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대피소라구요?"
제6호 태풍 '카눈'이 많은 양의 비를 뿌린 10일 오전 대구 중구 동문동 패션주얼리 전문타운 지하주차장 1층. 주민 이혜숙(46)씨는 스마트폰에서 '대구 태풍 대피소'를 검색해 이 곳을 찾았다.
어둡고 좁고 낮은 지하주차장. 대피소 간판이 작게 붙어 있지만 쉽게 들어가기는 꺼려진다. 비는 쉴 새 없이 내리고, 바람은 세차게 부는데 대피소라는 곳이 지하주차장이다보니 마음이 상했다.
▲ 안전 앱으로 검색해 나온 대피소...대구 중구 패션주얼리타운 지하주차장(2023.8.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이씨는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나 오송 지하차도 등 최근 지하가 물에 잠겨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는데, 지하주차장이 대피소로 나와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은 경험 삼아 와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지만 실제 상황일 때는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구지역의 재해·재난 대피소 대부분이 지하주차장에 몰려 이어 침수에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기상청에 따르면, 태풍 카눈은 9~10일 대구에 최대 300mm, 평균 200mm 비를 뿌렸다.
마을 전체가 침수되고 건물과 도로, 논밭, 강 둔치 등이 물에 잠겼다. 하천 변 범람 피해도 발생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대구시, 9개 구.군청은 각각 집중호우로 침수된 지하차도와 하천 변 도로 등에서 고립 위험이 있으니 "위험지역에서 대피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를 10여통 발송했다.
실제로 태풍이 관통한 9~10일 이틀간 대구에서 재해·재난 시 피신할 수 있는 대피소를 찾아봤다.
방법은 3가지다. 정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 지자체 홈페이지다.
▲구글과 네이버 검색 시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이 먼저 나온다. 시.도, 구.군별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모두 민방위 대피소로 연결된다.
전쟁 위기 시 사용하는 민방위 대피소를 재해와 재난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대구 대피소는 중구 40곳, 동구 100곳, 서구 33곳, 남구 58곳, 북구 146곳, 수성구 94곳, 달서구 199곳, 달성군 94곳, 군위군 94곳 등 모두 770곳이다. 0.4%인 3곳만 지상, 나머지 767곳(99.6%)은 지하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대부분이다. 대구시 중구 동인동에 이는 대구시청 동인청사 건물 지하주차장도 대피소로 지정됐지만 대피소 시설 출입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마트폰에서는 직접 애플리케이션을 검색해서 설치해야 한다.
행안부는 재난안전정보 포털 앱 '안전디딤돌'을 배포했다. 자연재난 시 대피소 조회가 가능하다.
역시 민방위 대피소로 안내한다. 내가 현재 위치한 장소에서 반경 500m에서 2.5km 안의 대피소를 알려준다.
대부분이 지하주차장, 지하철, 지하 건물이다. 행안부는 태풍 시 안전디딤돌을 통해 인근 대피소 정보를 확인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대구시가 맞춤형 재난안전 플랫폼이라고 2020년 개발한 재난·재해 공간 행정정보 서비스 '안심하이소' 홈페이지도 대피소를 안내한다. 안심대피로 찾기, 안심지도 보기 서비스에 대피소가 표기된다.
정부와 달리 대피소 대부분이 옥외대피장소로 지정됐다. 학교나 지상 주차장, 공원 등이 많다. 가장 가까운 곳을 검색하면 반경 안의 대피소의 도보거리와 도보 예상시간, 면적, 수용인원 등의 정보를 알려준다.
황당한 건 대구시청 동인청사를 기준으로 검색할 경우, 대구시청 동인청사 주차장, 2.28기념중앙공원과 더불어 '신천둔치'를 반경 내 대피소로 안내한다.
태풍 카눈이 몰고 온 폭우로 인해 신천둔치는 이날 하루종일 침수돼 통제된 상태였다. 재난 유형을 고려하지 않고 대피소 검색 기준을 지진으로 설정한 탓에 폭우에도 옥외대피장소를 알려준 것이다.
지하주차장, 지하도, 지하철 모두 최근 인명 피해가 발생한 장소다. 기후위기로 국지성 폭우가 잦아져 도시의 지하는 침수에 취약한 곳이 됐다. 전문가도 지하의 대피소에 대해 위험성을 지적했다.
손무락 대구대학교 소방안전방재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토네이도가 폭우보다 바람을 동반해 지하실이나 지하주차장을 대피소로 이용하지만, 한국은 폭우를 동반한 경우가 많아 1차적으로 지하는 위험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도심지의 경우 아파트나 거리 대부분이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어 비가 오면 침투가 어려워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며 "도심에서 가장 낮은 곳은 대부분 지하주차장이다보니 당연히 지하로 흘러가 배수구 역할을 해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조건 지하 공간이기 때문에 대피 장소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관련 공무원들이 기후위기에 맞는 대피소인지 구별해 재검토하고 재지정하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대구시 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인터넷 보다 각 구.군이 실시간으로 해당 대피지역에 안내방송을 통해 대피소를 안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인근 초등학교, 중학교 등 학교 시설이나 경로당 등을 활용한다"고 밝혔다. 또 "현장의 상황은 구.군이 더 잘 안다"며 "우리는 정보를 취합할 뿐"이라고 했다.
북구청 안전총괄과 관계자는 "민방위 대피소는 재해·재난 등 긴급한 경우에 사용할 수도 있다 정도로 안내할 뿐이지 태풍 때 실제로 사용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행안부 재난구호과 관계자는 "민방위 대피소는 폭우 때 대피소로 활용해선 안된다. 지하가 많아 위험하다. 지자체가 안전한 곳을 선정해 대피하도록 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