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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시인의 '길'을 따라가며..
김동원.."식민지 지식인이 돌아가고 싶었던 그 길은.."
2008년 12월 26일 (금) 18:05:03 평화뉴스 pnnews@pn.or.kr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처럼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빰의 얼룩을 씻어 준다.

                                                                                       〈朝光, 1936. 3, 출전: 깊은 샘〉

輓歌는 전통적인 장례 절차에서 상여를 메고 장지로 갈 때에 부르는 노래다. 죽은 이의 추모의 글이 비단이나 종이에 적혀 긴 깃발처럼 흔들리는 만장을 앞세우고, 자신이 나온 길로 되돌아가는 그 슬픈 가락을 선소리꾼이 부르면, 다른 이들은 후렴 구를 따라 불러 서럽게 돌아가는 망자의 생의 마감을 더한층 허공 위 애조를 띠게 한다.

인간이 일생동안 걸은 그 무수한 길 중에 가장 비극적이고 신비로운 길이 있다면 그건, 죽음이 아닐까. 7살 어린 아들이 죽은 제 어머니가 꽃상여에 싸여 눈물과 통곡 소리 들리는 바다가 보이는 알 수 없는 언덕길로 너머 가는 그 광경을 지켜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미루어 짐작컨대, 얼마나 어린 마음에 크나큰 상처가 됐을까.

우리는 그 소년의 두 볼에 흐르던 눈물의 의미를 김기림의 시 「길」의 궤적을 따라가며 조금이나마 젖어 보고자 한다.

기림의 고향은 언덕에서 동해 성진 灣이 내려다보이는 함북 학성군 학중면 임명동 276번지다. 양력 5월 11일생인 이 시인은 온후한 성격과 성실한 인간관계로 일생을 빛낼 황소자리별이 운명자리다. 시 「길」은 그의 또 다른 詩觀인 모더니즘 운동에 비껴있는 직관적 순수서정이 돋보이는 빼어난 수작이다. 시인이 일제 식민지의 고달픈 현실과 지식인의 고뇌 속에서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이 바로 「길」속의 정경이 아니었을까.

모성은 태초의 근원이며 남성의 영원한 고향이다. 이 시 앞에서 가만히 귀를 열고 들어보면, 슬픈 단조의 파와 라 음이 저 먼바다에 쓸려오는 물결 소리와 함께 첫사랑 소녀의 음색에 채색되기도 한다.

아무리 불러도 찾지 못할 저 빈 하늘위로, 7살 때 어머니를 잃어버린 김기림은, 시 「길」을 1936년 3월 잡지『조광』에 발표했다. 마치 목화 솜처럼 물을 빨아들이듯, 시 「길」은 그리움과 외로움에 지친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조약돌처럼 집어들었다 잃어버린 조국의 슬픈 처지와 함께 마음 바닥 속에 끝없이 길 잃은 자의 불안의 떨림에 크나큰 위안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언제까지나 강가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 본 이들은 다 알겠지만, 상실의 상흔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더 뼈 깊이 저려오는 쓸쓸함이, 해질 무렵 그 알 수 없는 스산한 정서다.
그는 시집 『태양의 풍속』에서 태양의 내밀한 일상을 통한 불길처럼 일어나는 지성적 관조와 참담한 식민치하의 지식인의 한계를 불타오르는 태양의 목통으로 절규하는가 하면, 바다와 연약한 나비의 대비를 통해 냉혹한 현실에 대한 도전과 좌절을 보여 주는 섬광처럼 번뜩이는 시, 「바다와 나비」같은 절묘한 시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시 늦가을과 초겨울 어둠이 오기 전, 오후 서너 시 무렵으로 돌아가야한다. 초겨울 첫눈이 내리기 전 성진 만 바다를 배경으로 철새가 제 고향으로 날아가는 마을 강가를 끼고, 동네 앞 느티나무가 띄엄 띄엄 선 그 곳에서, 시 「길」을 낭송 무대로 올려보고 싶은 욕망을 감출 수 없다.

5분 정도의 이 시 낭송은 치마폭이 넓은 비로드 천의 자줏빛 원피스에 흰색 스카프를 두르고, 어둠이 짙어오는 길목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선율은 맡겨둔 채, 시 「길」을 낭송하면 어떨까.

이 시의 시적 자아는 남성인데 낭송은 여성 1인의 무대면 알맞겠다. 보라 계열의 아주 연한 립스틱에 그물 망사로 뒷머리칼을 쓸어 말아붙인 모양태의 올린 머리와 서른과 불혹을 넘어가는 낭송 가면 좋겠다. 대부분 자식을 잃어본 아픔이 있는, 20명 쯤의 상처난 영혼의 관객이 초대되면 좋겠다. 개인의 파인 굴곡과 아픈 얼룩이 내면 속 깊이 묻혀있는 관객이면, 이 시의 외롭고 쓸쓸한 선율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을까.

우리는 그룹 시크릿 가든의 곡 「비밀의 화원」을 배경음으로 선정한다. 이 음악 속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가슴 속 아려오는 음울한 이별의 상흔이 선율 사이사이 가닥가닥 엮어져 있다. 시 「길」속에 비치는 미처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시인 김기림의 잃어버린 비밀을 이 배경음은 엿듣게 해줄지 모른다.

아! 그때, 그 낭송 무대 위로 제 고향 찾아가는 어린 새끼 기러기 떼와 어미 기러기가 먼 하늘 한 줄 전설이 되어 날아간다면, 낭송 무대론 더 큰 복도 없겠다.

   

 

 


[시인의 편지 8] 김동원 시인

 김동원 시인 / 경북 영덕 출생. 한국문협.대구문협.대구민족작가협회 회원, 송앤포엠 대표.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동시집 <우리나라 연못 속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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