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12.6 금 22:23
> 뉴스 > 지역사회 | 새벽을 여는 사람들
   
긴장의 연속, 눈 팔 틈 없는 도매시장의 새벽
<새벽을 여는 사람들②>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점 찍어둔 최상품 낙찰 받아야죠"
2011년 01월 12일 (수) 10:09:16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세상이 잠든 고요한 새벽, 어둠이 사방에 내리깔린 이른 시각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곳이 있다. 바로 도매시장이다. 북구 매천동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은 11일 새벽 4시 30분, 벌써부터 트럭들이 시장 입구를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산지에서 올라온 싱싱한 상품을 내려놓는 트럭과 곧 있을 경매를 통해 구입한 상품을 실어갈 트럭들이다. 

도매시장 입구 옆 한 청과류 경매장에 들어서자 눈앞에 감귤 상자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경매장 절반가량을 감귤이 차지하고 있었다. '과일은 제철에 먹는 게 제 맛'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났다. 나머지 절반은 사과와 배, 단감, 딸기, 메론 등 여러 품목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새벽 4시부터 환하게 불을 밝힌 새벽 도매시장의 모습(좌)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경매장에 적재 된 감귤 상자들(우)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경매장 안팎으로 줄지어 자리 잡은 중도매상 점포에 몇몇 상인들이 일찍부터 나와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중도매인은 "전날 낙찰 받은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며 "보통 4시에서 5시 사이 경매장에 나온다"고 말했다. 상품을 다 싣기가 무섭게 트럭은 금세 어디론가 바쁘게 향했다.

경매장 안, 키 높이만큼 쌓아올려진 감귤상자 사이에서 누군가 빠른 손놀림으로 상자를 열어 상품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구중앙청과주식회사 김태호(65) 현장감독이다. 16년 간 중앙청과에서 일 해온 김 감독은 "새벽 2시쯤 현장에 나와 전날 들어온 상품을 일일이 확인하며, 중도매인들이 상품을 잘 볼 수 있도록 상자를 개봉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감귤 확인에만 2시간 넘게 걸린다"며 "경매시간 전까지 모든 상품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이곳 경매장에는 매일 오후 6시부터 전국각지에서 생산된 과일과 채소가 들어온다. 새벽 6시에 과일경매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전에 미리 상품배열과 확인을 끝내야 한다. 채소경매는 오후 3시에 시작한다.

   
▲ 새벽 2시부터 나와 전날 들어온 상품을 확인하고, 중도매인들이 상품을 잘 볼 수 있도록 맨 윗 상자를 개봉하고 있는 김태호 현장감독(앞)과 4시부터 경매장에 나와 맛을 본 뒤 미리 상품을 점찍어 놓은 '아지야 과일가게' 최두형 대표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중도매인이나 경매장 직원으로 보이지 않는 한 30대 남자가 적재된 귤 상자 사이를 돌며 맛을 보고 있었다. 대구지역 프렌차이즈 과일판매업체인 '아지야 과일가게' 최두형(37) 대표였다. 보통 소매상들은 경매가 시작할 무렵이나 경매가 끝난 뒤 시장에 나오는 것이 대부분인 반면, 최 대표는 새벽 4시부터 경매장을 돌며 미리 상품을 점찍어두고 있었다.

   
▲ 최두형 대표
최 대표는 "직접 맛 본 상품을 점찍어 놓고 중도매인에게 구매를 부탁하기 위해 일찍 나왔다"며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최상품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7년 전 프렌차이즈 사업을 시작해 대구지역에 10개 대리점을 유치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일찍 움직인 덕분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잠에서 깨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과일장사도 마찬가지에요.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움직여야 좋은 상품을 구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새벽 5시쯤 되자 조용했던 경매장이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중도매인들과 일찍 나온 소매상, 이제 막 출근한 경매장 직원들까지 뒤섞여 경매장 안이 북적댔다. 경매사와 경매장 직원들은 출근 직후 전날 들어온 상품과 시세를 확인하고 있었으며, 중도매인들도 과일들을 꼼꼼히 살피며 미리 낙찰 받을 상품을 고르고 있었다. (주)상미 소속 중도매인 정석표(44)씨는 "대강 눈으로 살핀 뒤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으면 맛을 보고 미리 찍어둔다"며 "최선과 차선까지 선택해 둬야 만약 처음 찍어둔 물건을 낙찰 못 받았을 경우, 그 다음 좋은 상품이라도 빨리 낙찰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확히 6시가 되자 곧바로 경매가 시작됐다. 이곳 중앙청과 경매장에서만 하루 평균 과일 150여톤과 채소 150톤을 비롯해 총 5억원어치의 상품이 거래된다. 중앙청과 경매장과 거래하는 중도매상은 총 32곳으로, 경매시작 전 100여명의 중도매인과 소매상들이 경매장 안을 가득 메웠다. 

