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s Lee가 주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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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효율적 통치 위해 생명까지도..정말 슬프다"

<로이터통신>은 외신 중 제일 처음 용산 철거민 죽음의 소식을 “Korea's Lee under pressure as fire kills protesters”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너무 창피한 제목이지만, 영어에는 아예 문맹인지라 ‘한국의 이(대통령)가 반대자를 불길로 죽였다’라고 번역(?)한다.

이 기사는 “화요일, 경찰과 보다 좋은 보상을 요구하는 거주자 사이의 5층 건물에서 불이 나 5명의 한국인이 죽었다”면서 “경기 후퇴로부터 아시아의 4번째로 큰 경제를 끌어내는 일을 가속화되기 위해서 Lee가 내각의 경제 포트폴리오를 잘라 고친 1일 후에 벌어진 비극의 엔딩은, 이 대통령을 수세로 몰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인기 없는 Lee가 반정부 항의자들에 의해 강력히 비판받아온 경찰 수뇌(chief)를 교체한 후 이틀 만에 불은 또 왔다”며 “Lee는 작년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나라를 여는 그의 결정에 대하여 항의를 받아왔다” “글로벌인 경제 위기 하의 정부 정책에 비판에 직면하고 있었던 Lee는 최근 경제부처 수장을 교체했다”고 덧붙였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이 생소할 때 부터 우리에게 스멀스멀 침투해온 효용성의 논리가 이제 자유니 정의니 신뢰니 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도덕마저 잠식해가는 모습을 본다. 가난한 사람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가는 그 가난한 이유보다는 돈을 많이 벌 기회를 제공하겠으니 열심히 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방식과 얼마의 희생은 필연적이라는 논리가 괴물처럼 우리들의 앞을 버티고 있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서는 법 해석에 따라 생명까지도 죽일 수도 있다는 끔직한 사고가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효용성이라는 괴물은 힘없는 백성을 테러리스트로 보았고, 반드시 그리고 당장  전투를 벌려야한다고 이스라엘 전투기처럼 새벽에 침투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고교생 모두가 원한다고 서울대에 다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일류대 나왔다고 모두가 대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아니듯이 기회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가능하지 않는 것이 이 사회의 구조다. 그리하여 효용성의 논리보다는 정의의 논리가, 신의의 논리가 치자에게는 어떤 덕목보다 우선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백범일지를 목민심서를 금과옥조로, 정치이념으로 한다고 그리 떠들던 우리의 정치인들이 ‘더불어 살기, 신뢰, 정직의 목민사상’보다는 ‘우선 먹고 살기위해서는 생명을 죽이는 일’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는 약한 자들의 눈물은 양념’이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하나?

혜왕이 맹자에게 물은 치도(治道)에 ‘나라는 이익보다 인의를 취해야한다’고 가르친다. 무이당선생은 인의(仁義)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간의 신뢰이고 정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했다. 그런데 관계를 효율성의 잣대로 신뢰를 조직폭력배들이 말하는 끼리끼리의 신의로 생각하는 듯 한 오늘의 모습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Korea's Lee가 주는 눈물보다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주는 ‘진실’  ‘신뢰’라는 말 앞에서 감격해하는 눈물을 흘리고 싶은데........

이번 겨울이 유난히 차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기고] 김영민(김천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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