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서 행복하소서..

평화뉴스
  • 입력 2007.05.2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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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 어메" 부르다 가신 고 권정생 선생 영전에...
"평생 무소유..인세까지 모두 기증"

지난해 여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 언덕밑에 있는 권정생(왼쪽) 선생의 5평짜리 오두막 집을 찾은 김용락(오른쪽) 교수가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 언덕밑에 있는 권정생(왼쪽) 선생의 5평짜리 오두막 집을 찾은 김용락(오른쪽) 교수가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고인은 자신의 인세를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서에는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언제까지나 저희 곁에 계실 것 같았던 권정생 선생님께서 기어이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선생님 동시집 제목처럼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 가셨습니다.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던 들판 산고갯길/ 바람도 드세게 휘몰아치던 한평생을 사셨던 어머니, 평생을 그리워하던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서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어머니와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오래 오래 살았으면…” (권정생 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중에서)

선생님의 바람대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서 오랫동안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선생님이 그렇게 못 잊어 한 목생이 형도 함께 하면 더욱 좋겠지요.
전신 폐결핵이 걸려 동생 혼사에 걸림돌이 될까봐 혼사 끝날 때까지 잠시 좀 나가있으라는 말을 듣고 집을 나와 떠 돈지 칠십 평생, 드디어 어머니 곁으로 가시게 됐습니다.

선생님이 의지하셨던 봉화 전우익 선생님도 그곳에 계시고, 선생님의 든든한 후원자이셨던 이오덕 선생님도 그곳에 계시고, 의성 효선리 김영원 장로님도 그곳에 계시니까 별로 외롭지는 않으시겠네요.


"평생 무소유...인세까지 모두 기증"
"어린이들로 생긴 것이니 돌려줘야...굶주린 북녘 어린이 위해 써달라"


지난 4월 2일, 소변에 피가 쏟아져 나오고, 숨이 가쁘고 통증이 온다고 119 구급차 타고 대구 가톨릭병원에 입원해 열하루를 보내고 퇴원하셨지요. 제가 병실에 들어가니 선생님은 병상에 누워 멀리 내다보이던 두류산공원의 활짝 핀 벚꽃을 보고는 “용락아, 저건 아무것도 아니다. 도시 사람 정말 불쌍타 그지? 저런걸 보고 조타카이. 우리 집에는 지금 명자꽃이 얼마나 붉게 피고 앵두꽃이 필 텐데...” 하시면서 빨리 퇴원하시고 싶어 했지요.

간병사가 선생님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보고 “(기독교) 믿음 생활 하는가 보죠?”라고 묻자 곧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과 목사님이 말하는 하나님이 이따금이 아니라 자주 어긋나 낭패”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줄 만큼 준다고 했는데 요즘 교회는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게 탈”이라고 말씀해 간병사 아주머니를 무안하게 만들고는 미안해 하셨지요.

사실 선생님은 자주 미국의 횡포와 미국문화의 근간이 된 기독교, 부시 미대통령의 폭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셨지요. 아울러 북녘 동포들의 어려움에 대해, 특히 중국 국경 주변을 떠도는 북녘 어린이들에 대해서도 많이 안타까워 하셨지요.

17일 오전, 선생님이 또 다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해보니 산소 호흡기를 달았지만 의식이 있었고, 매우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계셨지요. 저는 선생님께서 곧 일어나실 줄만 알았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가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선생님은 산소호흡기의 고무 호수가 꽂힌 입을 움직여 무언가 맹렬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입모양을 보고 그게 ‘어메(엄마)’ 라는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어매’ 소리를 2~3분간 안간힘을 쓰면서 지르시더니 더 이상 입모양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남은 우리는 선생님이 남기신 뜻이 무엇인지 새기면서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선생님 부디 ‘어머니 계시는 그 나라에’서 전쟁과 폭력, 가난과 소외, 질병의 고통 없는 그 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김용락(경북외국어대 교수. 시인)
이 글은 [한겨레] 2007년 5월 21일자 28면에 실린 전문으로, 한겨레와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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