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제전의 어두운 이면...”

평화뉴스
  • 입력 2004.08.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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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의 시사칼럼 28>
“스포츠용품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와 제 3세계 노동자들의 비극”



모처럼 즐겁다. 우선 덥지 않아서 좋다. 밤낮없이 괴롭히던 무더위가 언제 그랬느냐 싶게 물러서면서 기분이 무척 상쾌해졌다. 수확의 계절이 성큼 다가오면서 마음도 넉넉해지는 것 같다.

그것뿐이 아니다. 한여름 내내 짜증나게 만들던 서울발 정쟁 소식이 아테네발 올림픽 소식에 밀린 것도 신나는 일이다. 도전과 성취, 페어플레이와 영광의 장면들이 TV 뉴스 시간을 대신 채워 주고 있어서 모처럼 TV 보기도 재미있어졌다.

나라에 상관없이 열심히 뛰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환호하게 된다. 그러면서 시름도 나라 걱정도 잠시 잊어버리게 된다. 평소 제대로 할 줄 아는 운동이 하나도 없는 필자로서도 이런 때는 스포츠의 멋에 푹 빠지게 된다. 스포츠와 스포츠맨십의 매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단순한 게임이 아니요, “스포츠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인정받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촉진하고 인간의 조화로운 발전에 복무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올림픽의 스포츠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세계평화와 인류화합의 대제전인 올림픽의 어두운 이면을 접하게 되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신나게 구경하고 환호할 줄만 알았던 필자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용은, 그 화려한 올림픽이 제 3세계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착취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은 국제적인 사회정의운동단체인 <옥스팜>과 유럽 11개국에서 조직된 <깨끗한 옷입기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 그리고 <글로벌 유니온즈>(Global Unions) 등이 불가리아, 캄보디아, 중국, 인도네시아, 터키 등 6개국의 다국적 스포츠용품 회사 하청업체 노동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올림픽 페어플레이 보고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먼저 이번 아테네 올림픽의 스폰서십 수입은 약 6억 5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 돈으로 약 8천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그렇게 큰 돈은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휠라, 푸마, 아식스, 미즈노 등 다국적 스포츠용품 회사들이 IOC와 각국 선수, 임원들에게 옷과 장비를 공급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후원금이다.
위의 내로라하는 다국적 스포츠 용품 기업들은 그 외에도 세계적인 선수들에게 회사 광고 차원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후원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아디다스는 영국의 축구선수 베컴에게 평생 동안 1억 6천여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한다.

그런 다국적 스포츠용품 회사들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인권이 열악한 제 3세계 국가 기업들에게 하청을 주고 거기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심한 경우는 하루 18시간씩, 주 7일을 노동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 나라의 평균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기 일쑤다.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는 비수기에 월 5달러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있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여성 노동자들이다. 작업 환경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으며, 물리적 정신적 성적 학대를 받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그토록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한 저항은 곧장 해고로 이어진다. 결사의 자유나 단체교섭권 등은 전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화장실 갈 시간도 갖지 못해 참다가 병이 되는 일도 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의 올림픽 제전 이면에는 ‘더 빨리, 더 싸게 피땀을 짜내는’ 스포츠용품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와 제 3세계 노동자들의 비극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제 3세계 노동자들이 착취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시민의 신문>, 2004.8.16의 특집면을 참조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각국의 올림픽위원회 등은 이러한 비극에 대해 입다물고 있다. 그들도 모두 잘 알고 있으면서 그들 눈에 제 3세계 노동자들은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언론들도 못본 척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다국적 스포츠용품 기업들의 로고가 박힌 스포츠웨어를 입고 펄펄 나는 선수들의 화려한 기술과 경기 내용만 전하려고 했지, 그 이면에 가려진 3세계 노동자들의 신음 소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 아테네시 곳곳에서는 세계적인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마스크를 쓰고 재봉틀을 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제 3세계 하청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다산인권센터, 새사회연대, 불교인권위, 민주노총, 외국인 이주노동자 대책협의회, 한국 노동사회연구소 등 11개 단체들이 지난 12일에 공동성명을 내고, ‘올림픽정신에 따른 스포츠업계의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처절하게 짓밟히고 있는 ‘세계 평화와 인류화합’의 올림픽 정신과 올림픽 스타디움을 떠받치고 있는 3세계 노동자들의 신음소리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불행과 비극을 딛고 선 또다른 누군가의 영광과 환호는 너무도 부도덕한 것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좀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인류 연대’ 위에 세워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사는 전 인류가 좀더 편안하게 평화와 화합의 제전을 마음 속 깊이로부터 즐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최소한 화려한 올림픽의 이면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3세계 노동자들의 고통과 신음이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잊지 않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홍덕률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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