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무슨 희망을 가져야 합니까?”

평화뉴스
  • 입력 2006.03.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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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고 위에서만 뱅뱅 돌며 썩어가고 있는데..”

벌써 우수가 지났고 이제 곧 경칩입니다. 봄입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칠갑을 한 이 도시에서 개구리 구경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봄은 봄입니다. 겨울 방학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죽이고 쏘고 부수는 짓으로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학교로 몰려가는 모습을 보면 이 삭막한 도시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등할매가 아직 얼마나 더 심술을 부릴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사람들의 가슴 속에 싹 트기 시작한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겠지요.

우리 주변에는 유난히 올 봄을 손꼽아 기다려 왔던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바로 우리 지역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제 한 몸을 불사르듯 던지겠다는 의지를 다져온 사람들입니다. 자신만이 개혁과 지역발전의 적임자인 것으로 스스로 최면을 걸어왔던 사람들입니다.

절치부심하며 기다려온 4년의 세월이 그 분들에게는 참으로 아득하리만치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장관 자리를 경력 관리 차원으로 내주며 선거에 집착해 온 대통령, 그러나 이제는...”

한편으로 선거는 삼백예순 다섯 날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힘’에 짓눌려 살아가야 하는 국민들이 잠시나마 주인 노릇하게 되는 그런 시기입니다. 주권자들이 모처럼만에 힘 가진 자들의 겸손한 말재롱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런 선거를 대통령은 짜증스럽다 못해 대통령의 업무를 방해하는 거추장스런 행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장관자리를 선거용 경력관리 차원의 수준으로 격하시켜버릴 정도로 선거에 집착해온 것이 또 대통령 자신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앞뒤가 맞지 않는 대통령의 발언이 가진 속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정작 선거가 짜증스러운 것은 바로 선거의 주체인 국민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렵게 되찾은 주권이지만 주권을 행사하는 선거가 거듭되면 될수록 배신의 골도 그만큼 더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민주화는 완성되었다는 데 주변에서 민주화가 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이뤄진 386의원들의 변신”

“당신들이 언제부터 다수당이었어?” 며칠 전 국회 환경노동위 회의장에서 노동자 출신의 한 국회의원이 국회 경위들에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질질 끌려가며 내뱉은 말입니다.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꿀떡 훔쳐 먹다 들킨 머슴 꼴이 되어 장승처럼 서 있던 386 의원들의 모습이 참 ‘서글프게’ 재미있었습니다.

2년 전 총선인 끝난 뒤 청와대에서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목청껏 불러대던 그들 아니던가요? 변신과 배신은 권력이 가진 원초적 속성이겠습니다만 386 의원들의 변신은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이루어졌다는 것이 또 하나 그들만의 특징이겠습니다.

이 땅에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그들은 또 다시 우리 당 후보를 찍어달라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굽실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가증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괜히 역겨워집니다. 그래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요즘입니다. 세상이 가진 자와 못가진자로 양극화되었다고 시끄러운데 계절의 순환으로 사람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그리 공평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이 땅의 봄기운은 국회의원에게 제일 먼저 스며들어간 모양입니다.
지금 춘정(春情)을 이기지 못한 국회의원이 술자리에서 여기자의 몸을 더듬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이 국회의원은 본분에 충실하려 했던 건지 ‘음식점 여주인의 몸은 취객들의 소유이며, 음식점 여주인을 희롱해도 취객들은 민형사상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취지의 법안을 비공식적으로 발의해 놓은 상태입니다. 음식점에서, 술집에서 그는 그랬을 겁니다. 그리 살아왔을 겁니다. 그런 게 권력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법을 집행하는 검사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으로 살아왔습니다.

의원직을 내놓으라는 악다구니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습니다만,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어도 아무도 손 쓸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입니다. 한 여자 국회의원이 넋 놓아 버린 늙은 부모를 모시는 가족들의 가슴을 말 같지 않은 말로 난도질을 해대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나라 민주주의의 현실입니다. 수백 명이 지하 동굴에서 한 순간에 불 타 죽어 없어진 지역의 단체장이 아무런 문책도 받지 않고 당당하게 임기를 마칠 수 있게 한 것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선거가 가진 힘 때문이었습니다.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이 봄이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사는 이 곳이 더 이상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坐朝問道 垂拱平章(좌조문도 수공평장)... 전설속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말해도 들어주는 이는 없고, 물은 아래로는 아예 흐르지 조차 않고 위에서만 뱅뱅 돌며 썩어가고 있습니다. 봄은 봄이지만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봄입니다.


[시민사회 칼럼 74]
김진국(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신경과 전문의)

(이 글은, 2006년 3월 2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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