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 유적 쏟아진 죽곡산에서 도로공사..."삽질 중단" 반발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 입력 2024.01.2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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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읍 죽곡리 강정마을~죽곡2지구 488m 2차선 도로
알고보니 선사시대 유적...지표조사 않고 공사한 결과
환경단체·전문가 "대규모 유적지 추정, 전수조사" 촉구
달성군 "사업 지연돼 누락...문화재청 협의해 발굴조사"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죽곡산 일대 23일 오전 도로 공사 현장은 쓰러진 나무들로 가득했고, 바닥에는 파란색 천이 군데군데 덮여 있었다. 

공사 현장을 조금만 올라가니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들이 나왔다. 그 중 하나는 일부가 깨져 있기도 했다. 산 중턱쯤에 오르자, 산책로 바닥에서 문양이 새겨져 있는 토기 조각 6점가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빗살무늬가 있는 조각, 곡선이 새겨져 있는 조각 등 다양했다.

산책로를 내려가는 길에도 바위에 윷판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놓은 흔적이 발견됐다.
 
황평우 소장이 선사시대 윷판형 암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1.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황평우 소장이 선사시대 윷판형 암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1.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전문가들은 선사시대 청동기 유적이라고 추정했다. 이날 공사 현장 조사에 참가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산 전체가 청동기 시대 때 거대한 제사 유적지였을 것"이라며 "문화재 조사를 해보면 몇십 개가 나올 것"이라고 추정했다.

함께 동행한 김종원 전 계명대학교 교수(식물사회학자)도 "문양이 있는 토기는 기우제에서 신성한 물질을 담을 때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사시대 문화재가 쏟아지는 유적지에 지자체가 지표조사를 하지 않은 채 도로공사를 강행해 논란이다.
 
강정마을~죽곡2지구 연결도로 공사 현장(2024.1.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강정마을~죽곡2지구 연결도로 공사 현장(2024.1.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강정마을~죽곡2지구 연결도로 공사 현장을 알리는 현수막(2024.1.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강정마을~죽곡2지구 연결도로 공사 현장을 알리는 현수막(2024.1.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 달성군(군수 최재훈)에 23일 확인한 결과, 달성군은 지난해 11월부터 다사읍 죽곡리 강정마을에서 죽곡2지구를 연결하는 도로 개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산 50억원을 들여 두달전 공사에 들어갔다. 전체 면적은 15,700㎡(폭 12m, 길이 488m)가량이고, 2차선 도로를 만드는 게 사업 내용이다. 당초 2017년 1월 사업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계속 사업이 지연돼 지난해 11월 말 착공에 들어갔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공사장 일대인 죽곡산에서 수백그루 나무를 베고 도로를 파헤쳤다. 이 과정에서 인근 주민인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알고보니 선사시대 청동기 유적이었다. 공사가 진행된 죽곡산 곳곳에서 흩어진 토기 파편과 기반암 표면에서 청동기 시대 윷판 모양의 암각화가 나왔다. 김 교수는 발견 이후 달성군에 지난해 12월 8일 "공사 중지" 민원을 제기했다.

유적이 발견된 산에서 공사가 진행된 배경에는 달성군이 지표조사를 누락한 탓이 크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4조는 건설공사 사업 면적이 30,000㎡ 미만이어도 과거에 문화재가 출토·발견된 지역이거나, 문화재 매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면 매장문화재 지표조사를 해야 한다. 달성군은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해 지난해 12월 15일 공사를 멈추고 1차 지표조사에 들어갔다.

달성군은 담당자의 잦은 변경으로 조사가 누락됐다고 설명했다. 달성군 건설과 관계자는 "사업이 7년 동안 지연돼 담당자가 계속 바뀌었고, 인수인계 과정에서 누락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민원이 제기된 뒤 바로 용역을 발주해 지표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체 면적 중 1,400㎡는 발굴 조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나머지 13,000㎡가량은 시굴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문화재청과의 협의가 끝나는 대로 조사에 들어갈 것 같다"고 답변했다.

달성군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본 도로 공사는 진행된 것이 없다"며 "도로 진입구 우수 처리 배관 매설 공사에서 유물이 나온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민 민원으로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유적과 유구를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죽곡산 역사·문화적 가치 규명 촉구 기자회견'(2024.1.23. 달성군 다사읍 죽곡산 연결도로 공사현장)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죽곡산 역사·문화적 가치 규명 촉구 기자회견'(2024.1.23. 달성군 다사읍 죽곡산 연결도로 공사현장)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산 일대가 대규모 유적지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공사를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대구경실련, 대구환경운동연합,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등은 23일 죽곡산 도로공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달성군은 선사시대 유적이 있는 죽곡산에 문화재 조사도 없이 도로 공사를 강행했다"며 "나무 수백그루를 무참히 잘라버리고, 암각화 바위마저 쪼개 방치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달성군의 무지한 행정, 꼼수 행정의 결과"라며 "엉터리 삽질 행정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죽곡산을 제대로 보호·보전하는 길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왼쪽부터)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2024.1.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왼쪽부터)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2024.1.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는 "윷판형 암각화와 토기 조각 발견으로 선사인들이 이곳에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물이 출토된 고대 유적지가 포크레인 칼날에 파괴됐다"며 "도로 공사를 한다고 유적들을 다 뭉개 버리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죽곡산은 대규모 유적지"라면서 "유적들이 워낙 산재해 있어 지표조사가 아니라 공사를 전면 중단해 정밀 발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런 유적을 보고도 검토 한 번 없이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은 고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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