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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춥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①> "평범한 새벽"...첫 출근과 첫 퇴근, 새해 첫 시내버스..
2011년 01월 02일 (일) 15:43:02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춥니다"


새해 첫 날 '북구3번' 첫 차를 운행한 이형문(52.월배동) 기사는 이렇게 말하며 핸들을 잡았다.
"남들 다 쉬어도 대중교통은 쉴 수가 없어요. 몇 명 안 되지만 이 시간에도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기사들끼리 모이면 이렇게 말 합니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고..."

2011년 1월 1일 새해 첫 새벽에도 시내버스는 그렇게 움직였다.

   
▲ 2011년 1월 1일 새해, 운행준비를 마친 시내버스들이 차고지 바로 앞 도로가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인 새벽 5시. 인적 드문 서구 이현공단에 위치한 '(주)달구벌버스' 차고지에서 누군가 버스마다 시동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 헤드라이트 불빛이 하나 둘 씩 새벽녘 어둠을 뚫고 주변을 밝혔다.
 
 "그저 평범한 새벽일 뿐..."

   
▲ 이형문(53) 기사
18년 경력의 버스기사 이형문씨는 "아침에 먼저 온 사람이 미리 시동을 걸어둬야 뒷 차들이 제때 출발 할 수 있다"며 출근하자마자 버스에 올라 키를 돌렸다. 밤새 새워둔 버스는 아침이 되면 브레이크 압력이 떨어져 곧바로 출발 할 수 없기 때문에, 시동을 걸어 10분 정도 공기압력을 보충해야 한다.

'북구3번' 버스는 노곡동을 기점으로 팔달시장과 섬유회관, 한일극장과 동대구역을 거쳐 망우공원까지 운행한다. 첫차는 새벽 5시30분 팔달시장에서 출발하며, 노곡동에서 두 번째 차량이 뒤를 이어 5시41분에 출발한다.  운행준비를 마친 이형문 기사는 5시20분쯤 첫 출발지인 '팔달시장'으로 향하며 "기사들에겐 그저 평범한 새벽일 뿐, 새해라고 특별한 건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둘과 중학생 한 명의 자녀를 둔 이 기사는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며 "오후에 퇴근한 뒤 평소처럼 집에서 조용히 새해 첫날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또 "구정 설을 챙기기 때문에 오늘은 부모님께 안부전화만 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새해라고 특별한 건 없다"던 이 기사는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에게 일일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 첫 차의 시동을 거는 이형문(51)씨와 첫 차의 첫 손님인 정순미(31)씨...이들은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사님도 새해 복 많이 반으세요"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새해 첫 차의 첫 손님..."기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날 '북구3번' 버스의 첫 손님인 정순미(32.원대동)씨는 "새해를 맞아 친구와 산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고 말했다. 정씨는 신천역 근처에서 탑승한 친구와 함께 동대구역에 내려 태백산으로 향했다.

이 기사는 신호를 대기하는 동안 따뜻한 녹차를 승객들에게 한잔 씩 건네며 새해 인사를 톡톡히 했다. 인사를 받은 승객들도 환하게 웃으며 "기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답했다. 효목동에서 버스에 오른 한 70대 노인은 "버스기사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데다 직접 따뜻한 녹차까지 대접해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 '북구3번' 저상버스에 비치된 커피와 녹차, 우산...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형문 기사는 '북구3번' 노선 중 단 한 대뿐인 저상버스를 운행한다. 이 버스에는 승객을 위한 커피믹스와 녹차가 무료로 비치돼 있다. 모두 2007년부터 이 기사가 직접 사비를 털어 마련한 것으로, '달구벌버스'의 명물이다.

이형문 기사는 "승객들이 많지 않을 때 가끔 한잔 씩 따라준다"며 "요즘같이 추운 날 승객들이 많이 좋아 한다"고 말했다. 

새해 첫 출근...

새해 첫 새벽 첫차를 탄 승객들은 '출근'과 '퇴근'의 사연을 갖고 있었다.

동대구역 도시락판매점에서 근무하는 이모(57.달성동)씨는 "출근하는 길"이라며 "새해 첫날 새벽부터 동대구역을 찾는 사람이 많아 오늘도 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녀들이 분가한 뒤 남편과 단 둘이 산다"며 "다들 바빠서 집에는 못 올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아파트경비, 극장 아르바이트...새해 첫 새벽의 퇴근

새해 첫날 새벽 '퇴근길'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다. 효목동에서 아파트경비원으로 근무하는 김모(72)씨는 "이제 막 일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이라며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명절도 새해도 없다"고 말했다. 칠곡에 사는 김씨는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는 곳이 잘 없다"며 "집이 멀어도 어쩔 수 없이 이곳까지 일하러 온다"고 말했다. 연말과 연시를 모두 일터에서 보낸 김씨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내 한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권용진(24.노곡동)씨도 "이 시간에 자주 퇴근했더니 새해가 되도 특별하지 않다"며 "새벽 5시에 일을 마친 뒤 동료들과 함께 간단히 샴페인을 터뜨리고 왔다"고 말했다.

   
▲ 2011년 1월 1일 새벽 5시 40분, 첫 출근과 첫 퇴근 승객을 태운 '북구3번' 시내버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날 '북구3번' 첫차에 탑승한 승객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이형문 기사는 "평소에도 이 시간에 버스를 타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종점에 도착한 이형문 기사는 휴식시간 30분을 이용해 인근 기사식당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해결한 뒤 다시 반대편 종점으로 향했다. 처음 출발한 '팔달시장'에 도착할 무렵 2011년의 첫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 서구 이현공단에 있는 '달구벌버스자동차' 차고지. 새벽 첫 운행을 나갈 버스들이 한 줄로 서있다. 새해 첫 차에 오른 시내버스 기사에게 1월 1일은 "그저 평범한 새벽일 뿐"이었다. 첫 출근과 첫 퇴근길에 오른 서민들 역시 "특별하지 않은" 새해 첫날이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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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옥
(121.XXX.XXX.104)
2011-01-05 17:42:27
추워도 따뜻한~
따뜻한 기사~ 따뜻한 마음!!!
갈무리
(122.XXX.XXX.144)
2011-01-04 15:49:34
달구벌버스 화이팅
달구벌버스는 노동자들이 운영하는 회사인 줄 아는데 어렵게 운연하면서도 사회봉사동하고 좋은일도 많이 하시는 줄 압니다. 신묘년 새해에는 사고없이 좋은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달구벌버스 화이팅! 이형문 기사님 화이팅!
이은정
(121.XXX.XXX.229)
2011-01-03 02:35:42
마음이 따뜻~~
박기자 화이팅! 훈훈한 기사 고마워요~
홍철
(121.XXX.XXX.240)
2011-01-02 22:43:01
좋은 기사네요^^
서민들의 삶의 향기가 물씬 나는 기사네요. 새해 이른 새벽 취재하느라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박 기자님, 새해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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