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상화고택, 그러나..."

평화뉴스
  • 입력 2005.04.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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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계산동, 근대문화유산보존 20년간의 해프닝”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이상화 고택. 그러나 지난 20년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사진 권상구)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이상화 고택. 그러나 지난 20년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사진 권상구)

상화고택은 이번 달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물론 대구광역시에 기부채납될 예정이지만, 재건립, 공간활용에 대한 시민의 입장이 결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상화고택 기부채납과 관련해서 지난 몇 년간의 상화고택 보존과 관련한 복잡한 사안들을 정리하고 상화고택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되돌아와야 할지 시민들의 의견들을 필요한 시기가 와서 때마침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작년 6월 4일 중구청로비에서 역사적인 토지계약건이 있었다.
그 자리에 계산동주상복합 렉시움의 개발자인 군인공제연합의 시행대행사 (주)L&G와 이상화고택 전 소유주 이금주씨가 이상화고택부지 62평에 대한 매매건에 상호 계약을 했다. 이 계약은 80년대 작고한 이윤수시인의 매입시도 이후 20년 만에 이뤄진 성과며 ’97년 대구시가 상화고택 보존계획을 수립한 이후 7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문화유산이었던 것이다.
거리문화시민연대는 작년 2월 최초 매매가 협상에서 6월 최종계약까지 시행사 L&G와 고택소유주의 가격이견을 조정했다. 중재과정에서 알게된 몇 가지 헤프닝을 통해 지역의 근대문화재 보존실태와 문화유산행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제시대에 그어진 도시계획선은 고택을 가로지르고”
2003년 1월 골목모니터중 고택골목어귀에서 만난 소유주 이금주씨가 불편한 심기로 최근 받은 공문을 내밀었다. 2002년 12월 문화예술과에서 고택으로 보존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는데 몇일 전 이씨가 받은 또 하나의 공문에 중구청 도로과에서 일제시대 그어진 6미터 소방도로를 상화고택를 가로질러 건설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중구청이 ‘고택인지 몰랐다’라는 것도 이해가 안되지만, 대구시 문예진흥계에서도 유관부서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예진흥계와 죽순문학회 등에서 비공식적으로 진행되었던 매입시도는 2003년 2월 상화고택보존국민운동본부(이하 상화고택본부)가 결성되면서 방향이 보이는 듯 했다.

"2003년 3월, 계산동이 팔릴 때 다들 어디에 있었나?"
2003년 3월 계산동주상복합빌딩 건설을 위해 주변 부지가 매입되던 중이라는 사실이 골목모니터활동 중 주민들과의 대화 도중에 확인되었다. 그 당시 L&G에서는 2400여평을 이미 매입한 상태였고 서상돈고택도 고가로 팔린 상태였다.

상화고택은 주상빌딩에 득이되는 6미터 도시계획도로로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이상정장군고택도 개발계획부지 안에 들어와 있었다. 순식간에 민족운동가 고택 3개가 사라질 위기에 있었는데 지역사회와 문화 행정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구시는 월드컵과 지하철참사를 핑계로 거의 직무불능상태에 있었을 때 발 빠른 개발시행사 L&G는 교통영향평가심의를 위해 서류를 제출한 상태였던 것이다.

상화고택 가격협상을 둘러싼 오해 - 집주인과 사전협의도 없이 시작한 시민모금활동
상화고택의 공시지가는 2004년 기준 평방미터당 55만원 정도였다. 고택이 62평(坪)이었으므로 공시지가로 계산하면 1억1천2백만원 가까이 된다. 웃지 못할 일은 99년 감정가 1억6천을 제시한 이래 시문예진흥계는 한번도 공식적으로 이금주씨와 가격협상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냥 ‘평당 얼마면 되겠냐?’라는 식의 ‘매입가’에만 신경을 썼으며 방문객이 찾아올때 마다 집을 다 공개해야되는 이금주씨의 불편했던 지난 5년간의 고충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이금주씨도 공식적으로 평당 300백 혹은 500백이라는 말도 한 적이 없었지만 신뢰받지 못한 중재인들의 사적인 가격제시로 ‘소유주가 너무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는 풍문만 돌았던 것이다.

또한 문예진흥계는 공시지가 이상으로 살 수없다는 완고한 기준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매입이 성사되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매입을 하는 입장은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가격이 맞질 않아 버티는 입장은 항상 질타를 받는 입장에서 상화고택본부도 중재를 실패했었다.

상화고택과 근대문화유산 정책
상화고택은 좀더 큰 관점에서 보면 근대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한 문학인의 삶을 기리는 공간만은 아니다. 근대에 형성된 문화유산들은 고고학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문화재정책에서 항상 적자취급을 받았다. 근대문화재는 ‘개화기’를 기점으로 하여 ‘한국전쟁전후’까지의 기간에 축조된 건조물이나 시설물 형태가 중심이 되며, 그 이후에 형성된 것일지라도 멸실 훼손의 위험이 큰 경우도 보존의 대상이 된다.

