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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곡동 물난리, '재난보도'에 문제는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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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은경 / '복구에 구슬땀'식 보도 ...화면에서 사라져가는 '노곡동'


'고장 난 행정'이 원인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전체 주민들의 민생이 행정기관 잘못 때문에 두 번이나 파탄 났다. 지난 7월 17일에 이어 8월 16일 한 달 사이에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원인으로 대형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대구의 공중파TV 세 채널은 노곡동 민생 파탄이 배수펌프장 고장이 아닌 고장 난 행정 때문임을 보도했다. 그러나 두 차례 모두 인재였고 그것도 노곡동 주민 전체의 삶이 결딴난 인재라면 그 재난 보도에 문제는 없었는가?

대책 지지부진한데 '노곡동' 벌써 잊혀가

상상을 극하는 엄청난 피해가 노곡동에서 발생했다.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물구덩이에 잠기자 몸만 겨우 빠져나온 주민들은 분노했다. 보도는 그래서 성난 민심을 강조했고, 원인을 캐고 보니 총체적 인재였고, 복구다, 보상이다 하며 공무원들이 부산을 떨었지만 마음은 딴 데 가있었고 그나마 대책도 지지부진이어서 무성의를 질책했다. 그런 가운데 ‘복구에 구슬땀’ 식 보도가 이어지자 ‘노곡동’은 시민-시청자들 뇌리에서 잊혀 가고 있다. 대구지역 공중파 텔레비전 재난보도에도 행정기관만큼이나 큰 구멍이 난 것은 아닌지?

'복구 순조'…제2차 물난리 의심 안 해

7월 17일 제1차 노곡동 물난리 보도.
공중파 TV 세 채널 모두 17일 새벽의 물난리에 초점을 맞췄다. 노곡동 피해는 칠곡, 고령 등 여러 지역 비 피해의 하나로 다뤘다. 그러나 기자가 저수지로 변해버린 노곡동 현장에 들어감에 따라 배수펌프장 제진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 1차원인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임이 확인됐다. 18일 이후 화면을 주로 장식한 자원봉사자들의 복구 노력 장면은 노곡동 물난리가 어느 정도 해결돼 복구단계라는 인식을 시청자들이 가지게 했다. 북구청과 경찰이 시공사와 감리단 등을 상대로 원인을 조사하고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전했고, 물난리 하루 만에 노곡동이 몰라보게 제 모습을 찾아간다고도 보도했다. 보도만 보면 이때만 해도 노곡동의 물난리는 조만간 수습되고 주민들도 일상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 누구도 제2차 물난리를 의심하는 시민-시청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이 먼저 손 쓴 '2차 물난리'

8월 16일 제2차 노곡동 물난리 보도.
비가 내리기 시작한 8월 16일 오후 노곡동의 다급한 상황을 대구MBC는 이렇게 보도했다.

대구MBC 뉴스데스크(2010년 8월 16일)
대구MBC 뉴스데스크(2010년 8월 16일)


4시 22분 쯤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불과 몇 분 만에 벤치가 물에 잠겨버립니다. 주민들이 고지대로 긴급 대피하고, 주차됐던 차량이 서둘러 빠져나갑니다. 갑작스런 물난리에 충격을 받은 주민이 119에 의해 긴급 후송되고, 고립된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이웃 주민이 물길로 뛰어듭니다.


8월 16일의 제2차 물난리는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다. 문제의 배수펌프장 제진기는 제1차 물난리 때와 동일한 과정을 밟으며 기능을 멈췄고 마을 전체가 순식간에 다시 저수지로 변하는 침수피해과정도 다름이 없었고 공무원들의 뜨뜻미지근한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한밤중에 닥친 1차 물난리를 경험한 노곡동 주민들만이 다급했고 그래서 이웃주민들을 구조하러 나선 것도 1차 피해 주민들이었다.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2차 인재

이번에도 원인은 인재였다. 그래서 대구 공중파TV 세 채널은 인재를 강조했다. 1차 물난리 와중에도 골프를 치는 등 후안무치였던 공무원들이 이번에도 원님 행차하듯 했고 주민들의 일손을 도우려 하지도 않았다. 이 사실을 TBC는 이렇게 보도했다.

