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위헌'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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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진(변호사) / "'적법절차'는 헌법의 기본원리...국회라고 예외 될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서 “절차는 위법했지만, 법률안 가결 선포행위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했다. 절차는 위법하지만 법안 가결선포행위는 적법하다는 이 모순되고, 생소한 논리를 접하는 국민들은 당혹스럽다. 

위법해도 가결은 유효하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남호진 변호사
남호진 변호사
먼저 신문법안에 대한 질의와 토론절차를 생략한 사실에 대해서 재판관 6명은 심의절차라도 입법절차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이유 또는 질의와 토론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국회의장의 자율적인 의사진행권한의 한계를 넘는다는 이유로 다른 국회의원들의 심의와 표결권한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관 6명은 신문법안 수정안에 대해 무질서한 상황에서 대리투표 등 절차적인 하자가 있었고, 이는 표결절차의 자유와 공정을 현저히 저해한 것이며, 이러한 상황으로 표결결과의 정당성에 영향이 미쳤을 개연성이 크다면서 역시 국회의원들의 표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국회법상 절차를 현저히 위반하여 다른 국회의원들의 법안에 대한 심의와 표결권한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재판관 중 4명이 법안가결선포행위에 대해서는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한다는 이유에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방송법안에 대해 재판관 6인은 심의절차에 있어 질의와 토론 절차를 생략하여 청구인들의 심의와 표결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 또는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권한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재판관 4명은 입법절차상의 하자가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에 해당되지 않는다거나 권력분립과 국회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에 대해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두 개 법안에 대해 입법절차상의 위법을 인정한 재판들 중 2명을 제외하고, 다른 재판관들은 입법절차가 헌법의 기본원리인 적법절차의 원칙, 국회법을 위반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법안의 가결선포행위에 대한 무효확인을 기각했다.

'적법절차'는 헌법의 기본원리...국회라고 예외 될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국가기관 사이의 권한 분쟁에 대해 국회자율권 존중, 권력분립이라는 명분으로 스스로 판단권한을 자제하는 겸손 앞에서 수도이전 법안에 대한 위헌결정에서 과감하게 "관습헌법"이론을 도입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되살아난다. 이미 국회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정된 신행정수도 이전법안을 성문헌법 국가에서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해야 할 특수이론을 동원하여 위헌으로 결정한 것과 이번 결정이 너무나 대비되어 씁쓸하다. 무릇 판단기관은 판단기준과 판단의지가 일관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다.

헌법재판이 정치적인 영역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기에 자칫 권한을 넘어선 결정으로 사법적 판단이 정치행위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헌법재판소에 모든 정치사안에 대한 해결을 미루는 것은 정치의 사법화로 옳지 못하다. 헌법재판관들이 사안마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입법형성의 영역, 국가기관의 자유재량 영역에 대한 판단을 자제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이러한 사법판단의 자제에 대해 토를 달 법률가나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은 우리 헌법의 중요한 절차적인 정의에 대한 훼손여부를 판단하고, 그 시정과 회복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판단보류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적법절차의 원칙은 형사, 행정분야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과정에서 지켜져야 하는 기본적인 헌법원리이다. 따라서 입법부인 국회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고, 헌법재판소 역시 이미 1992년에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위헌' 제거해야 할 헌재...'위헌' 국회에 맡길 문제인가?

한편 국회자율권도 헌법과 법률의 제한을 받지 않는 무제한의 자유재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하여 뽑혀져 입법기능을 담당한다 하더라도 헌법상의 적법절차의 원칙, 의회민주주의, 다수결의 원리와 헌법의 위임을 받아 구체적인 입법절차를 규정한 국회법의 범위 내에서 자율권이 인정될 뿐이다. 따라서 입법과정이 위헌, 위법이라면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위헌상황을 확인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위헌상황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들이 헌법개정을 통하여 헌법재판소를 만든 취지에 부합하고, 위법한 권한침해 행위에 대한 취소를 규정한 헌법재판소법에도 충실한 태도이다.

