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 민주적 개정이 필요하다”

평화뉴스
  • 입력 2004.08.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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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의 시사칼럼 26>
...“사학의 자율성보다 교육의 공공성.책임성이 먼저”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 논쟁도 초점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마디로 줄이면, ‘교육의 공공성.투명성.민주성 강화’를 강조하는 입장과 ‘사학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입장 사이의 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에는 그동안 교육민주화운동을 벌여온 단체들이 앞장서고 있고, 후자에는 사학법인연합회가 앞장서고 있다.

오래된 사립학교법 개정 논쟁에서 교육부와 국회는 늘 사학법인연합회의 편이었다. 교육 정의를 위해 온몸을 바친 교사와 교수들이 교육부를 극도로 불신하면서 교육부 해체까지 주장해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던 교육부가 최근 그동안 교육민주화운동 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일부 내용을 받아들여 개정안을 만들어 발표하면서 논쟁에 불을 붙였다. 당연히 사학법인 쪽이 강력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사학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며 엄살을 부리기도 했다. 일부 보수언론은 한술 더떠 사립학교들이 좌파 세력에 의해 접수될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사설에서 펴기까지 했다.

하지만 교육민주화운동단체들도 불만이긴 마찬가지였다. ‘공익이사제’와 같은 핵심 요구가 빠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어쨌든 교육부는 사학법인 쪽과 보수 언론의 엄살과 경고가 더 무서웠던지 멈칫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열린우리당이 더욱 강력한 개정안으로 교육부를 다잡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과거 정부와 과거 국회와는 크게 차이나는 풍경들이다. 그런 와중에 한나라당도 별도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논쟁이 한바탕 나라를 뒤흔들 조짐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여당은 "교육의 공공성.책임성", 야당은 "사학의 자율성'에 무게
먼저 여당의 개정안에 담긴 중요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그동안 이사회가 갖고 있던 교원 임면권을 교원인사위원회의 제청을 받아 학교장이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의 예결산 심의권도 학부모와 교사에게 주도록 되어 있다. 이사장과 그 친족이 학교장을 겸임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교사회나 교수회, 학부모회 등의 자치 기구를 공식기구로 법제화하여 학교 운영에 민주적으로 참여시키자는 내용도 있다. 친족 이사의 수를 전체 이사 정수의 1/3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한 것을 1/5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더욱 제한하자는 주장도 담고 있다. 비리에 연루된 학교 경영자는 2년 이내에 학교 경영에 복귀할 수 없도록 한 제한을 더욱 엄격하게 해 10년 동안 복귀할 수 없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다.

여당측 개정안의 취지는 한마디로 사학의 족벌체제 해소, 재단비리의 근절 그리고 사학의 공공성.책임성 강화로 요약될 수 있다. 공익이사제 개념이 빠져 있는 것을 제외하면, 그동안 교육민주화운동단체들이 강력하게 주장해 온 전향적인 개정 요구들을 대폭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학법인들은 여당의 위 개정안이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개악안이라고 주장하였다.
지금의 사립학교법도 사학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있는데 거기서 더욱 제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오히려 사학의 자율성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이 지난 8월 3일에 발표한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사학의 자율성 강화에 무게중심이 가 있다. 사학을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차등 적용하자는 것인데, 예컨대 재정이 건전하거나 학교법인의 재단전입금이 5% 이상인 사학에는 자율권을 대폭 강화하고, 그렇지 못한 사학에 대해서는 자율권을 제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싸고 위와 유사한 논쟁들이 여러 차례 있어 왔지만, 그 결과는 늘 후자 즉 ‘사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사학법인연합회 측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사학의 자율성’이 ‘교육의 공공성’보다 더 중요한 우리 사회의 가치라는데 우리 국민이 합의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학법인연합회의 막강한 로비력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전국사학법인연합회가 우리나라의 가장 막강한 로비집단 가운데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과거에는 교육상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재야 출신 국회의원들 가운데서도 사학법인 연합회의 로비를 받아 사립학교법 개악에 들러리섰던 경우도 비일비재하였기 때문이다.

돈의 힘과 로비가 교육부나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야 이성적 토론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만은, 최소한 17대 국회에서만큼은 달라질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한 가지 사실만큼은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정리해 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다름 아니라 두 개의 가치가 외견상 격돌하는 것처럼 보이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교육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성, 투명성, 민주성’과 ‘사학의 자율성’이라고 하는 두개의 가치는 동시에 달성될 수 없는 모순적인 관계의 가치들이 아니라, 얼마든지 동시에 추구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의 가치들이라는 사실이다.

"교육의 공공성.책임성"... 모든 교육기관에 선차적으로 요구되는 기본적인 보편 가치.
"사학의 건학이념과 특징. 자율성"... 그 기본적인 보편 가치 위에 추구되어야 할 특수 가치.


먼저 교육의 공공성.투명성.책임성.민주성은 모든 교육기관에게 선차적으로 요구되는 매우 기본적인 보편 가치이다. 반면에 사학의 고유 건학이념과 특징은 그러한 기본 가치들 위에서 추구되어야 할 특수 가치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4천500만 국민 모두가 ‘사람됨의 기본 가치 즉 인륜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서 ‘각자의 관심과 개성’이라는 특수 가치를 구현해야 하는 것이며 또한 충분히 그럴 수 있듯이, 사립학교가 추구해야 할 두개의 가치도 그러한 관계의 가치들인 것이다. 당연히 보편 가치가 먼저며 특수 가치는 나중인 것이다. 당연히 보편 가치 위에서 특수 가치가 꽃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학이라 하더라도 국가와 사회구성원들의 물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때, 사학도 사회에 기여하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모범 사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립학교법은 결코 모순적 관계에 있지 않은 두 개의 가치들이 동시에 구현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사학 재단에 의한 숱한 비리와 전횡과 독선, 그리고 그에 따른 교육 현장의 비극을 경험해 온 우리들로서는 사학의 공공성 강화가 자동적으로 사학의 자율성 침해로 이어진다는 사학법인연합회의 우려와 주장이 과장된 것이자 논리적 타당성을 결여한 주장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가치는 결코 충돌할 필요가 없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가치들인 것이다. 사학의 자율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극단적인 조항이 아니라면, 사학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성 강화를 위한 조치들을 자율성 침해라는 이유로 반대할 수 없는 것이다.

사학의 비리를 근절하고 사학 법인의 전횡과 독선을 제어하며 학교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고 그 위에서 사학의 건학이념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지혜와 높은 수준의 도덕률이 필요한 때다. 오랜 숙원인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이 소위 개혁 국회라고 일컬어진 그래서 많은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출범한 17대 국회에서만큼은 좌초되지 않고 성사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홍덕률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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