운동이 있을 터이니 한번 와 보라’는 것.

전개 - 현장에서, 부끄럽게도 처음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감정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위기 - 그러나 동참과 관심을 목적으로 쓰여진 글귀가 이성적으로 설득력 있게 이해되지 않았다.
절정 - 그렇다면 공부하자, 이해하고 시민으로서 내 의견을 스스로 알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인프라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함께 해 왔던 앞산인데다 환경과 자연은 전 세계적인 문제이지 않은가. 건축적, 경제적, 정치적 인 수많은 질문과 자료조사를 통해 얻은 나름의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모든 걸 차치하고, 차 잘 뚫리는 도시보다 나무 많고 산 우거진 도시에 살고 싶다는 것.

바로 이 절정의 시기에 문제의 문장과 만나게 된다.

《절대주의는 잠시 전쟁에 대한 광란을 잊었는가 싶더니 건물에 몰두한다....매수된 무리들은 목소리를 한데 모아 파리의 면모를 일신하고 있는 대규모 공사를 칭송했다. 사회적 자발성이 결여된 채 독재의 손에 의해 대규모로 돌이 옮겨지는 것만큼 슬픈 것은 없다. 이처럼 음산한 데카당스의 징후도 없다. 로마 제국이 고통 속에서 몰락에 가까워질수록 하늘 높이 치솟는 기념 건조물은 증가하고 거대해져 갔다. 로마는 자기 무덤을 세우고, 아름답게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세계는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인류의 어리석음도 이제 종말을 향하고 있다. 사람들은 웅장한 살인에 질렸다. 억압과 허영이라는 이중의 목적 하에 수도를 혼란 속으로 내몰아온 여러 가지 계산은 현재 실패한 것처럼 미래에도 실패할 것이다.》 A. 블랑키. <사회비평> 파리 1885년 1권 <자본과 노동> 109-111p.

일시에 수많은 것들이 눈앞에 와르르 쏟아진다.
초대형 목욕탕으로 재 탄생한 하천들, 새로운 서울 시청의 반짝이는 마스터플랜, 웅장한 회관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빽빽한 아파트들, 순식간에 뒤엎어지는 산들, 숨 끊어진 갯벌들...

파리 시장 오스만이 파리 재건사업이라는 명목아래 온 도시를 뒤집어엎은 지 150여 년. 그 후 20여 년이 지나서야 가시 있는 입을 연 블랑키는, 어쨌든 전 역사를 통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통찰을 준다. 100년 전이나 그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사회적 자발성이 결여된 음산한 데카당스에 대해.(프랑스 말인 ‘데카당스(dcadence)’는 ‘퇴폐.타락’의 뜻으로,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퍼진 풍조. 퇴폐적인 문화에 미적 동기를 구하는 관능주의를 이르던 말. 퇴폐파)


일주일 전 4월 27일, 앞산 달비골에서 있었던 범종교인 생명 평화 촛불 문화제에 갔었다.
솔직히 종교라는 것에도 썩 마음을 두지 않고, 촛불이라는, 이제는 집단적인 평화 시위의 한 상징으로 대변되는 의미의 전이가, 내심 꼬인 마음에는 영 불편해서 그냥 기대 없는 의무감으로 나섰던 길이었다.

오카리나 연주, 시낭송, 녹색인간 퍼포먼스, 그리고 다양한 종교인들의 간략한 '터널 반대' 주장들이 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가운데 슬몃 끼워진 선거 예비 후보자들의 인사가 착해 보이지 않은 건 흐릿한 색깔에 사래치는 단순한 내 취향 때문이었을까.

촛불을 켜고 한 마디 한 마디 기원에 따라 100배를 올리는 150여 사람들에 대한 감동보다, 수많은 언론사들의 취재 후레쉬에 ‘그래, 되도록 널리널리 많이 팡팡 터트려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더 컸던 건 생각보다 적은 동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이 긴 절정은 6월까지, 혹은 더 길게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음...결말은? ‘현대 세계는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혹은 ‘인류의 어리석음도 이제 종말을 향하고 있다.’ 내지는 ‘사람들은 웅장한 살인에 질렸다.’에 희망을 걸어볼까? 것도 아니면 단순하게 ‘산 찾아 물 찾아 재밌게 살자’에? 100년 전이나 그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건 이런 희망이겠거니...한다.

그나저나 이 결말이 날 때쯤이면 봄꽃은 다 졌겠다.


[주말 에세이 12]
류혜숙(<문화신문 안> 편집장)

 



지난 4월 27일 앞산 달비골에서 열린 '앞산 살림 범종교인 생명평화 촛불문화제'...(사진.평화뉴스)
지난 4월 27일 앞산 달비골에서 열린 '앞산 살림 범종교인 생명평화 촛불문화제'...(사진.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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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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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12>- 류혜숙..."100년 전이나 그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것" (20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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