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놓인 빈곤층, 기초생활보장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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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빈곤네트워크 /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최저생계비 현실화

 

"아들 이름으로 조그만 집 한 채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10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는 김모(52.율하동)씨는 얼마 전 아들 명의로 된 집 때문에 그동안 받아오던 기초생활수급비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됐다. 지난해 말 1,500만원에 경매 매물로 나온 주택을 아들 명의로 구입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집이라도 남겨주려고 아들 명의로 계약한 것이 화근이 됐다.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는 아들의 소득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넘어섰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김씨는 집을 계약 할 당시 아들과 단 한번 연락을 했을 뿐, 그 뒤로 만난 적도 없고 연락한 적도 없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는 세대별주민등록표에 기재돼 있지 않더라도 주거나 생활을 같이하고 있으면 부양의무자로 인정된다. 이에 따라 김씨가 아들과 따로 살고 있지만 아들 명의로 된 집에 거주하고 있어, 주거와 생활을 같이하고 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현재 김씨는 6급 지체장애와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어 근로를 할 수 없는 상태로, 기초생활수급자인 언니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같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비롯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지역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반빈곤네트워크 준비위원회 회원 30여명은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비롯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촉구했다 (2011.4.6)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반빈곤네트워크 준비위원회 회원 30여명은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비롯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촉구했다 (2011.4.6)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인권운동연대와 장애인지역공동체를 비롯한 대구지역 1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반빈곤네트워크준비위원회는 6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본인 소득과 재산만을 기준으로 한 수급자 선정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한 최저생계비 현실화 ▶3년 간격의 빈곤실태조사와 국민기초생활보장계획 수립 ▶차상위계층의 의료, 자활, 교육, 주거를 비롯한 개별급여 지급을 포함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비롯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독소조항 때문에 소득과 근로능력이 없어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가난 때문에 고통 받는 빈곤층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사각지대 놓인 빈곤층 410만명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는 수급자의 기준을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또는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자'로 명시하고 있다. 또, 부양의무자 기준으로는 동거인을 제외한 세대별주민등록표에 기재된 자와 세대별주민등록표에 기재되지 않은 배우자, 미혼자녀 중 30세 미만인 자, 생계 및 주거를 같이 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들의 유무와 소득에 따라 최저생계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회원들이 "빈곤 없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최저생계비 올리자, 부양의무자 족쇄 풀자"라고 적힌 플랫카드를 들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회원들이 "빈곤 없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최저생계비 올리자, 부양의무자 족쇄 풀자"라고 적힌 플랫카드를 들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그러나 수급자가 소득이 전혀 없어도 부양의무자에게 일정한 소득과 재산이 있을 경우 대상에서 제외된다. 게다가 수년 째 부양의무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수급자가 될 수 없다. 2009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8.4%인 410만여명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개인의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된다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도시근로자 월 평균 소득 400만원 vs 4인 가구 최저생계비 144만원

또, 현행 최저생계비의 기준을 도시근로자 가구 월 평균소득에 맞춰 결정하는 상대적빈곤선 방식을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 2011년도 최저생계비는 각각 1인 가구 532,583원, 2인 가구 906,830원, 3인 가구 1,173,121원, 4인 가구 1,439,413원, 5인 가구 1,705,704원, 6인 가구 1,971,995원, 7인 가구2,238,287원으로, 2010년도 도시근로자 가구 월 평균소득인 4,007,671원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지난 2010년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11명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으며, 앞서 2008년에는 근로자의 월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상대적빈곤선 방식의 개정안을 내 놓기도 했다. 이 밖에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과 민주당 최영희, 이낙연, 주승용 의원이 각각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또는 규정 삭제, 범위 축소를 비롯한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왼쪽부터) 장애인지역공동체 서승엽 사무처장, 당사자 증언을 한 송모(32)씨와 김모(52)씨,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희년공부방 이숙현 대표,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왼쪽부터) 장애인지역공동체 서승엽 사무처장, 당사자 증언을 한 송모(32)씨와 김모(52)씨,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희년공부방 이숙현 대표,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장애인지역공동체 서승엽 사무처장은 "빈곤의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라며 "모두가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단체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대상에서 탈락한 이들을 대상으로 집단 수급신청 운동을 벌일 예정이며, 4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2.28기념공원을 비롯한 도심지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의 권리를 위한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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