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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그 시절 겨울이 눈물나게 그립다"
박선희.."코끝 차갑던, 부족해도 온정 넘치던 그 겨울의 추억"
2008년 12월 12일 (금) 10:03:38 평화뉴스 pnnews@pn.or.kr
어느새 거리의 가로수들은 뼈만 앙상히 남았다.
지난 봄날의 슬프도록 눈부셨던 아름다움과 여름날, 청춘의 부푼 가슴마냥 싱그럽기만 했던 신록 그리고 불타듯 수놓았던 단풍의 절정을 이젠 추억 속에 드리우고 다시 새 생명을 위한 진통처럼 헐벗은 모습으로 겨울 앞에 섰다. 뚝뚝 떨어져 나뒹굴던 낙엽들마저 사라지고, 도시는 여느 해와 다름없이 겨울맞이를 시작했다. 과일가게엔 샛노란 귤이 잔뜩 나와 있고, 김이 모락모락 리어카의 꼬치어묵과 금세 구워져 나온 황금빛깔의 붕어빵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런 겨울초입의 모습들은 여전히 많이도 닮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옛날처럼 흔히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겨울을 알리며 동네 구멍가게 앞마다 떡하니 버티고 서던 동그란 호빵찜통이다. 김이 서린 호빵찜통 안에서는 양은 찜기 위에 나란히 올려진 호빵들이 모락모락 따끈한 김을 토해내고, 차가운 겨울날씨에 종종걸음을 치다가도 잠시 머뭇거리며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그 유명한 S식품에서 만들어 낸지가 거의 40년이 되어간다고 하니 호빵도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맞고 있다. 20원이란 가격으로 시작한 호빵은 이제 대형마트에서 봉지채 팔리고 있다.

단호박이나 초코등의 다소 어색한 이름까지 달고서 아직까지 건재하고 있는 호빵, 그러나 역시 호빵은 단팥호빵이 최고다. 빵 두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팥소지만, 달콤하고 뜨끈한 호빵맛은 입이 궁금하던 한겨울밤 최고의 간식거리 중 하나였다. 구멍가게 호빵찜통 속 양은 찜판을 도르르 돌려서 뜨끈한 호빵을 집게로 꺼내어 봉지 속에 담으면 그 따뜻함은 집까지 간다. 아니 아이들을 주기 위해 혹은 노모를 드리기 위해 식을까봐 코트 속 따뜻이 감싸 안고 달려가는 가장의 가슴팍에서 호빵의 따뜻함은 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붕어빵 장수가 있었다.
겨울에 언니들 심부름으로 사러 가기도 하고 아버지께서 들어오시면서 사오시기도 하셨는데 그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는 늘 멍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휑한 눈, 어둡게 드리워진 눈그늘에 불친절할 정도로 항상 말없이 붕어빵만 뒤집고 계셨다. 오랜 시간 연탄불 앞에서 붕어빵을 구워 내셨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렇게 독한 연탄가스를 마셔가며 하루종일 붕어빵을 굽고 또 구워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를 하셨을 것이다. 그것이 천직인양 그렇게 평생을 연탄앞에 서 계셨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연탄가스 중독이란 말자체가 잊혀져 가고 있지만, 옛날엔 그렇게 연탄가스로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겨울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연탄을 쌓아두는 것이 김장을 담그는 만큼이나 중요한 월동 준비중 하나였던 때가 있었다. 계단이 높은 주택, 오르막이 많은 동네, 5층짜리 엘리베이터 없는 단층 아파트에도 아저씨들의 연탄은 쉼 없이 배달되었다. 추운 겨울에도 구슬땀을 비 오듯 쏟으며 온통 숱검정으로 얼룩진 옷과 장갑으로 마치 묘기를 부리듯 잔뜩 쌓아올려 자신의 키보다도 더 높아진 지게를 지고 힘겨운 한걸음 한걸음을 디디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힘든 시절을 견뎌냈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가정에 묵묵히 충실했을 것이다. 그속엔 우리들의 아버지,어머니 당신들의 모습이 있다. 생의 한가운데서 힘든 현실속에 발을 딛고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당신들에게 우리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눈 내린 팔공산..(사진.독자 김재민씨)

밖에 물을 내놓으면 밤사이 꽁꽁 얼어버리는 매서운 추위와 한번씩 내리는 눈은 발이 푹푹 빠지는 폭설이 이어지곤 했던 그 시절의 겨울.

이제 백발의 부모님에게는 춥고 고생스러웠지만 그리운 옛 추억속의 겨울이며 성인이 되고 변해가는 세상속에 유년시절의 기억마저 퇴색되어져 가는 우리에겐 어쩜 어느 순간인가 까맣게 잊혀질 겨울일지도 모른다.


어쩌다 하나씩 먹었던 그 꿀맛 같던 호빵은 이제는 입맛마저 고급화 되어버린 요즘 아이들에게 찬밥신세가 되었고, 연탄불은 가스불로 바뀌어 이름도 함께 바뀐 잉어빵은 모양도 예쁘게 금세 구워져 나온다.

연탄불이라도 어쩌다 꺼트리면 무슨 큰 죄라도 지으신 것 마냥 착화탄을 사다가 다급하게 다시 불을 지피시던 어머니. 하지만, 이제 방바닥은 뜨겁고 코끝은 차갑던 그 시절의 겨울은 없다. 모든 것이 참 편해지고 넉넉해진 세상. 날씨마저 겨울답지 않고 따뜻해진 겨울.

그래도, 우리는 가끔 그 시절의 겨울을 추억한다. 옹기종기 온돌방 따끈한 이불속에 다리를 집어넣고 귤바구니 끼고 앉아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던 그때가 눈물나게 그립다. 폐지로 난로를 지피고 그 위에 도시락을 차곡차곡 쌓아 구수하게 밥타는 냄새가 나던 그때의 교실, 선생님, 친구들이 그립다. 힘들지만, 춥지만, 사람 사이에 정만큼은 넘쳐났던 시절을, 넉넉하지 않아도 아니 부족해서 서로의 나눔으로 그 정을 더 돈독히 나누던 그 겨울이 그립다.

최근 악화된 경기 탓에 올 겨울은 유독 실업의 공포와 불안한 가정경제사정으로 체감온도는 더 차가워질 것이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자에게 겨울은 더 힘겹다. 작은 집칸 하나, 온가족 오붓이 둘러앉아 먹던 소박한 밥상,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렇게 작지만 소중한 것에 감사하며 걸인에게 내 텅빈 지갑을 털어 동전 하나라도 던져 줄수 있는 마음을 우리에게 나눠 주셨다.

이기심이 팽배해지고 대박을 바라며 세상의 인심은 일년내내 겨울일때도 많아진 요즘, 겨울, 그 잊혀져간 것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주변을 돌아보며 나보다 힘든 이들에게 베풀수 있는 온정의 마음은 쉽게 잊혀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집앞도 걸어나가기 귀찮아하는 요즘,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린 ‘찾아가는 서비스’ 가 문득 떠오른다. ‘찹쌀떡 사려~~~’ 갑자기 내려간 기온으로 추워진 오늘 같은 밤, 내 집 앞을 지나간다면 고민도 않고 사 줄텐데 말이다.

   
 



 

[주말 에세이] 박선희

*. 박선희씨는 팔공산 아래 대구시 동구 지묘동에 살고 있습니다.
추억어린 글과 사진으로 예쁜 블로그(http://blog.naver.com/allpine88)를 꾸며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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