TBC 프라임뉴스(2010년 8월 18일)
TBC 프라임뉴스(2010년 8월 18일)


주민들의 마음은 바짝 타들어가고 있는데도 공무원들은 양복차림에 구두를 신고 수해 현장을 누비고 다니다 주민들의 심한 반발을 샀습니다. … 자원봉사자들과 주민들은 뙤약볕 아래 땀을 쏟고 있지만 숟가락 하나 씻어줬다는 공무원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노곡동 주민들은 ‘공무원 높은 분 오셔서 책임지겠다 하고는 가고 나면 소식이 없는’ 대구시․북구 공무원들의 진정성 없는 대책 발표에 분개했다. 보도는 원인과 책임을 따지기 위해 대구시와 경찰이 감사와 조사에 나섰다고도 전했다. 

그러면 노곡동 주민들의 민생을 파탄시킨 두 차례 물난리 보도에서 두드러진 점과 문제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동일장소․동일원인 '인재' 강조

똑 같은 장소, 똑 같은 원인, 과정을 거쳐 노곡동 주민들은 물난리를 당했다. 이것만 봐도 노곡동 물난리는 인재란 지적을 면할 수 없고 대구 공중파TV 세 채널은 물난리의 성격이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천재가 아니리 공무원의 복무 자세와 행정 시스템 문제 때문임을 분명히 했다. 그에 따라 배수펌프장 현장 근무 상황, 제진기 가동 상의 문제점은 물론 입찰 과정의 의혹 등 다방면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물난리를 겪는 노곡동 주민들을 뒤로 하고 골프 행각을 벌인 공무원들의 ‘딴 세상 식 복무 자세’도 질타했다.

공무원 '복무 혁신' 필요성 제기

이 같은 일련의 보도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노곡동의 인재가 물난리 전에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고 물난리 후에도 현실적이고 신속한 피해 복구와 보상은 물론 제2, 제3의 물난리 예방 대책 마련도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했다. 이것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의 주민들이 입는 피해가 상상 이상의 것일 수 있음을 환기했고, 따라서 관련 공무원들은 복무 자세를 혁신적으로 바꿔 단계적으로 재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교육한 재난보도였다. 기자들이 주민들의 입장에서 현장을 누비며 노력한 보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노곡동 주민들은 물난리를 두 차례나 겪었고, 현재도 제3의 물난리가 난다해도 또 당할 것이란 불안감을 안고 있다. 왜 그런가?

제1차 물난리 후 한 달 '허송'

제1․2차 노곡동 물난리는 한 달 사이에 잇따라 발생했지만 달리 보면 한 달이란 대책 수립 기간이 있었다. 물난리가 난 시기는 여느 때도 물난리가 나지 않을까 조심해야 할 기간이었다. 예년의 사례를 보면 6월부터 9월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물난리 비상 대기 기간이고 이런 기상상황을 국민들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제2차 물난리가 났을 때 주민들은, 한 차례 경험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나마 물구덩이 속에서 차량을 끄집어내고 이웃 주민들을 돕는데 나서기도 했다.

'외양간 제대로 고치기' 의지 안 보여

그런데도 공무원들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이것은 제1차 노곡동 물난리 재난보도가 공무원들에게는 여전히 ‘마이동풍’ 이었음을 보여준다. 공무원들이 허둥지둥 하고, 제진기 탓이나 하며 책임을 미루고, 넥타이 매고 구두 신고 현장을 방문하는 ‘원님행차’ 행태를 보인 것은 한 마디로 공무원들에게 재난 대비 교육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소는 잃었어도 다시 잃지 않기 위해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는 자세를 시청자들은 뒷북치는 공무원들의 행태를 통해 읽을 수 없었다.

