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문제, 심각하다”

평화뉴스
  • 입력 2004.08.0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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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의 시사칼럼 25>
“교육운동의 첫째 가치는 학생..학생 앞에 성역은 없다”
"전교조, 교사 자신의 문제에 너무 관대...'교사들의 이익단체'라는 비판에 직면"



며칠 전 [평화뉴스]는 경북 구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를 보도했다. 한 선생님이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받은데다가 1학년 초등학생이 교재를 안 가져왔다는 이유로 2-3시간 동안 벽보고 서있게 했다는 기사였다. 학부형의 항의를 받은 경북 교육청은 사실 조사를 거쳐 위 교사를 견책 처분하고 벽지로 전근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이 기사를 접한 필자는 착잡함에 사로잡혔다. 평소에도 우리나라 학교와 교육과 선생님 생각만 하면 답답하고 착잡했는데, 그 눌려있던 착잡함이 참기 힘들 정도로 치올랐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교사의 문제’ 때문이다.
물론 37만의 교사들이 모두 흠결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속상한 것은 ‘교사의 문제’가 너무 광범위하고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교사로서의 도덕성과 자질이 부족한, 심한 경우에는 학교 선생님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교사들도 적지 않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교육 행정에, 교장 선생님의 학교 관리 방식에 아무리 문제가 많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으로 돌릴 수 없는 ‘교사 자신의 문제’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학부형이기도 한 필자의 판단이다.

촌지받는 선생님, 도저히 사랑의 매라 볼 수 없을 정도의 적나라한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님, 비교육적인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선생님, 간부 학부형들로부터 술과 식사 등의 향응을 받고 그들의 자녀 학생에겐 이치에 닿지 않는 상을 주는 선생님, 학생의 가능성을 찾아 키워주기는커녕 아예 짓눌러 버리는 선생님 등이 적지 않은 것이다. 1학년 초등학생에게 어이없는 벌을 주거나 그 이상의 비교육적인 처사를 행하는 선생님이 어디 며칠 전 징계받은 구미의 아무개 선생님뿐이겠는가?

교육행정, 교육운동의 첫째 가치는 ‘학생’...학생 앞에 성역은 없다“
“전교조, 교사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결국 교사들의 이익단체가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


더 안타까운 일은 교사의 문제가 마치 성역처럼 가리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자질없는 교사들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학생과 학부형이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입을 열어 문제를 제기할 경우 자기 아이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성한 스승을 해꼬지하는 못된 학생이요 학부형으로 손가락질당할 것까지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웬만해서는 보도조차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마치 버릇없는 학생만이 문제고, 버릇없는 학생을 감싸고 도는 학부형만이 문제인 듯이 보도되기 일쑤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의 문제는 대부분이 묻혀 지나간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교육 문제’의 중요한 책임은 교사에게 있다.
만약에 우리 사회에 ‘학교 붕괴’, ‘교실 붕괴’가 있다면, 교사에게 책임이 크다. ‘왕따’로 고통당하는 어린 아이가 있다면 그 역시 교사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교육부나 교장 선생님에게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잘 알지만, 교사의 문제도 그 못지않은 것이다. 하루하루 교실에서 선생님과 마주대하며 선생님을 통해 인격을 연마하고 지식을 쌓고 세상을 배워가는 학생들에겐 교육부나 교장 선생님보다 선생님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장관이나 교장 선생님의 말 한마디보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의해 더 의욕을 얻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교조도 교육 제도와 교육 행정의 문제, 교육부와 교장 선생님의 문제에 적극 대응해 오면서 적지 않은 성과들을 이뤄 냈지만, 교사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게 대응해 온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참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전교조는, 참교육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그것이 제도적 장애든 교사 자신이든 단호하게 맞서야 했지만, 최소한 교사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전교조가 참교육을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교사들의 이익단체가 아니냐는 오해와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왜 징계받은 교사를 시골 학교로 보내하는가...
아이들을 '2급지 학생', '3급지 학생'으로 취급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둘째는 ‘왜 징계받은 선생님은 시골 학교로 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위의 징계받은 구미 지역 초등학교 교사는 징계의 일환으로 구미보다 낮은 급지의 학교 즉 구미보다 대구에서 더 먼 시․군의 학교로 보내질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문제있는 교사는 시골 학교로 보내는 것이 교육청의 교사 징계 규정이거나 지침 아니면 관행인가 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시골 아이들, 대도시에서 멀리 사는 아이들은 문제있는 교사에게 배워도 된다는 말인가? 왜 대도시에서 멀리 있는 학교가 2급지고 3급지고 4급지로 분류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완전히 교사의 입장에서 분류된 것 아닌가? 많은 선생님들이 기피하는 벽지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평점을 주기 위해서라면 이해가 되어도, 징계받은 선생님을 벽지 학교로 보내는 것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을 2급지 학생, 3급지 학생으로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교육 행정은 학생에게 맞춰져야 한다.
교육부나 교육청 행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도, 교장선생님이나 선생님의 첫째 준거도, 교사운동이나 교육시민운동의 첫째 가치도 학생에게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학생 앞에 성역은 없는 것이다. 교육부도 교장 선생님도, 선생님과 학부형까지도 우리 자신의 미래요 우리나라의 유일한 자산인 학생 앞에서 늘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학생이 올바른 인격을 연마하면서 건강한 역사의식과 세계관을 갖고 새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을 함양해 갈 수 있도록, 항상 겸손한 자세로 학생 앞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찜통처럼 무더운 날, 더욱더 필자를 답답하고 착잡하게 한 이번 사건이 2세 교육을 맡고 있는 모든 교사들이 자신을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나아가 모든 교육 행정과 교육계의 관행들이 학생의 관점에서 다시 평가받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홍덕률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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