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무죄' 판결, "이의 있습니다"

평화뉴스
  • 입력 2007.02.0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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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중 위협 느낀 아내 추락사]
재판부 "신체 해악 없었다. 무죄"
여성단체 "가정폭력 몰이해. 분노"
검찰 "칼.망치 사용은 넓은 의미의 폭행.


2006년 9월.
예전에도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아내는 또 다시 겁에 질려 방문을 잠궜다.
남편이 부엌칼과 망치로 방문을 부수자, 아내는 아파트 발코니 난간에 매달여 있다 떨어져 숨졌다.

검찰은 남편 김모(36)씨에 대해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신체 해악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지역 여성단체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가정폭력에 대한 재판부의 심각한 몰이해”라고 비난했다.
검찰도 "직접적인 신체 해악이 없더라도 '폭행'으로 인정한 유사한 판례가 있다"며 항소하기로 했다.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이원범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이 사건 피고인 김모씨의 ‘폭행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접촉하는 것을 뜻하는데, 김씨가 방문을 부엌칼과 망치로 부순 것은 아내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행위일 뿐, 신체에 해악을 끼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폭행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와 별 건으로, 사고가 나기 두달 전 김씨가 아내를 폭행해 전치 6일의 상처를 입힌데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대구지방검찰청 채제훈 검사는 “재판부가 ‘폭행’의 의미를 엄격하게 적용한 것 같다”며 “신체적 접촉이나 직접적인 폭력이 없었다 하더라도, 남편이 칼과 망치를 사용한 점은 넓은 의미의 ‘폭행’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남편이 과거에도 아내를 폭행해 상처를 입힌 점, 아내가 그로 인해 위협을 느낀 점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채 검사는 또,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이 없더라도,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연속적인 폭력의 과정 속에 있는 위협도 ‘폭행’으로 인정한 유사한 판례가 있다”며 “오는 12일쯤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폭행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대구지역 여성단체도 "판결에 분노한다"며 크게 반발했다.

[대구여성의전화(대표 이두옥)]는 8일 성명을 내고, “가정폭력은 대개 일상적.지속적으로 나타나며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폭력상황에서 목숨을 위협을 느낀다”면서 “신체적 접촉이 없었다고 ‘무죄’를 선고한 것은 가정폭력에 대한 재판부의 몰이해를 보여주는 판결”이라며 비난했다.

특히, “이 사고 두달 전에도 남편의 폭행으로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방 안으로 도망가 문을 잠근 아내에게 부엌칼과 망치로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은 생명에 위협을 가한 살인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또, “이같은 솜방망이식 처벌로 인해 가정폭력이 사회적 범죄로 인식되지 못하고 사소한 ‘부부싸움’정도로 다뤄지고 있다”며 “대구지법의 판결을 규탄하며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글.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대구지법의 판결에 분노하며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 재판부의 가정폭력 무죄판결에 대한 성명서



지난 7일 대구지법 제 11형사부는 남편의 폭력의 피해 방으로 도망간 아내를 뒤쫓아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겁에 질린 아내를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남편 김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재판부는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접촉하는 것을 뜻하는데 김씨가 방문을 부엌칼과 망치로 부순 것은 아내가 있는 방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행위일 뿐 신체에 해악을 끼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폭행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는 없다"고 밝힌 것은 가정폭력에 대한 재판부의 심각한 몰이해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여 진다.

재판부는 가정폭력 사건을 판단하는데 있어 피해자의 관점을 전혀 반영․고려하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부엌칼과 망치로 문을 부순 것은 아내가 있는 방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행위일 뿐이지 사람의 신체에 해악을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폭행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사고가 나기 두 달 전에도 아내를 폭행해 전치 6일의 상처를 입혀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바가 있는 것을 봤을 때 피해자는 가정폭력의 고통에 심각하게 시달려 왔을 것으로 사료된다.

대구여성의전화의 상담사례에서 보면, 가정폭력은 대개의 경우 일상적, 지속적으로 나타나는데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폭력상황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이런 위협적인 상황에서 방안으로 도망가 문을 잠근 아내에게 망치와 부엌칼로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은 생명에 위협을 가한 살인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가정폭력은 어떠한 이유나 정황에도 변명이 용납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중대한 문제이다. 가정폭력방지법제정 10년이 된 지금에도 가정폭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여성가족부의 전국 실태조사를 보면 6가구 중의 1가구에서 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는 솜방망이식 처벌로 인해 가정폭력이 사회적 범죄로 인식되지 않고 사소한 ‘부부싸움’ 정도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철저한 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적정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며, 가정폭력을 주요한 사회적 폭력의 하나로 규정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구여성의전화는 이번 재판부의 판결이,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부적합한 선례로서 악용되지 않고, 또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대구지방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바이며, 가정폭력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바이다.

2007. 2. 8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이 두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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