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꽃이 너무 예뻐서...”

평화뉴스
  • 입력 2006.10.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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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으로 찾아간 어느 농민운동가...영천 故 이주영(40)씨 전국농민장

농민운동가 이주영.
농민운동가 이주영.
왜 귀농했느냐고 물었다.
“친구따라 영천에 놀러갔다 사과꽃이 너무 예뻐서...”
그렇게 경북 영천에 들어가 과수원을 하며 농민운동가로 살았다.

어느 해는 1년 새빠지게 일해 겨우 5백만원 벌었다.
또 어느 날은 아내와 복숭아 밭에 앉아 펑펑 울기도 했다.
친환경농업 하다 빚더미에 앉았고, 그래도 FTA 안된다며 뛰어다녔다.
...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이 전하는 故이주영(40)씨의 삶이다.
고인은 9월 6일 아침 6시 30분, 과수원으로 나선 집 앞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 전날도 ‘한미FTA반대’ 집회를 했기에 갑작스런 슬픔이 주위를 더 안타깝게 한다.
환갑 지난 어머니와 아내, 초등학생인 동선(12), 진명(10) 두 아들을 두고 그는 떠났다.

사과꽃이 좋아서 귀농할만큼 낭만적이었던 사람.
고인은 1966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대구로 와 85년 경북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했다. 노태우 정권시절, 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 대경총련.한총련에서 활동했고 90년에는 구속돼 6개월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대학 4학년 어느 날.
친구따라 우연히 영천 시골을 지나게 됐고, ‘사과꽃’에 마음이 갔는 지 93년 귀농했다.
영천시 청통면에서 사과와 복숭아 농사를 지었고, 96년 사랑하는 우지영(35)씨와 결혼했다.

영천시 청통면 영농발대식(2006.4)...농민으로 농민들과 함께 한 故 이주영씨.
영천시 청통면 영농발대식(2006.4)...농민으로 농민들과 함께 한 故 이주영씨.

영천시 농민회 사무국장과 전농경북도연맹 사무처장을 맡으며 농민운동가로 새로운 삶을 살았다.
‘친환경작목반’ 반장, ‘영천 친환경단체협의회’ 부회장, ‘학교급식조례제정을 위한 경북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맡아 친환경농업과 우리쌀지키기에 힘썼다. 지난 5.31지방선거 때는 영천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떨어졌다. 민주노동당 경북도당 부위원장과 영천시농민회 정책교육부장을 맡고 있었다.

친구 김지일(40)씨는 “정말 사람을 좋아하는 친구”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지난 1991년, 경북대에 인혁당 4.9희생자 추모비를 세울 때 주영이가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 때 추모비 건립 비용이나 과정이 참 힘들었다는 얘기를 최근에서야 들었다”며 “사람 잘 챙기고 묵묵히 자기 일에 성실한 친구”라고 말했다.

대학 후배 임현수(36)씨도 “사과꽃 하나에 귀농했다고 할만큼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선배”라면서, “후배들 잘 챙겨주고 즐겁게 해주던, 인간적이고 듬직한 정말 우직하고 좋은 선배였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친환경농업과 과수농사에 빚이 적지 않다.
요즘 농사꾼 치고 그정도 빚 없는 사람이 없다고들 하지만, 아직 어린 두 아들에 생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벌써부터 걱정하는 선후배들이 많다. 아내 혼자 농사를 계속 할 수 있을 지...남겨진 걱정 그대로 우리 농촌의 아픔도 쌓여가고 있는 것 같다.

한편, 고인의 장례는 ‘전국농민장’으로 오늘(9.8) 치러진다.
전국농민회는 8일 오전 9시 영천시 청통면 고인의 생가에서 노제를, 10시에 영천수덕예식장에서 영결식을 거행한다. 장지는 칠곡 현대공원묘지.

글.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사진 제공. 민주노동당 경북도당

(이 글은, 2006년 9월 8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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