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를 만나던 날"

평화뉴스
  • 입력 2006.12.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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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주혜리...
"불행한 상황에서도 타인의 불행을 짊어질 수 있기를.."

지난 8월 14일, 동이 틀 무렵 사방에 푸른 기가 가시기도 전의 일이었어요.
인도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의 남걀곰파(티베트 사원)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는 아침을 맞이하는 분주함 대신 차분함이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경건함 마저 감돌았습니다. 법회가 오전 9시부터 시작인 것을 감안하면 사람들은 앞으로 서너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짜증은 커녕 설렘 가득한 잔잔한 미소만을 머금을 뿐이었죠.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서 법당 안팎이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9시가 다 되어갔죠.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

법당 안을 울리는 ‘삼귀의’가 있은 직 후 성하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티베트의 등불이자 세계적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님을 눈앞에서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저는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죠. 장내가 술렁인 것도 잠시, 성하님의 인사가 있자 한국인, 티베트인, 인도인, 여타 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 숙연해졌었죠. 저는 성하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

“모든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이는 지혜를 일깨워야 합니다.
취할 것과 버릴 것, 무엇이 행복의 원인이며 또 어떤 것이 불행의 원인인지 가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이 소중하다는 이기심, 즉 아집과 아견이 고통의 원인임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모든 중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타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즉 보리를 깨닫는 마음인 보리심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문사수(듣고 사유하고 수행하는 것)에 집중함으로 인해 산란이 줄어들게 되지요...”

저는 또 귀를 기울였습니다.
“고통, 슬픔... 이 모든 것이 깨달음을 얻게 하는 일이 되게 하소서
중생이 행복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근원이 되게 하소서...“

성하님은 말씀 후 한국어 통역이 있는 잠깐의 시간 동안 주위를 두루 살피시며, 경청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온화한 미소로 눈빛을 맞춰 주시곤 하셨어요.

인도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인도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선배, 그러고 보면 저는 참 행운아입니다.
인도에 도착해서 첫 번째 다람살라 행에서는 아쉽게도 성하님께서 터키 순방길에 오르셔서 성하님을 뵙지 못했거든요. 그로부터 3개월 뒤 드디어 ‘설법’ 일정이 확정돼 뵙게 되었어요.
또 마침 ‘한국인을 위한’ 설법이라 티베트인과 다른 외국인들은 법당 주면에 앉아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성하님의 목소리 밖에 들을 수 없었다면, 저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설법 기간 5일 내내 성하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고, 설법 마지막 날에는 성하님의 배려로 접견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을 꼭 방문하고 싶으시다는 성하님은 멀리서 와준 불자들과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셨죠. 간단한 질의응답이 있은 후 기념촬영도 이어졌어요.

여기서 또 한번 행운의 여신이 제 곁을 지켜줍니다.
워낙 한국인이 많다보니 그룹별로 나눠서 촬영을 하는데 제 차례가 되어 성하님 곁으로 가려는 순간 성하님의 왼쪽 옆자리가 비어있음을 발견하게 되죠. 저는 너무도 떨려 차마 성하님을 보지 못하고 앞만 바라보았어요. 그 순간 성하님의 왼손이 저의 오른손을 꽉 잡아 주었습니다.

접견이 끝나고 아쉬움에 멍하니 서 있는 저에게 델리에서 같이 온 동생이 저에게 말을 건넵니다.

“누나, 누나는 이번 여행의 주제가 뭐예요?”
“나?! 글쎄...”
“저는 사랑입니다. 여행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덕분에 건강하게 여기 다람살라까지 왔어요.
그리고 예상치도 못한 달라이라마님도 만나고... 그런데 달라이라마님도 ‘사랑’을 말하시네요. 보리심 말이에요”

선배, 성하님이 꽉 잡아주신 제 오른손으로 더 이상 나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으려 구요.
타인을 위한 사랑, 타인의 행복을 위한 사랑, 그런 저의 사랑이 변치않도록 옆에서 격려해 주실거죠?

성하님의 말씀 한 구절이 귓가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불행한 상황에서도 타인의 불행을 짊어질 수 있기를,
행복한 상황에서 내 행복이 타인에게 전해져 허공이 행복으로 가득 차기를...“





[주말 에세이 25] 주혜리(26)
* 대구일보 기자로 일하던 주혜리씨는 지난 4월 신문사를 그만두고 인도로 떠나 12월 23일 돌아왔습니다.
지난 10월, 평화뉴스 주말에세이 "인도로 간 후배 J에게"의 J로, '달라이라마'님의 기억을 글로 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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