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평화뉴스
  • 입력 2005.03.1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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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개인의 비극인가 사회적 산물인가“
"어느 장애인 아내에 대한 이혼소송...장애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는 없는지..."


지난 3월2일, 세계일보에 ‘정신병 숨긴 결혼 혼인취소 사유’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A씨는 아내 B씨가 정신 장애를 숨기고 결혼했다며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대구지법 가정지원 이병삼 판사는 남편이 아내의 ‘정신병력을 알았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혼을 받아들였다. B씨는 처녀 시절 큰 충격으로 불면증과 말이 많아지는 ‘양극성 장애’라는 정신 장애가 생겼다. 이 정도 증상은 현대 의학으로 적절히 치료할 수 있었고, 실제로 B씨는 그동안 약물로 자신의 장애를 잘 통제해 왔다. 하지만 B씨가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 태아의 건강을 위해 약을 끊자, 결국 증상이 나타나고 말았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남편은 아내 몰래 병원 기록을 보고야 말았다. 기사에는 없었지만, 그 순간 남편 A씨는 사랑스런 아내의 모습에서 ‘정신병자’의 이미지가 떠올라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사건은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위험천만(?)한 장애를 숨기고 결혼한 여자가 위험천만(?)하게도 임신까지 하여 ‘비장애인’ 남편에게 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에 대해 ‘비장애인’ 판사는 우리 사회의 통념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편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기사를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장애를 철저하게 개인적 비극으로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소아마비 백신을 발명하는 등 몇몇 의학적 개가를 올린 의사들은 곧 모든 장애를 없앨 수 있다는 자만에 빠진다. 하지만 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장애에 직면하자, 의사들은 장애에 대한 책임을 장애인들에게 돌려버린다. 그들은 의학이 해결할 수 없으므로 장애는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즉, 장애를 개인적 비극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의 세계로 진입한 ‘용기 있는’ 장애인은 대접받지만, 그렇지 못한 장애인들의 희생은 어느 정도 합법화되어 버린다.

위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B씨는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숨기면서까지 결혼했으므로 이혼을 당해도 정당한 것이다. 이 때, 남편과 가정 그리고 법원은 B씨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으므로 B씨의 개인적 비극은 안타깝지만, 사회적으로는 정당하다. 따라서 B씨가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치료받고 초인적인 열정으로 성공한 여성이 되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장애 운동과 보편적 인권의 성장과 함께 전면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장애 운동 진영은 장애인을 결정적으로 제약하는 것은 장애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장벽과 억압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사회 구조가 문제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제 장애인들은 장애를 개인적 비극이 아닌 사회적 산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 나라의 일반적 상황은 아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위 사건의 B씨는 가정과 법원이라는 우리 사회의 억압 구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장애인으로 낙인찍히고, 그 결과로 희생양이 된 셈이다.

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언젠가는 다음과 같은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

‘장애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이 사회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그 장애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일반적 통념에 따라, 본 건의 경우에도 B씨가 고의로 자신의 정신적 장애를 숨겼다는 사실이 인정된다하더라도 B씨에게 이혼에 대한 귀책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 특히, B씨는 소중한 생명을 잉태한 상태이므로 오히려 남편 A씨가 평소 보다 더 큰 사랑과 배려로 아내의 정신적 고통을 함께 나눌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건 소송은 이혼 사유가 되지 않으므로 기각한다.’

윤삼호(대구DPI 정책부장)
* 1966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윤삼호씨는, [대구지역야학연합회] 의장과 [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를 거쳐, 지난 2003년부터 [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을 맡아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3월 9일 <평화뉴스> 메인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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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시민사회의 건강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시민사회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제 3기 [시민사회 칼럼]은 2005년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모두 16차례 연재됩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3.2(수) 권혁장(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3.9(수) 윤삼호(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
3.16(수) 권상구(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3.23(수) 오택진(대구경북통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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