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교수님의 명절 선물 퇴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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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뭘 이런 걸 다...", 그런데 그 게 끝이 아니었다.


명절이면 몸보다 마음이 바쁘다. 아내에게 사내들의 명절이란 그저 술 마시고 어울리는 여유 만땅 같지만, 명절을 앞둔 많은 사내들은 '사람 챙기기'에 또 다른 분주함이 있다. 그런데, 사람 챙기기가 빈 손으로는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다. 고마운 분께 인사드리려면 뭐라도 손에 들어야 할 것 같고, 어린 사람에게 추석 잘쇠라고 한 마디 건네려면 그 역시 뭐라도 주는 맛이 있어야 한다.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를 앞 뒤에 넣은 안부 전화에 "뭘 바쁜데..."라고 받아주시는 말씀이 무진장 고맙지만 '죄송'이 떠나지를 않는다. 폰 문자메시지로 쭉 인사 하려니 '스팸' 대접에 시근도 없어 보인다. 막상 '찾아뵙고' 인사드리려 해도 명절 앞둔 도심 교통이 어디 만만한가. 짜증에 불평을 달고 다녀도 2시간에 한 분 뵙기가 어렵다. "그 분께는 꼭 인사드려야 하는데..." 명절 전후로 만난 사내들은 이런 말들을 주고 받는다. 은혜에 인사도 못드리는 죄송함, 착하거나 소심한 사내에겐 더욱 그렇다. 여하튼, 없는 사내들의 명절에는 이래 저래 마음 고생이 따라붙는다.

어쩌다 보니 인사드릴 데가 많아졌다. 평화뉴스에 글을 써주시는 선생님들과 다달이 피 같은 월급을 떼 주시는 후원인들. 고마운 마음에 그 분들 이름이 적힌 종이를 펴 놓고 산다. 평소에 인사를 잘 못드리니 명절에라도 찾아뵈야 하는데, 드릴 것도 마땅찮고 그렇다보니 손도 부끄럽다. "뭘 찾아와, 그냥 전화로 하면 되지", "뭘 전화까지, 아까 문자 잘 받았어요". 부실한 사람을 위로해주시는 말씀이 고마운만큼 죄송함도 커진다.

3년 전 추석. 적어도 이 선생님께는 찾아뵈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글을 꼬박꼬박 써주시고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평소 원고료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니 죄송함은 생각할 때마다 도를 넘은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선물을 샀다. 2만원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유자차와 모과차가 들어간, 정말 작은 선물이었다. 혹 실례가 될까 싶어 고르고 또 고른 명절 선물. 솔직히, 그 분께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보다 빈 손으로 찾아가기 뭣한 순전히 나의 면피용이었다. 2만원도 안되는 게 뭐 그리 유용할까.

그래도 빈 손이 아니어서 덜 뻘쭘했다. 이런 저런 안부와 세상 얘기가 끝나자, 슬적이 가방 뒤에 감춰둔 선물을 드렸다. "너무 약소해서...", "뭘 이런 걸 다..." 통상의 대화는 이렇다. 그리고 그 것으로 끝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게 아니었다. "이런 거 가져오면 안됩니다. 도로 가져가세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도로 가져가라니...선물이 약소해서가 아니다. 아예 선물을 받지 않는 선생님의 일상이었다. 그래도 도로 가져갈 수야 없지 않은가. "저 이거 만원도 안하는 겁니다", "이번에만..." 몸 들바 몰라 하던 내 표정이 지금도 뻘쭘하게 기억된다.

"그래요? 일단 이 거는 어쩔 수 없지요"...참 다행히도 받아주셨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평화뉴스 통장에 후원금 10만원이 입금된 게 아닌가. 이 것 참...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도 유분수지, 정말 큰 민폐를 끼친 꼴이 돼 버렸다. 이 얘기를 했더니 누구는 껄껄 웃으며 "이야, 10배 남는 장사네. 다음에는 10만원짜리 드려야겠네"하며 놀렸다. 여하튼, 그 일 이후 그 선생님께 선물을 드린다는 생각은 아예 접고 지냈다.

