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의 남걀곰파(티베트 사원)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는 아침을 맞이하는 분주함 대신 차분함이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경건함 마저 감돌았습니다. 법회가 오전 9시부터 시작인 것을 감안하면 사람들은 앞으로 서너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짜증은 커녕 설렘 가득한 잔잔한 미소만을 머금을 뿐이었죠.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서 법당 안팎이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9시가 다 되어갔죠.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
법당 안을 울리는 ‘삼귀의’가 있은 직 후 성하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티베트의 등불이자 세계적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님을 눈앞에서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저는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죠. 장내가 술렁인 것도 잠시, 성하님의 인사가 있자 한국인, 티베트인, 인도인, 여타 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 숙연해졌었죠. 저는 성하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
“모든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이는 지혜를 일깨워야 합니다.
취할 것과 버릴 것, 무엇이 행복의 원인이며 또 어떤 것이 불행의 원인인지 가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이 소중하다는 이기심, 즉 아집과 아견이 고통의 원인임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모든 중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타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즉 보리를 깨닫는 마음인 보리심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문사수(듣고 사유하고 수행하는 것)에 집중함으로 인해 산란이 줄어들게 되지요...”
저는 또 귀를 기울였습니다.
“고통, 슬픔... 이 모든 것이 깨달음을 얻게 하는 일이 되게 하소서
중생이 행복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근원이 되게 하소서...“
성하님은 말씀 후 한국어 통역이 있는 잠깐의 시간 동안 주위를 두루 살피시며, 경청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온화한 미소로 눈빛을 맞춰 주시곤 하셨어요.
선배, 그러고 보면 저는 참 행운아입니다.
인도에 도착해서 첫 번째 다람살라 행에서는 아쉽게도 성하님께서 터키 순방길에 오르셔서 성하님을 뵙지 못했거든요. 그로부터 3개월 뒤 드디어 ‘설법’ 일정이 확정돼 뵙게 되었어요.
또 마침 ‘한국인을 위한’ 설법이라 티베트인과 다른 외국인들은 법당 주면에 앉아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성하님의 목소리 밖에 들을 수 없었다면, 저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설법 기간 5일 내내 성하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고, 설법 마지막 날에는 성하님의 배려로 접견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을 꼭 방문하고 싶으시다는 성하님은 멀리서 와준 불자들과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셨죠. 간단한 질의응답이 있은 후 기념촬영도 이어졌어요.
여기서 또 한번 행운의 여신이 제 곁을 지켜줍니다.
워낙 한국인이 많다보니 그룹별로 나눠서 촬영을 하는데 제 차례가 되어 성하님 곁으로 가려는 순간 성하님의 왼쪽 옆자리가 비어있음을 발견하게 되죠. 저는 너무도 떨려 차마 성하님을 보지 못하고 앞만 바라보았어요. 그 순간 성하님의 왼손이 저의 오른손을 꽉 잡아 주었습니다.
접견이 끝나고 아쉬움에 멍하니 서 있는 저에게 델리에서 같이 온 동생이 저에게 말을 건넵니다.
“누나, 누나는 이번 여행의 주제가 뭐예요?”
“나?! 글쎄...”
“저는 사랑입니다. 여행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덕분에 건강하게 여기 다람살라까지 왔어요.
그리고 예상치도 못한 달라이라마님도 만나고... 그런데 달라이라마님도 ‘사랑’을 말하시네요. 보리심 말이에요”
선배, 성하님이 꽉 잡아주신 제 오른손으로 더 이상 나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으려 구요.
타인을 위한 사랑, 타인의 행복을 위한 사랑, 그런 저의 사랑이 변치않도록 옆에서 격려해 주실거죠?
성하님의 말씀 한 구절이 귓가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불행한 상황에서도 타인의 불행을 짊어질 수 있기를,
행복한 상황에서 내 행복이 타인에게 전해져 허공이 행복으로 가득 차기를...“
[주말 에세이 25] 주혜리(26)
* 대구일보 기자로 일하던 주혜리씨는 지난 4월 신문사를 그만두고 인도로 떠나 12월 23일 돌아왔습니다.
지난 10월, 평화뉴스 주말에세이 "인도로 간 후배 J에게"의 J로, '달라이라마'님의 기억을 글로 전해왔습니다.
(이 글은, 2006년 12월 29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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