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살리는게 내가 사는 길"

평화뉴스
  • 입력 2004.04.2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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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동산' 김금옥씨.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의 어느 2층집.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 이 집 문 앞에 ‘보림사-룸비니 동산’이라는 작은 알림판이 눈에 띈다.
2층은 스님들의 불경소리가 울리는 ‘보림사’고, 1층은 7명 중증장애아동들이 살고 있는 ‘룸비니 동산’이다.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인도의 작은 마을.
이곳에서 5년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김금옥(52)씨.
김씨는 20년 전 췌장암 수술을 해서 이미 몸속에 6가지 장기를 떼냈다. 그동안 건강문제로 대수술을 3번이나 한 김씨. 그 때문에 김씨는 방을 쓸고 닦는 것조차 남들보다 몇 배로 힘들다.

수성구 범물동의 영세민 아파트에서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살지만, 매일 아침 ‘룸비니 동산’을 찾아 아이들을 돌보면 자신의 아픈 몸도, 외로움도 다 잊어버린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없는 아이들. 하지만 김씨는 “내가 살아온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무작정 가출, 떠돌이 가수에서 술집까지...뜨개질로 옷 만들어 고아원에 남몰래 전달

경기도 수원이 고향인 김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오빠와 언니들이 있었지만 가난한 생활 속에서 김씨의 마음을 다독여주지는 못했다. 빨리 일을 해서 학교도 가고, 돈도 많이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가출했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기차 안에서 껌을 파는 일부터, 약장수를 따라 장터를 돌아다니는 떠돌이 가수 생활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돈도 벌지 못하고 가족들과는 연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노래하고 술을 따르는 것이었다. 18살에 대구로 와 영주, 포항, 영천 등 경상도 곳곳을 떠돌며 20대의 젊은 시간이 흘러갔다. 남은 것은 아픈 몸과 의지할 곳 없는 마음뿐이었다.

김씨는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아무 절에나 들어가 “제발 이런 생활을 그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며 부처님 앞에 엎드려 울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에게 “전생에 죄가 많아 그런 것이니, 보시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빚뿐인 내가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고아와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그때부터 뜨개질을 해 고아원 아이들에게 줄 겨울옷을 만들었다.

췌장암 말기, 6개월 시한부 인생...남에게 봉사하는 새로운 삶으로 거듭난지 20년

해마다 겨울이 되면 고아원에 60여벌의 옷을 몰래 주고 오기를 몇 년. 김씨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지난 ‘85년 경북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삶의 보람을 찾아갈 무렵인 ‘87년, 김씨에게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생존율 10%. 의사는 “수술을 해도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모금이 이어졌다. 마침내 12시간에 걸친 대수술. 그러나 의사들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체념했다.


◇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위치한 보림사 '룸비니 동산'. 7명 장애아동들의 보금자리다.

김씨는 그동안의 삶을 후회하며 “남은 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부처님께 간절하게 불공을 올렸다.
그 덕분일까. 김씨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줄곧 남을 도우며 살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사를 시작했고, 그렇게 번 돈은 대부분 고아원과 양로원에 줬다. 고아원에 옷을 만들어 보내는 일도 15년을 계속했다.

김씨는 췌장암 수술 이후,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아, 두 번이나 또 다른 큰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에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고마워하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내가 몇 번의 큰 수술을 겪었고, 의미 없는 밑바닥 삶을 살았지만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니까요”

김씨를 20년간 알아온 경북도청 가정복지과 엄지호(58) 과장은 “김씨는 당찬 여인”이라고 말한다. “덩치는 작지만 사고가 열려있고 당찬 여자입니다.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며 부대껴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큰일을 할 사람이예요.”

중증장애아동 돌보는 ‘룸비니 동산’...앞으로 ‘마야의 집’ 꾸려 소년소녀가장과 노인들 돕기로

김씨는 5년 전 술장사의 인연을 끊고, 어느 스님의 도움으로 ‘보림사’에서 ‘룸비니 동산’을 꾸려 중증장애아동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쉰밖에 되지 않은 김씨를 ‘할머니’로 부르며 누구보다도 친근하게 대한다.

몇 달 전 8살 민기가 하늘나라로 갔다. 장기를 기증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마지막까지 간호했던 김씨지만 화장하는 곳까지는 차마 가지 못했다.
‘룸비니 동산’에는 이제 민국이(13), 선우(5), 남이(10) 등 7명의 아이들이 있다.

김씨는 현재 나이가 제일 많은 민국이에게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민국이는 자신이 배가 고픈지조차 스스로 알지 못할 정도로 장애가 심하다. 나이가 제일 어린 선우는 갓난아기 때 이곳으로 와 친어머니의 품도 알지 못한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넉넉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도록 보살펴주는 것”이다.



◇ 10살 남이(오른쪽)와 5살 선우(왼쪽). '룸비니 동산' 아이들은 누구보다 천진하다.
김씨는 지금 ‘룸비니 동산’의 아이들뿐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
지금 남부정류장 근처에는 ‘보림사’를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달 말, 공사가 끝나면 ‘룸비니 동산’ 아이들은 ‘보림사’ 스님들과 함께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러나 김씨는 지금의 집에 그대로 남아, 다른 사회봉사활동을 하려고 한다. 집을 고쳐서 힘들게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장 4~5명과 함께 살려는 것. 또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위해 요일별로 ‘자원봉사활동팀’을 만들어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파견봉사활동’도 계획해 두었다. 얼마 전 ‘마야의 집’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짓고, 법인도 신청했다.

“불경 공부도, 보시도 모두 한 순간입니다. 상대방에게 웃음을 줄 수 있고, 힘을 줄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남의 가슴이 어루만져주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나이 50이 넘어 깨달았어요. 나에게 살아갈 시간이 있고, 힘이 있는 한 끝까지 사람들을 돌보며 살 겁니다.”

부처님 어머니의 이름을 딴 ‘마야의 집’. 그 속에 소년소녀들의 어머니로, 소외된 노인들의 보호자로, 자신의 남은 생을 바치려는 김씨의 마음이 묻어난다.


글.사진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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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평화뉴스에 2004년 4월 3일 보도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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