'사과' 제스처보다 '예방 시스템' 먼저

그에 따라 대구 공중파TV 세 채널은 대구시․북구청 등 관련 공무원들에게 재난대비 매뉴얼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그것을 숙지하고 유사시 그에 따라 대응함으로써 주민 피해를 예방하거나 줄일 태세가 돼 있는지를 점검하는 보도가 필요했다. 제1․2차 노곡동 물난리 재난보도에서 공무원들이 재난 대비 태세를 점검하는 보도는 찾을 수 없었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넥타이를 푼 모습으로 사과발언을 하기는 했으나 그런 모습은 선거에서 표를 의식하는 선출직 공무원들에게서 항용 볼 수 있는 의례용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관련 공무원들이 일상적으로 재난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고 시장과 구청장 등이 그런 태세를 갖추도록 시스템을 수립, 평시에 얼마나 점검했느냐 하는 것이다. 공무원의 기본임무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해 민생이 파탄 났는데 책임지겠다는 선출직이나 고위 정책 담당 공무원을 화면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점검 보도 소홀

대구 공중파TV 3사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장 상황은 전했으나 그것을 점검하는 데는 소홀했다. 단적인 예로 1차 물난리 때 경찰과 북구청은 노곡동 물난리 원인과 책임 문제 등을 조사한다고 하는 등 보도로만 보면 대구시, 북구청, 경찰 등이 감사․조사를 천명했으나 여태 속 시원한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노곡동 주민들의 생명이 위협받았고 생활 터전을 몽땅 물난리로 잃었는데도 행정 쪽의 동향을 전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그나마 물난리가 지나고 며칠 되지 않아 ‘노곡동’은 보도 화면에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4대강 사업 피해 없다' 신속보도 배경 궁금

또 한 가지.
제1차 노곡동 물난리가 났을 때 대구MBC와 TBC는 4대강 사업장에는 비 피해가 없었다고 신속히 보도해 그 배경에 궁금증을 더하게 했다(대구MBC 19일 ‘낙동강 사업장에 비 피해 없어’. TBC 18일 “낙동강 사업장 비 피해 없어”. 이 보도는 내용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동일 기관의 발표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관점에 따라 위험이 도사린 낙동강 한 가운데 나앉은 ‘4대강 사업장’만큼만 관리하면 노곡동 물난리는 없었을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보도에 따르면 노곡동 주민들이 겪은 두 차례 물난리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여서 국가 차원의 피해 보상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 노곡동 주민들은 공무원들의 안일한 복무, 잘못된 행정체계 때문에 입은 엄청난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

'명품 도시' 수성구에 노곡동이 있다면?

노곡동은 금호강 건너편, 금호강과 맞닿은 곳, 잠수교로 침산동과 연결되고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다. 만일, 그런데 만일 노곡동이 ‘명품 도시’를 천명하는 수성구 한 복판에 있다면 그래도 물난리가 났을까? 노곡동 물난리 ‘인재’는 균형 발전을 이뤄내야 할 대구시 정책 당국자들의 편향된 행정 소신-눈에 띄는 곳은 집중 투자 개발하고 그렇지 않은 곳의 주민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인재를 염려해야 하는’-이 빚은 필연적인 ‘정책 인재’로는 볼 수 없을까?

재난보도 구멍 뚫리면 시민 피해 '직격탄'

유난히 재난이 잦은 대구광역시. 대구 공중파TV 채널의 재난보도에 구멍이 뚫리는 날 시민들의 재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 몫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제1․2차 노곡동 물난리 인재는 보여줬다. 제3의 노곡동 물난리 인재를 막기 위해서라도 제1․2차 물난리 재난 보도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대구 공중파TV 채널들은 점검 보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97]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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