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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열풍, 총으로 성장한 나라 미국"
[주말 에세이] 이진이(방송작가)
"미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총을 든 나라들은 어떨까?"
2007년 07월 19일 (목) 18:07:21 평화뉴스 pnnews@pn.or.kr

미국드라마가 인기다.
인터넷에서는 ‘미드’라는 이름으로 미국드라마 열풍을 알리고 있고, 케이블TV에서는 경쟁적으로 미국 드라마들을 방송하고 있다. 그러자 공중파까지 들썩이며, 미드 열풍에 합류했다. 다운로드를 받아 볼 수 있는 클럽과 사이트들도 인기다. 아예 미국 방송 시간대에 맞춰 드라마를 공수해서 직접 번역까지 하는 동호회까지 생겨났다. 그들 덕분에 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TV가 아닌 컴퓨터로 미국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인 스코필드라는 배우가 ‘석호필’이라는 애칭까지 얻어 내한하기도 했다.

나 역시 미국 드라마를 즐겨본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드라마와는 다르게 너무 완성도 높고, 너무 흥미진진해서 한번 빠져들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작품들이 많다. 최근 들어서 ‘미드, 미드’ 하지만, 사실 미국드라마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친숙하다. 어릴 때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흑백TV로 봤던 <초원의 집>에서부터 <6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같은 ‘기인열전’이나 <수퍼매> <원더우먼> 같은 미국식 영웅의 이야기도 별 생각없이 열광하며 봤었다.

<맥가이버> <마이애미 바이스> 같은 모험물은 물론이고, <야망의 계절> 같은 미니시리즈도 눈물 찍어가며 봤으며, <제시카의 추리극장>는 마니아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시청했다. 몇 년 전에는 다소 엽기적인 뉴욕 여피 변호사가 주인공인 <앨리 맥빌>에 빠져있곤 했었다.

그후로는 한동안 미국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TV에 눈을 뗄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때마침 영국 BBC에서 제작된 영국명작 시리즈에 홀딱 반하는 바람에 한동안 미국 드라마를 잊고 있었다.

   
▲ CSI 라스베가스 시즌7
 
그러다가 최근에 하도 주변에서 'CSI'에 대한 말들이 많아서 한편씩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왠걸, 재미가 장난이 아니었다. 볼 사람들은 이미 다 본 후, 뒤늦게 이 드라마를 보 시작했기 때문에, 인터넷의 드라마클럽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한편 다운 받아서 보기 시작한 게 지난해 여름이었던가? 1년에 걸쳐 이 시리즈를 다 보았다. 본편 'CSI'가 시즌 7까지 방송됐고, 'CSI 마이애미'가 시즌 5, 'CSI뉴욕'은 시즌 3까지니까, 정말 그 양이 방대하다.


중간에 그만 두고 싶어도,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그만 두기 힘든데다가, 뭘 하나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나의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 때문에 결국 1년 동안 한 드라마를 보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처음에는 재미로 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저력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됐다.
‘그들은 드라마도 이렇게 만든다, 미국의 해외전략에 가장 큰 무기는 역시 엔터테인먼트 산업, 영화와 TV드라마, 그리고 음악’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온몸으로 느끼게 됐다. 작년에 옛 유고연방이었던 크로아티아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CSI가 방영되고 있었다. 미드, 즉 미국드라마는 맥도날드 햄버거나 스타벅스만큼이나 강력한 것이다.

그런데 시리즈 전체를 다 섭렵할 무렵부터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 딱하게 느껴졌다.
드라마 속의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 美國’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튈 줄 모를 무서운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었다.

'CSI' 시리즈는 매회 적게는 1명, 많게는 수십명의 사망하는 강력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살인사건에서 죽은 사람들의 8할은 총 때문이다. 미운놈을 총으로 쏴죽이는 경우도 많고, 마약이나 돈, 이해관계 때문에도 총을 갈기지만, 총기사고로 죽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군다가 총기사고 중 절반 이상은 미성년자와 관련돼있다. 곁에 총이 없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도 때때로 청소년이나 어린아이에 의해서 저질러진다. 이 얼마나 무서운 나라인가!!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그의 영화 <볼링 포 콜롬바인>을 통해서 ‘총의 천국’이 돼버린 미국사회를 해부하고 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살인사건의 대부분이 총 때문이고, 손만 뻗으면 총을 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1999년 콜롬바인 고등학교의 총기난사 사건도 일으켰다는 것이다. 무어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총기협회와 군수산업과 미국보수세력, 공화당과의 결탁 등도 까발리고 있다. 미드 열풍의 눈인 'CSI'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막말로 미국은 총으로 일어나서 총으로 성장한 나라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건국신화인 ‘서부개척사’가 그랬고, 미국 이외의 땅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전쟁과 분쟁을 통해 미국은 성장했다. 좀더 잔인하게 말하면, 미국은 총알로 얼룩진 타인의 피를 먹고 커온 나라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제 미국을 이만큼 키워준 총이 미국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총을 이용한 살인사건은 해마다 증가하고, 총기사고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거기에는 총의 위험성을 모르는, 아니 일찍부터 너무 총에 익숙해져버린 어린 아이들도 있다. 정말 무섭지 않은가?

만일 내가 살고있는 동네에서 어느날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총을 맞고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후유증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번도 총을 본 일이 없고, 만져본 적은 더더욱 없는 사람들은 총으로 뭔가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늘 곁에 총이 있는 사람은 극단의 경우, 총을 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총기가 허용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더, 무척, 많이, 굉장히, 엄청나게 클 수 있는 것이다.

'CSI'시리즈를 즐겨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 건 좀 의외긴 하다.
하지만 계속 되는 총성에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내가 사는 나라가 총기를 허용하지 않은 나라라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게 생각됐다.

내가 여행한 여러 나라도 총기소지는 불법인 곳이 많았다.
어쩌면 그래서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비자 때문에 아직 미국여행은 못해봤지만, 총 때문에라도 그렇게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미국은 스스로 총을 선택한 나라다.
하지만 미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총을 든 나라들은 어떨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미국은 재미난 것들도 많이 만들어내는 나라지만, 이래저래 남의 나라에 해도 많이 끼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주말 에세이 47]
이진이(대구MBC 방송작가)



(이 글은, 2007년 7월 13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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