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의 주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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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산정 특례 5년 종료>..."보험재정 문제를 환자들에게 떠넘기는 무책임"


지난 8월 넷째 주 외래 진료를 보는데 한 할머니 환자가 가방 속에서 서류로 보이는 몇장의 A4 용지를 꺼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게 뭔지 몰라도 병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알아서 연장해 주실 꺼라 카던데”

용지의 머리에는 ‘건강 보험 산정특례 등록 신청서’ 라고 적혀 있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신으로 되어 있는 ‘본인 일부 부담금 산정 특례5년 종료 안내문’도 함께 붙어 있었다.

“ 그동안 중증 질환으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라는 공손한(?) 인사로 시작된 안내문의 주된 내용은 2005년 9월부터 시작된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본인 일부 부담금 산정 특례 제도’를 2010년 8월 31일 부로 종료하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현재 잔존암이 있거나 전이암이 있거나 재발된 암조직의 제거 소멸을 목적으로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 중인 경우는 재 등록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암환자들의 따가운 시선이 미리 느껴졌는지 암학회, 외과, 내과 학회와 의견 수렴을 거쳤노라는 내용도 조금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안내문 끄트머리를 읽어 갈 즈음에는 안내문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나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의 깊이 패인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암센터로 보내드릴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직접 설명해 보기로 했다.

“ 할머니, 그러니까...2005년 전에 수술하셨지예? ”
“ 그렇지”
“ 그라고 방사선, 항암 치료 다 받으셨지예 ?”  
“ 그라모”
“ 그런데...음~그러니까...지금은 재발한 상태는 아니니까 그동안 진료비 많이 싸게 해드렸던 걸 이제는 못해 드리게 된다는 말입니더. 병원비를 보통 사람들하고 똑 같이 내셔야 합니데이. 죄송하지만 이 서류는 더 이상 연장이 안 되겠네예”
“ 머라카노...그라문 내가 다 나았다는 말이가 ?”
“ 음~ 지금까지로 보면 다 나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음~ 재발 할 수도 있습니더. 그러니까 병원에는 지금처럼 계속 한번씩 와야됩니더. 그라고 혹시 재발 하면 다시 저번처럼 싸게 진료해 드릴낍니더...”

내가 말해놓고도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냥 해주면 될낀데....”
하면서 진료실 문을 나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답답한 마음에 한참을 진료실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암 환자 산정 특례 제도는 참여정부가 이룬 성과로 볼 수 있는 보장성 강화 정책이다. 2005년 9월 이후 암 환자로 등록 하면 전체 진료비의 5% 만 본인이 부담해왔다. 다른 질환과 달리 “암에 걸리면 집안이 휘청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드는 현실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회 취약 계층에게는 큰 도움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이 제도의 종료를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것도 종료 몇주 전에 우편으로 발송된 안내문을 통해서다. 복지부가 내세우는 논리는 지원 중단으로 인해 절감 된 재정을 초기 암환자 지원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보험 재정의 문제를 암 환자들에게 전가시키는 무책임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5년일까? 아마도 암환자의 생존률을 말할 때 흔히 5년 생존률을 이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5년 동안 재발이 없으면 모두 완치된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진료 현장의 의사들이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치료 후 5년이 지나 암이 재발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내원하는 암 환자가가 진료실로 들어설 때마다 기도하는 심정이 된다. ‘재발하지 않았어야 될 텐데’ 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워 수술 부위 구석구석 살피고 만져본다. 재발이나 전이가 되면 처음 술수 할 때 보다 치료가 힘들고 환자의 고통도 더 커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암을 진단하는 PET CT나 MRI 등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검사도 시행하게 된다. 혹시나 모를 숨어 있을 수 있는 암을 찾아내거나 조금이라도 빨리 재발여부를 알기 위해서다.

경향신문 2010년 9월 1일자 11면 / < 5년된 암치료 환자 오늘부터 '병원비 폭탄' > 기사 중 일부
경향신문 2010년 9월 1일자 11면 / < 5년된 암치료 환자 오늘부터 '병원비 폭탄' > 기사 중 일부

그동안은 전체 비용의 5%만 환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처방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에게 검사를 권하기에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일례로 보험 수가로 약 92만원 이던 PET CT의 경우 그동안은 5%만 환자가 부담해 4만 6천원(특진비 제외)만 내면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9월 1일 부터는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의 경우 각종 추적 검사 비용이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혈액암 이나 골수 이식을 한 환자의 경우는 5년이 지나도 여러 가지 검사와 면역 억제제 등의 치료에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걱정이 많다.

아울러 암 치료 후의 합병증은 치료 과정에도 나타날 수 있지만, 치료가 끝난 후에도 더 많이 나타나 환자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암 등록 후 5년이 경과한 환자의 경우 합병증 치료에 드는 진료비 역시 경감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심각한 합병증으로 고통 받고 있던 환자들은 갑자기 늘어난 진료비용으로 인해 이중으로 고통 받게 되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9월부터 2009년 말까지 109만 명이 암환자로 등록해서 2조 417억원이 진료비 경감에 쓰여 졌다고 한다. 복지부의 말대로 건강 보험 재정이 한정되어 있어 어쩔 수가 없다면 이제라도 전문가들이 의견을 모아 새로운 안을 만들어야 한다.

암 환자들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차등 적용도 고려할 수 있다. 아울러 암의 종류에 따른 차별적 적용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무분별한 추적 검사로 인한 보험 재정 악화가 우려된다면 전문의들의 자문을 구해 필수 검사 항목을 정하면 된다. 그 검사에 한해서는 지속적으로 산정 특례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발표된 우리나라 통계에 따르면 최하위 계층이 최상위 계층에 비해 암에 걸릴 확률이 1.65배나 된다고 한다. 그들은 암으로 인해 쉽게 직장을 잃고, 몇 푼 안되는 퇴직금을 암 치료에 쏟아 붓는다. 마지막에는 전세금까지 치료비로 쓰고, 결국에는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암으로 대표되는 심각한 질병이 더 극심한 빈곤을 불러오고, 그 빈곤은 다시 그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악순환의 고리가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를 결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운해하며 진료실을 나선 할머니의 이마에 한 줄 주름이 늘어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기고] 김동은
/ 의사. 이비인후과 전문의.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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