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 다음 날 또 침수..."그저 막막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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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수해 일주일 '노곡동' / "복구는 이제부터...언론은 죄다 관공서 설명만"


한달여 동안 두 차례나 침수피해를 겪은 대구시 북구 노곡동 일대. 기자가 찾은 23일, 노곡동은 피해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복구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매천동과 무태동 사이에 위치한 노곡동. 금호강변과 맞닿아 있으며, 마을 진입도로보다 지반이 낮아 한 눈에도 침수피해가 예상되는 곳이었다. 물에 잠긴 마을입구와 버스정류장 인근지역의 지형은 마치 큰 양푼이처럼 움푹 파인 듯 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7월 17일과 8월 16일 두 차례의 집중호우로 92개 가구와 47대의 차량이 침수됐다.
 
침수가 일어난 대구 노곡동 323번지 일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복구작업으로 분주하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침수가 일어난 대구 노곡동 323번지 일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복구작업으로 분주하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마을 입구에 문제가 된 배수펌프장이 있었다. 1차 침수와 2차 침수 모두 배수펌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침수가 됐다. 현재 배수펌프장에는 또 있을지 모르는 폭우와 태풍.장마를 대비해 임시로 배수펌프를 더 마련해 놓았다.

문제가 된 배수펌프장(왼쪽)과 임시로 마련된 배수펌프들(오른쪽)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문제가 된 배수펌프장(왼쪽)과 임시로 마련된 배수펌프들(오른쪽)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마을 입구인 경부고속도로 교량 아래에서는 적십자 자원봉사자들이 주민들을 위해 무료급식 봉사를 하고 있었다. 기자가 도착한 오후 12시 경. 더운날씨에 땀 흘리며 복구작업을 하던 주민들이 이곳에서 한끼 식사를 해결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침수 흔적들...두번의 물난리로 기운 잃은 주민들

마을에 들어서자 아직도 남아있는 침수피해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침수피해 뒤 일주일이 지나 도로와 하수도 정비는 대부분 끝난 상태. 그러나 도로 가장자리에는 붉은 진흙이 간간히 묻어있었다. 집집마다 냉장고와 티비, 접시, 옷가지 등을 햇볕에 말리기 위해 마당이나 대문 앞, 천막 밑에 내놓고 있었다.

마을에서 만난 대부분의 주민들은 두 번의 침수피해로 기운을 잃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마을 곳곳과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1차 피해 이후 겨우 제자리를 찾은 마을이 또 다시 엉망이 되자 다시 새로 복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해하는 듯 했다.

침수로 인해 많은 식품들을 내다버려야 했던 마을 슈퍼마켓에서도 내부 정리를 끝내고 새로 상품들을 들여다 놓는 모습이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식품회사 직원이 트럭에서 제품상자들을 나르고 있었다. 주민들도 생필품을 사기위해 가게를 드나들었다. 

마을 곳곳마다 햇볕에 말리려 내놓은 가재도구와 가전제품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마을 곳곳마다 햇볕에 말리려 내놓은 가재도구와 가전제품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나무로 된 것들은 물먹으면 다 못써. 버려야 돼" 

슈퍼마켓 앞에서 만난 한 70대 할머니는 "아직도 집안 내부가 마르지 않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물먹은 장롱과 목재가구들은 다 못써, 버려야 돼"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쓸만한 것들만 햇볕에 말리고 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최근 식당을 개업했다 몇 일만에 침수피해를 입은 식육식당 손정희 사장은 "개업을 위해 식탁 등 가구와 집기류를 새로 장만했는데, 침수로 다 못쓰게 됐다"며 "손해는 금액으로 계산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힘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배 다음 날 또 침수.. 막막할 뿐"

배수펌프와 가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한 40대 여성은 "불과 10여분 만에 성인 남성 허리까지 물이 찼다"며 "이것저것 집어들다 결국은 맨손으로 대피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집 벽면에는 흙탕물이 차오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또, "1차 피해 때 겨우 다 정리하고 벽지와 장판을 새로 했는데, 도배 다음날 바로 침수 됐다"며 "다시 돈들여 도배를 하고 가구를 새로 장만해야 하고...그저 막막할 뿐"이라고 한탄했다.

침수피해를 입은 집 내부. 벽지와 장판을 모두 뜯어냈다. 오른쪽은 흙탕물이 차오른 흔적. 성인 남자 허리부분 까지 차 올랐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침수피해를 입은 집 내부. 벽지와 장판을 모두 뜯어냈다. 오른쪽은 흙탕물이 차오른 흔적. 성인 남자 허리부분 까지 차 올랐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죄다 관공서 설명만...언론마저 이러니 믿을 곳이 없다"


주민들은 침수피해와 관련된 언론보도에도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한 50대 주민은 "기자들이 많이 다녀갔으나 현재 상황을 제대로 보도한 곳은 하나도 없다"며 "지난 주말까지 복구 완료할 것 이라 했는데, 주위에 복구가 다 된 곳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기대하고 TV, 신문 보도를 봤는데 우리가 한 말은 거의 없고, 죄다 관공서측의 설명만 적어놨더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그러지 않아도 1차 피해 후 시장.구청장.공무원들의 안이한 대처에 실망했는데, 언론마저 이러니 믿을 곳이 없다"며 "앞으로도 정확한 보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아예 인터뷰와 취재 자체를 거절 하겠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한 달 까까이 벽에 물 새어나와...보일러마저 잠겨"

이수환(43) 피해대책위원장
이수환(43) 피해대책위원장
이수환(43) 노곡동침수피해대책위원장은 현재까지의 피해와 복구상황에 대해 "각 가정.업소마다 버릴 물건들을 다 버리고 건물 내부와 집기류등을 말리고만 있는 상태"라며 "두 차례의 침수로 인해 금전적 피해는 물론이고, 주민들이 또 이런 일이 발생할까 밤에 잠들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차 피해 때도 한 달 가까이 벽에서 물이 새어나왔다"며 "몇 몇 가정에서는 더운 날씨에도 보일러를 가동해 말리고 있는데, 대부분의 가정이 보일러마저 물에 잠겨 작동이 되지 않아 복구작업에 더 많은 시간이 쇼요된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대구시와 북구청의 피해보상계획과 관련해 "아직 1차 침수피해의 보상금액도 산출이 되지 않았다"며 "대구시와 북구청에서 30일 오전까지 1.2차 피해액을 산정해 각 가정별로 통보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2주 안에 보상이 완료된다는 언론보도는 잘못 된 것"이라며 "2주 안에 피해.보상금액 산출.통보까지 완료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보상금 산출 본 뒤...여름마다 가슴 졸여야 하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 위원장은 "일단 김범일 대구시장과 이종화 북구청장이 이달 말 까지 보상금액을 산출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보상금액이 산출이 된 뒤, 주민들과 산출금액의 합리성을 따져 보상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받아들이지 않고 항의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주민들이 매년 여름마다 가슴을 졸이며 살 수는 없다"며 "근본적으로 침수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을 대구시와 북구청에서 조속히 마련 할 것"을 촉구했다.

마을 곳곳에 걸려있는 피해보상촉구 현수막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마을 곳곳에 걸려있는 피해보상촉구 현수막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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