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만든 첫 '배리어프리' 영화 4편...장애인의 스크린 장벽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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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찾을 수 없습니다> 등 4편...소리는 자막으로, 장면은 소리로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재탄생

 
장병기 감독 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조기폐경 진단을 받은 효선에게 아들 진수가 맥북을 사달라며 조르고 있다 / 사진 출처.'맥북이면 다 되지요' 공식 사이트
장병기 감독 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조기폐경 진단을 받은 효선에게 아들 진수가 맥북을 사달라며 조르고 있다 / 사진 출처.'맥북이면 다 되지요' 공식 사이트
 
"깊은 밤, 불 꺼진 시골집. 툇마루 위에 낡은 선풍기가 놓여있다. 방문이 열려있고 누군가가 누워있다. 열린 방문 너머로 40대 가량의 여자, 효선이 일어난다."

영화관에서 평소 들을 수 없던 해설이 들린다. 스크린에는 해설에서 설명한 장면이 나온다. 스크린 아래에 '선풍기 소리, 달달달달'는 자막이 뜬다. 시·청각 장애인도 보고 들을 수 있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영화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기존의 영화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넣어 새로 만든 영화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와 대경시민영상M은 지난 18일 대구시 중구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과정 수료작 시사회'를 열었다. 이들은 지난 8월 수강생 16명을 모집해 9월부터 11월까지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과정' 강의를 진행했다.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과정 수료작 시사회'...대구지역에서 만들어진 단편영화 4편이 배리어프리 영화로 다시 만들어졌다(2019.12.18.대구 중구 오오극장)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과정 수료작 시사회'...대구지역에서 만들어진 단편영화 4편이 배리어프리 영화로 다시 만들어졌다(2019.12.18.대구 중구 오오극장)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이 과정에서 대구에서 제작된 단편영화들이 배리어프리 영화로 다시 만들어져 시사회에서 상영됐다. '맥북이면 다 되지요(감독 장병기)' '나만 없는 집(감독 김현정)' '찾을 수 없습니다(감독 엄하늘)' '밸브를 잠근다(감독 박지혜)' 등 모두 4편이다. 대구지역에서 배리어프리 영화를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지역에서 제작돼 영화에선 사투리가 많이 나왔다. '찾을 수 없습니다'는 경북 칠곡에서 만난 두 전학생 지환과 은아의 사랑을 그렸다. 은아가 "니는 대구에서 와 전학 왔노(너는 왜 대구에서 전학 왔어?)"라고 물으면 자막에 사투리가 그대로 적히고, 두 사람이 노래를 함께 들으면 자막에는 '이상은, 사막'이라는 설명과 함께 "태양이 몸을 흔들면"으로 시작하는 가사가 나왔다.

두 사람이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눈을 감으면 "가로등이 켜져 있는 골목길을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간다. 두 사람의 손이 닿을 듯 말 듯 하다. 지환이 은아의 손을 잡는다. 은아도 자연스럽게 지환의 손을 잡는다"는 해설이 들렸다. 세세한 설명에 머릿속으로 영화 장면을 그릴 수 있었다.
 
엄하늘 감독 영화 <찾을 수 없습니다>...경북 칠곡에서 만난 2명의 대구 전학생, 은아와 지환 / 사진 출처.'찾을 수 없습니다' 공식 사이트
엄하늘 감독 영화 <찾을 수 없습니다>...경북 칠곡에서 만난 2명의 대구 전학생, 은아와 지환 / 사진 출처.'찾을 수 없습니다' 공식 사이트
 
귀를 막고 영화를 보면 두 사람이 논두렁을 함께 걸을 때 '벼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쏴아아아', 뒤에 기차가 지나가면 '덜덜덜덜', 동전을 손에 쥐고 흔들면 '짤짤짤짤'하는 자막들이 눈에 띈다. 귀를 막기 전까지 신경 쓰지 못한 효과음들도 하나하나 자막에 담겼다.

이 같이 배리어프리 영화는 비장애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경험을 시청각장애인들이 느낄 수 있게끔 하는 목적으로 제작된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장벽이 없는 영화라고 불리는 이유다. 실제로 눈을 감고 영화를 듣거나 귀를 막고 영화를 봐도 영화를 즐기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영화를 관람한 청각장애 2급 오영석(49, 달서구)씨는 "자막에 사투리가 그대로 적혀 사투리의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배리어프리 영화의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들을 수 없지만 노래의 가수나 제목, 가사까지 적혀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1급 정승만씨는 "이번 기회가 배리어프리 영화가 지역에서 보다 많이 제작되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정 감독 영화 <나만 없는 집>...바쁜 부모와 쌀쌀맞은 언니 사이에서 늘 혼자인 초등학생 세영 / 사진 출처.'나만 없는 집' 공식 사이트
김현정 감독 영화 <나만 없는 집>...바쁜 부모와 쌀쌀맞은 언니 사이에서 늘 혼자인 초등학생 세영 / 사진 출처.'나만 없는 집' 공식 사이트
 
박지혜 감독 영화 <밸브를 잠근다>...'터닝메카드' 장난감을 사달라는 어린 아들과 집에서 잠만 자는 무능력한 남편을 부양하는 가스검침원 진나를 그렸다 / 사진 출처.'밸브를 잠근다' 공식 사이트
박지혜 감독 영화 <밸브를 잠근다>...'터닝메카드' 장난감을 사달라는 어린 아들과 집에서 잠만 자는 무능력한 남편을 부양하는 가스검침원 진나를 그렸다 / 사진 출처.'밸브를 잠근다' 공식 사이트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은 "매년 이 같은 강좌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배리어프리 영화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얼마 안 돼 상영 영화나 횟수가 많이 부족하다"며 "많은 시민들의 참여로 배리어프리 영화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구미디어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구시가 설립하고,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과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공공문화시설이다. 지난 2005년 5월 인천과 더불어 처음으로 지역 미디어센터에 사업에 선정돼 2007년 대구 남구 대명동 ICT PARK(아이씨티 파크)에 문을 열었다. 2016년 동구 대구콘텐츠센터로 옮겼고 올해 3월부터 활동 영역을 넓혔다. 미디어센터는 대구영상미디어센터와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 등 대구 2곳을 포함해 서울 8곳, 경기 6곳, 부산 1곳, 인천 3곳, 광주 2곳 등 전국적으로 47곳이 있다.
 
대구시민 20여명이 시사회에 참석했다 (2019.12.18.대구 중구 오오극장)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대구시민 20여명이 시사회에 참석했다 (2019.12.18.대구 중구 오오극장)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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