그리고 헌법을 위반한 국회의 입법절차과정을 스스로 국회가 시정하도록 맡겨야 한다는 논리 역시 수긍하기 힘들다.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이 진행중 임에도 여당과 방송통신위원회는 법안시행을 위한 후속조치를 취해 왔다. 이미 위헌적인 선언만으로는 국회가 위헌적인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헌을 판단하는 기관이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는 것은 위헌상태를 방임하는 행위이고, 나아가 위헌적인 상황의 반복을 조장하는 것이다. 향후 헌법재판소의 이 번 결정을 근거로 의회 다수당은 대화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적법절차를 위반하면서까지 법률을 제정하려 시도할 것이다. 의회다수당이 국민의 이익, 우호적인 여론을 명분으로 국회의 심의와 표결절차를 반복적으로 위반한다면 헌법의 최고규범성마저 훼손되는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 때서야 헌법재판소가 권한침해행위를 무효로 결정할 것인가? 위헌상태는 양적으로 쌓여야 취소하거나 무효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정치적인 고려로 판단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국회의 위헌적 권한침해, 헌재의 통제가 '권력분립' 원칙이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기능적 권력분립을 논거로 들면서 법률안선포행위의 유효를 인정하고 있다. 국회의 입법기능,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 기능이 서로 다르고, 그 기능을 양자가 서로 대체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번 결정은 입법의 내용이 아니라 입법의 절차에 대해 다투는 것이다. 입법절차의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기능은 헌법재판소에 있다. 오히려 권력분립 이론은 견제와 균형을 위한 통치구조 원리인 만큼 국회의 위헌적인 권한침해 상황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통제하는 것이 권력분립의 원칙에 충실한 태도이다.

그리고 헌법상의 적법절차의 원칙은 입법, 행정, 사법 등 국가기관만을 통제하는 원칙에서 나아가 국민의 생활규범이 되어 있고, 이는 우리 국민들이 합의하고 있는 사실이다. 대리투표금지, 표결절차의 공정성, 일사부재의 원칙과 국회법상의 회의원칙들은 일반 사회단체, 소모임에도 적용되고 있다. 또한 우리 국민들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실체적인 정의 못지않게 절차적인 정의의 실현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공감대적인 가치가 형성되어 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미디어법안의 심의와 표결절차에서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는 것이 왜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아닌지 의문스러워 하고, 현저하게 절차를 위반했다고 판단하면서도 법안을 유효하게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법은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헌법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을 정치적으로 판단하니 자연스럽지 못하고, 규범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의문이 들자 이 번 결정을 희화적으로 표현한 패러디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패러디물의 범람에 대한 시비의 문제를 떠나 최고규범을 판단하고, 헌법을 수호해야 할 기관에 대한 권위의 실추는 사회적인 혼란으로 귀결되고,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통과 비용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더욱 이 번 결정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견제 포기하면 권력은 부패...'헌법 수호자' 헌재를 기대한다

과거 우리는 헌법이 정지되는 불행한 역사를 경험했고, 그 반성적인 고려에서 국민적인 합의에 의한 헌법개정으로 헌법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를 만들었다. 헌법재판소는 민주화 과정에서 만들어낸 성과물이었기에 국민들은 어린 새싹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관용의 자세로 헌법재판소를 지지해왔다. 비록 초기에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 있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언젠가는 훌륭한 헌법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국민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20여년의 역사 속에서 헌법재판소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결정을 통하여 헌법적인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켜왔다. 이제 국민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최고 규범성을 부여하고 있고, 사회의 제도 또한 그 결정에 따라 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명실상부하게 성숙된 헌법기관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 번 결정을 포함한 중요한 정치적인 사건에 대한 결정에서 헌법적인 판단 외에 정치적인 판단을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아직도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수호자로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를 기대하고, 희망한다.

권력분립의 통치구조에서 견제를 포기하면 균형이 무너지고, 균형이 무너지면 특정 통치집단의 독점이 시작되면서 권력이 부패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된 권한을 회복하길 바란다.

남호진 / 변호사. 전 대구민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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