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와 결혼, 그리고 멸치"

평화뉴스
  • 입력 2007.03.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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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의 고백] 이중섭
"인생의 무게는 짭짤한 멸치만큼이나 별미가 된다"


요새처럼 매서운 한기가 느껴지는 겨울날이면 아직 총각인 남자후배들로부터 여자친구를 소개시켜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매일 결혼을 독촉하는 부모님의 짜증나는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이유에서부터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씩 결혼에 골인하는 모습에 너무 외롭다는 이유까지 후배들의 구혼사유는 그 절박함만큼이나 간절하다.

먼저 결혼한 사회복지사 선배를 바라보는 후배의 눈가에는 박봉의 경제력에도 결혼에 성공한 이를 바라볼 때의 자랑스러움과 남들과 비교되는 열악한 가계를 이끌어 가야하는 이들에게 느끼는 위태로움이 불안하게 교차한다. 사회복지사로서 결혼에 성공한 자신도 후배들의 눈길에서 전해지는 자랑스러움과 불안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신의 옆자리를 묵묵히 채워주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서 사랑스러움보다는 감사함을 먼저 느끼는 것이 사회복지사이면서 결혼한 남자에게 전해지는 솔직한 감정들이다.

사회복지사로 살아간다는 건 무한한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는 성인(聖人)의 삶이라 애써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남들이 평가하는 일상적인 기준에서 사회복지사의 삶은 많이 그것도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며 나름의 소박함에 귀 기울여 보지만 주변의 이웃들이 살아가는 면면들의 일상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면 저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매몰차게 부정되지만은 않는다. 우리보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정말 많고 이에 비하면 우리는 호화스럽다는 말로 우리의 삶을 매번 그럭저럭 위로해 보지만 세상의 기준은 우리가 위안 받을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넘어서 있다.

결혼을 해야 할 적령기에 한 사람의 남편이라는 기준 앞에 한없이 작아져야만 했던 나의 경험은 사회복지를 천직으로 안고 살아가야 할 후배 사회복지사들이 감당해야 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이다. 결혼을 한 다른 친구들로부터 들려오는 남편의 연봉과 내 집 장만의 얘기에 애써 부러움의 눈길을 감추는 아내의 묵묵함은 사회복지사이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 감당해야 할 또 다른 인생의 무게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남들에게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주변의 일상들조차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시기와 질투는 왠지 세상의 속도와 기준에서 동떨어져 있는 내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공무원이 남편인 친구는 월 100만원을 저축하고 있다거나 남들의 월급은 우리보다 0이 하나 더 붙는다는 아내의 장난스러운 투정들은 이제 부부동반의 식사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매번 던져지는 진부한 주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얘기들이 오갈 때면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각오의 시간이 아닌 우리 방식으로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아보자는 나름의 일탈을 계획하는 자성의 시간들로 채워진다. 세상의 양식과 질서에서 철저하게 방호되는 우리만의 참호, 그 속에서 아옹다옹 재미있게 살아보고픈 소박한 꿈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아내에게서 그리고 내 자신에게서 확인될 때 우리는 비로소 어제 밑반찬으로 사둔 멸치 몇 마리를 안주삼아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킨다.

사회복지사들의 결혼과 사회복지사의 오늘 그리고 내일의 삶이 그리 위태로운 모습으로 불안하게 노정되지 않고 나름의 재미있는 향기를 품어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늘도 아내는 신나게 방안을 휘젓고 다니는 돌이 갓 지난 딸아이의 재롱을 보며 고민되는 삶에 위안을 받는다. 그리곤 바보스런 미소에 천진난만한 웃음과 함께 맥주한잔을 청한다. “오빠 심심한데 멸치나 잡을까?”

일주일 전에 사온 멸치가 식탁 위에 오르지 않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안주감으로 고추장에 묻히는 날 인생의 무게는 짭짤한 멸치만큼이나 맛있는 별미가 된다. 사랑과 증오가 수없이 반복되는 애증의 직업을 가진 사회복지사에게 비록 인생은 무겁지만 그 무거운 인생에 맛과 재미를 더하는 양념은 많다.

[사회복지사의 고백 17]
이중섭(광주 참여자치21 사회연대팀장))




※ [사회복지사의 고백]은 <평화뉴스>와 우리복지시민연합(www.wooriwelfare.org)이 공동연재 합니다.


(이 글은, 2007년 1월 26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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