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시골집"

평화뉴스
  • 입력 2008.04.0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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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백승운(영남일보)
"고향처럼 좋은 줄만 알았다. 외로운 타향을.."


"요즘 나 '번쩍거리는 화살표'가 보여".
예순 셋 노모의 퀭한 눈가에 눈물이 얼핏 비친다.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노모의 묵직한 고요가, 사납고 불길하다.

'번쩍거리는 화살표'라니? 무슨 소리를 하시나?
"몇일전에 자고 일어났는데 눈앞에 번쩍번쩍하는 불빛 왔다갔다 하는 거야. 눈을 아무리 비벼봐도 좀체 사라지지도 않고... 컴퓨터 화면에 보면 왔다 갔다 하는 화살표 있잖아. 그거하고 똑같이 생겼어"

"마우스를 움직이면 따라다니는 화살표 표시 그거 말이에요?"
"응"

"그런데 그게 왜 보여?"
"글쎄 말이다"
"지금도 그래요?"
"벌써 몇일째 그래"

울산에 살던 노모는 3년전 경주에 터를 잡았다. 형이 부업으로 하는 펜션을 '당신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노모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경주의 한 시골마을. 그곳은 노모의 어린날의 시야가 머물렀던 공간과 닮았다. 풍경이 그랬고 사람사는 모습이 그랬다. 콘크리트의 비린내를 유난히 싫어했던 노모는 그게 마냥 좋았다. 펜션마당 한켠에 텃밭을 만들고, 친하게 지내던 마을사람의 땅을 빌려 조그만 고추밭도 만들었다. 그 보잘 것 없는 풍경은, 언젠가 장롱위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낡은 앨범속의 풍경, 귀퉁이가 찢어지고 중간중간 나이테 같은 금이 가있던 노모의 고향모습과 같아 보였다.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양산을 든 화사한 표정의 여인이 아닌, 고추를 붉히는 따가운 햇살 아래서 땀범벅이 된 노인. 그게 당신이 살아 온 이력이기에 노모는 마냥 경주의 생활이 좋았다. 나 역시 그런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3년동안 노모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외로움이었다.
아무리 경주의 풍경이 당신의 고향 모습을 닮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타향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모의 그 고민을 가끔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냥 한때의 속앓이겠거니 하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게 사달이 난 모양이다.

"병원엔 가보셨어요?"
"아니"
"몇일째 눈이 그런데 아직까지 병원도 안가봤냐"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막내아들의 닥달은 몇분간 이어졌다.
그제서야 노모는 마지못해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는다.

병원에서는 더 충격적인 진료결과가 나왔다. 눈 안쪽에 이물질이 떨어져 그게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이물질이 '번쩍거리는 화살표'로 보인다는 것이 의사의 짧은 답변이었다. 여기에 백내장까지 겹쳐 언젠가는 수술을 해야될 처지라고 한다. 의사는 나이가 들면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지만 눈 안쪽에 있는 이물질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아마도 3년의 외로움이 스트레스로 ‘전이’된 모양이다.

굳은 표정으로 병원을 나서는 막내아들과는 달리 노모는 의외로 담담해보였다. 평생을 불편한 눈으로 살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멀리 뻗어있는, 어둑해져오는 뒷산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그저 먹먹해 어쩔 줄 모르는 아들과는 달리 노모는 그새 텃밭에 또 걸터앉는다. 봄에 심을 씨앗이라며 텃밭이랑을 만지작거리는 노모의 주름진 손이 애초로워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노모는 그 불편한 눈으로 저 텃밭에서 또 비지땀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당신곁에 서성거리는 불안과 외로움을 혼자 그렇게 고스란히 감당해내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무의식속에 개입하면서 잠시 눈의 초점을 잃은 사이, 텃밭에 있어야할 노모가 보이질 않는다.
뒷마당 저쪽에도 없다. 고개를 치켜세우고 보아도 노모는 보이지 않는다.

'대체 그 눈으로 어디를 가신 걸까'
노모가 사라진 시골공기가 그렇게 사납고 불길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언제 내려갔는지 집앞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노모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빨래는 세탁기에 넣으면 되지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요?...그리고 어디간다면 간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몸도 안좋으면서..."

짜증을 부리는 막내아들의 모습에 노모는 씩 웃으면서 말한다
"별로 되지도 않는데 세탁기는 왜 돌려…괜찮다 들어가자"

대구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어머니가 없는 그 뜻밖의 부재. 그 상실의 충격을 생각한다. 두렵다.
늘 투정하는 아들이었지만, 그래도 곁에 항상 계실 거라고 믿어온 노모가, 오늘은, 저 뜻밖의 부재로, 또 뜻밖의 불편함과 뜻밖의 외로움으로, 그 시골집을 한없이 낯설게 만든다. 평일 밤 지나치리만큼 반가워하는 기색의 목소리가 전화속으로 밀려온다. 노모다. 어머니다.

[주말 에세이 70]
백승운(영남일보 기자. 주말섹션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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