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고향, '베다니'를 지켜주세요"

평화뉴스
  • 입력 2007.09.0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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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투고] 문창식
"시설 폐쇄로 또 생이별..그 아픔은 어떡합니까?"


대학 1학년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대구 동구 율하동에 위치한 한 아동복지시설(그때는 고아원이라고 불렀다.)을 찾았다. 지금은 생활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1983년 당시에는 대부분 복지 시설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오죽했으면 죄지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시설보다 못하다고 했을까?

영아부터 고등학생까지 100여명이 대가족을 이루고 생활하고 있는 그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설픈 솜씨로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코흘리개 한 꼬맹이가 다가와서 무릎 위에 앉았다.
가만히 껴안아 주었더니 품속으로 자꾸 파고들었다. 애정에 굶주린 행동이 안타까웠지만 뼈마디가 앙상하게 느껴지는 어린 친구의 육체가 더더욱 가슴 아팠다.

왜 이렇게 야위었을까? 궁금증은 점심시간이 되자 금방 풀어졌다. 아이들의 식판에는 보리밥 한 주걱, 멀건 무국, 그리고 춘장 한 스푼이 모두였다. 그것도 양이 턱 없이 적어 아이들은 순식간에 식판을 비우고도 아쉬운 듯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내 식판을 어린 친구 앞으로 내밀어 주자 잠시 서로 눈치를 보더니 서 너 개의 숟가락이 다투듯이 오갔다.

시설의 열악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반찬 투정이나 하며 자랐던 내 어린 시절이 그렇게 사치스럽고 죄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꼬맹이는 그동안 살아왔던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이념 학습과 군부타도, 민주 쟁취를 위한 집회에 쫓아다니고, 밤이면 밤마다 자유, 평등을 안주삼아 술자리를 이어갔던 내 모습이 얼마나 모순 덩어리였는지를 깨닫게 만들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진정한 이웃(민중)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웃(민중)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이루는 데 일조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 하였다.

그리고 십 수 년이 흘렀다. 나는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민운동에 몸담고 있었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다. 꼬맹이를 만났던 그 아동복지시설 출신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 그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어엿한 숙녀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대부분 친구들은 성장하면서 아주 먼 친척일지라도 한 명 이상의 혈육은 만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 세상에서 가족은 달랑 자기 혼자란다. 십 수 년을 수소문했는데 단 한명의 혈육도 찾지 못했단다. 그동안 얼마나 좌절하며 외롭게 살아왔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 왔다. 아직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그 친구에게 이젠 오빠라고 불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내 여동생이 되었다. 그 뒤 여동생은 내개 소개한 착한 사람과 결혼하여 지금은 두 명의 조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이렇듯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고, 여동생과 귀한 인연을 맺게 해 준 곳이 다름 아닌 베다니농원이다.
그런데 최근 법인 이사장이 베다니농원을 폐쇄하겠단다. 이전도 아니고 완전히 문을 닫는 것이다.

40여명의 아이들이 졸지에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지난 40년 동안 이곳에서 성장한 후 사회로 진출한 수많은 이들의 고향이 없어지고, 내 마음의 고향이 없어지는 것이다. 택지개발로 100억원 가까운 보상금을 받기로 합의한 뒤라 더욱 씁쓸했다. 보상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아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가족같이 살아온 형제들과의 생이별이다. 가족으로부터의 버림에 이은 복지법인으로부터의 또 한 번의 버림, 그들의 상실감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율하택지개발지구 공사장에 40명 여 명의 어린이 가족을 수개 월 째 방치하고 있는 사회, 아무렇지 않게 인위적으로 그 가족을 해체하는 대구사회라면 더 이상 나는 살고 싶지 않다.



문창식(참길회 운영위원.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

* '참길회'를 비롯해 그동안 아동복지시설 베다니농원에서 봉사활동을 해 온 단체와 후원인들은 복지재단의 '베다니농원 폐쇄'에 반대하며 9월 5일부터 대구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첫날 문창식씨의 1인 시위 모습으로, '참길회'가 보내준 사진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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