대구는 최근 대규모 수도권자본이 도심지에 고층개발을 진행하면서 곳곳에 자리잡아있던 근대문화유산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 구 대구상고 본관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현재 대구시에 근대문화재로 보존된 ‘등록문화재’는 조양회관을 포함해 3곳이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구 도립대구병원과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2곳, ‘문화재자료’로는 성유스티노신학교를 포함 2곳, 시지정문화재로는 남산초등학교 강당과 함께 12개 건물, 총 19개의 건물이 근대문화유산이다.

이상화 선생 고택의 사랑방 마루(사진 권상구)
이상화 선생 고택의 사랑방 마루(사진 권상구)


상화고택과 같이 근대문화유산들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대립적 관계 속에서 생존해야만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절박한 상황속에 있다. 느린 행정과 발빠른 개발자들의 움직임 속에 시민들은 더 이상 보고만 있지 않았다. 최순우고택을 보존한 경우처럼 시민들이 직접 문화유산을 소유하는 문화유산보전운동(National Trust)이 지역에서도 곧 시작될 예정이다.

이번 고택보존운동 과정 속에서 제외된 이상정장군고택이 시민소유 문화유산 제1호가 될 예정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육사시인도 안동에서 태어났지만 16세에 가족이 모두 남산동62번지에 옮겨와서 대부분의 민족운동과 작품활동은 대구에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동시는 단지 안동에서 태어났다는 명분을 중심으로 21억을 들여 이육사문학관을 지었다고 한다.

결국 대구의 근대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역사가, 문화행정, 문학인들의 게으름으로 안동시에게 이육사를 넘겨준 것이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던 김동리와 박목월의 기념관을 짓기 위해 경주시는 30억을 들여 발 빠르게 움직였다고 한다. 전국적 명성을 지녔던 서병오, 백기만, 현진건, 박태준, 이장희 등과 같은 대구의 인물들의 흔적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대구엔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광역시의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하루빨리 시민의 문화재 향수권을 고려한 근대문화재 모니터작업이 완료되어야 하며 일상적으로 문화유산을 발굴하며 보존해야 할 Task―Force 팀이 구성되어야 한다. 시민의 일을 행정에 맡기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처리를 했다면 이런 헤프닝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상화고택은 4월 중 기부채납될 예정이지만 상화의 형이자 대구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민족운동가 이상정장군의 고택은 보존되지 못했다. 2004년 시예산에 상화고택기념관을 조성하기 위한 예산이 뒤늦게나마 마련되었고 자문회의가 시작되었으니 그동안 상화고택을 보존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은 성금은 상정고택을 매입하기 위한 초기자금으로 돌아감이 마땅하다.

이제 시민들은 고층빌딩 바로 옆에 사람이 살고 있는 초가집을 방문하길 원하며 28층 고층빌딩 옆에 아담히 자리잡은 민족운동가3인의 고택을 함께 누리고 싶은 문화적 수준에 와 있다.

<상화고택 보존 관련 일지>

1901년 상화탄생
1939-43년 계산동2동 84번지 상화거주
1943 상화 서거
1948년 3월 우리나라최초의 시비 상화시비 건립
1983년 8월 이윤수시인이 상화시인이 살았던 집이라고 최초증언
1980년대후반 재일교포가 상화고택 매입의사있었으나 흐지부지
1995년 8월15일 상화동상제막식 - 대구두류공원
1997년 8월 대구시 이상화고택 보존계획수립
1999년 8월 시비195백만원확보 후 감정평가/매수협의 불가
2002년 2월 상화고택보존국민운동본부 발족
2003년 5월 22일 상화묘비 제막식 - 죽순문학회
2003년 6월 9일 L&G 상화고택 기부체납 의향서제출
2003년 6월 26일 신성렉시움 교통영향평가 조건부가결
2003년 7월 문화재청문화재심의
2003년 9월 문화재청 현장방문. 대구시문화재위원회 문화재심의
2003년 9월 기부채납공정서작성
2003년 10월 문화예술과 문화재심의 통과
2003년 11월 신성렉시움 건축심의 통과
2004년 2월 주식회사 L&G 상화고택매입 1차협상
2004년 6월 4일 주식회사 L&G 상화고택매입
2005년 4월 상화고택 자문회의/기부채납 예정



권상구(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 권상구 사무국장은, [경북대영자신문사] 편집국장과 [대구YMCA] 이사, [대구거리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대구관광정보센터] 자문위원과 [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시민참여형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4월 25일 <평화뉴스> 메인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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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뉴스>는
지역 시민사회의 건강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시민사회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제 3기 [시민사회 칼럼]은 2005년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모두 16차례 연재됩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4.25(월) 오택진(대구경북통일연대 사무처장)
5.2(월) 권혁장(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5.9(월) 윤삼호(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
5.16(월) 권상구(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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