그러다 2년이 지났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또 다른 선생님께서 "필자들께 드려라"며 상주 곶감 몇 상자를 보내셨다. 살림 어려운 시민단체의 명절 '재정사업'에 후원하는 셈으로 산 곶감이었다. 그 역시 3-4만원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선물이었다. 됐다. 이 정도면 크기도 적당하고 크게 부담도 없고, 내가 드리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시민단체 후원용으로 산 것이니 명분도 있고, 아니 받으실 이유가 없겠다 싶었다.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당당히(?) 찾아뵈었다. 기분 좋은 추석 인사였다. "000 선생님께서 주신...."이라고 곶감을 드렸다. 그 때가 저녁 6시쯤이었다. 왜 주느냐고 호통을 쳐도 할 말이 있었다. "제가 드리는 게 아니라 저는 그냥 전해드리는...". 이번에는 별 말씀 없으시겠지.

앗! 그런데 또 다른 비법이 숨어 있었다. 갑자기 사무실 이곳 저곳을 살피시더니 예쁜 포장의 선물을 주시는 게 아닌가. "이 거 갖고 가세요". 딱 봐도 얇은 포장이 넥타이 같았다. "이 게 넥타이지 싶은데, 내가 넥타이 맬 일도 없고 뭐라도 드려야 하는데 딴 건 줄 것도 없고...". 선생님의 그 말씀에 아차 싶었다. 몇 번이고 안 받겠다고, 집에 넥타이 많다고 거절했지만 허사였다. 오히려 "그럼 이 곶감 가져가세요" 하시며 곶감을 내미셨다.

방법이 없었다. 이것 참, 내 참, 거 참...황망한 말들만 맴돌았다. 결국 넥타이를 받았다. 선물 드리려다 있는 선물을 뺏어 온 꼴이 돼 버렸다. 선생님은 "지금 대학원 수업 들어가는데 학생들하고 잘 무께요.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하셨다. 선생님은 그 곶감을 교재와 함께 들고 강의실로 가셨다. 책 옆에 낀 곶감상자가 참....

집에 돌아와 선생님께서 주신 선물을 펴봤다. 파란 넥타이 옆에는 작은 편지가 있었다. "선생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스승의 날 아니면 졸업 즈음에 제자들이 드린 선물 같았다. 스승의 날이라면 5월, 졸업이라면 2월, 추졸이라도 8월인데...적어도 몇 달동안 펼쳐보지도 않으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참 지독한 분이구나 싶었다. 제자들에게 "잘 받았다"고 할만도 한데, 아예 선물을 뜯지도 않다니...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서 넥타이를 주시며 하신 말씀이 있었다. "이 거 넥타이지 싶은데, 젊은 사람한테 어울릴 지 모르겠네요. 바꿔 하시든지 알아서 하세요".

어김없이 올해도 추석이 찾아았다. 두 번 다시 그 선생님께 명절 선물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고마움을 전하려다 민폐만 끼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 있다 전화는 드릴 참이다. 나는 또 "찾아뵙지도 못하고...", 그 선생님은 또 "바쁜데 뭘..." 하시겠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선생님의 웃는 얼굴이 눈에 선하다.

명절 선물을 차에 싣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넉넉히 주는 마음, 참 좋겠다. 그렇지만 그 반대도 많다. 거의 '의무감'으로 찾아다니는 사람들, 안쓰럽다. 이런 저런 애환이 사내들의 명절 술자리에 오르내린다. 나는 그 때마다 그 선생님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모두들 "빡시네", "뭘 그렇게까지", 대단하네", "요즘도 그런 분이" 하며 신기한 듯 말한다.

명절 인사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처럼만" 하지만, 더 하기도 어렵고 덜 하기도 뭣한 사내들이 많다. 좀 더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지위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베풀면 좋겠지만, 가끔 거꾸로 가는 경우를 본다. 거꾸로 선물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마음이 어떨까? 또 그렇게 받는 사람은 어떨까?...

오늘도 그 선생님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선물은 물리치셔도 정말 감사하는 마음은 꼭 받으시겠지....나도 나이 들면 이 방법을 써야지 생각했다. 누군가 뭘 가져오면 그 보다 더 많은 걸 줘야지. 그런데 그렇게 줄 게 좀 있을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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