   
▲ 경매가 시작 된 경매장의 모습. 전광판이 딸린 전동차 위에서 경매를 진행 중인 경매사와 경매사를 바라보고 있는 중도매인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경매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전광판이 달린 전동차를 탄 경매사가 등장하자 한 순간 주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매장 내 모든 시선이 경매사에게 쏠리며, 중도매인들 사이에서 눈치작전이 조용히 펼쳐졌다.

경매사는 2인 1조로 업무를 진행한다. 한 명이 상품 앞에서 품목과 수량을 불러주면, 나머지 한 명이 해당 상품에 대해 최고입찰가를 제시한 중도매인에게 낙찰을 결정한다.

물량이 가장 많은 감귤부터 경매에 들어갔다. 마치 주문을 외듯 알아듣기 힘든 경매사의 외침을 신기하게도 중도매인들이 알아듣고 입찰을 해 나갔다.

이날 감귤 경매를 진행한 14년 경력의 박수환 경매사는 "경매 도중 쉴 새 없이 중얼거린 말에 특별한 뜻은 없다"며 "지루한 경매에 흥을 돋우며, 경매시간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또 "상품의 질에 비해 적절한 입찰가격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중도매인들의 입찰을 유도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중도매인은 "경매사의 말 중 상품 번호와 낙찰 가격만 잘 들으면 된다"고 귀뜸했다.

   
▲ 전동차 위에서 쉴 새 없이 마이크를 들고 경매를 진행 중인 박수환 경매사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디지털시대가 도래한 만큼 경매방식도 수년 전부터 전자식으로 바뀌었다. 일일이 손으로 입찰가격을 주고받던 수지식에 비해 경매시간과 오류가 상당히 줄었다. 경매 시스템도 잘 구축돼 당일시세와 낙찰가격, 평균 거래량 등을 한 눈에 손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 것이다. 

중도매인들은 마치 구형 휴대전화처럼 생긴 전자 응찰기를 하나씩 손에 쥐고 경매사와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해당상품에 대한 정보와 입찰결과가 공개된다.

자신이 찍어둔 상품 경매가 다가오자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경매사가 상품번호를 부르자 중도매인들은 재빠르게 생각해 놓은 입찰가격을 응찰기에 입력했다. 불과 몇 초 만에 해당 상품의 거래가 끝나고 다음 상품으로 넘어갔다. 자신이 찍어둔 상품을 적절한 가격에 낙찰 받은 상인들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반면, 입찰 받지 못한 상인들은 서둘러 다른 상품 앞으로 향했다. 경매 시간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이들에게는 단 1초도 한눈 팔 틈이 없었다.

   
▲ 전자응찰기를 들고 미리 점찍어 둔 상품의 경매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중도매인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감귤 경매에만 1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사과와 배, 딸기와 단감 등 다른 품목의 경매까지 모두 마치자, 시계는 벌써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매가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 박수환 경매사
경매 내내 숨 쉴 틈도 없이 마이크를 잡았던 대구중앙청과(주) 박수환 경매사는 "경매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진 않는다"며 "지금부터 현지 생산자들에게 전화해 당일 시세와 낙찰가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간혹 당일 시세와 낙찰가가 맞지 않아 생산자들이 판매를 보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도매업 종사자들은 이를 '불매'라고 부른다. 이날 경매된 감귤 1만 상자 가운데 2백 상자가 불매 됐다. 박 경매사는 "명절을 앞두고 소비자들이 잠시 지갑을 닫는 시기"라며 "며칠 새 과일 시세가 떨어져 불매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경매가 끝난 뒤 경매장 주변은 낙찰 받은 상품을 옮기는 중도매인들과 상품을 사기위해 몰려든 소매상들로 분주했다. 이미 상품을 다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도매시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날 거래된 상품들은 대구를 비롯한 영남권 각지로 배송돼 소매상을 거친 뒤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게 된다.

   
▲ 경매장 앞 주차장에 낙찰 받은 상품을 싣기 위해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 글이 좋으시면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
포털 daum view(블로그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기사
·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춥니다"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본 신문에 게재된 기사, 링크에 대한 모든 법적권리와 책임은 기사작성자 평화뉴스 에게 있습니다.
* 평화뉴스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제호 : 평화뉴스 * 편집.발행인 : 유지웅 * 창간.발행일 : 2004년 2월 28일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대구 아00010 * 정기간행물 등록 연월일 : 2007년 3월 14일
(우)41266 대구시 동구 국채보상로 155길 54 (상가동 202호) | 대표전화 053-421-6151 | 팩스 0505-421-61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지웅
Copyright 2008 평화뉴스. All rights reserved. 전자메일 pnnews@p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