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애인의 '가슴 찢어질 듯 아픈'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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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28)씨, 김범일 대구시장에게 편지..."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는 주거를"


이정화(28)씨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이다. 두 손을 제대로 쓸 수 없고 걷지도 못해 휠체어에 의지해 지낸다. 경북 청도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이씨는 "더 이상 부모님께 짐이 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립'를 꿈꿨다. 2008년 10월,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자립생활체험홈'에 들어와 비슷한 꿈을 꾸는 장애인들과 2년을 지냈다. 그러나, 이 체험홈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불과 2년. 그 기간이 지나면 '자립'해 떠나야 한다.

이정화(28)씨
이정화(28)씨
이씨는 '2년 기한'이 다가오는 2010년 2월부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에게 현실은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먼저 '영구임대주택'을 신청했지만 '차상위계층'이라는 이유로, 20대 나이에다 대구에 산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이씨의 부모님은 농사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정도였지만 '차상위계층' 규정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생활비는 장애인 연금으로 받는 14만원과 장애인일자리를 통한 20만원이 전부지만, 부모가 농사일을 한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한 때문이다.


다행히 '취약계층 긴급주거지원'에 선정돼 5천만원의 전세자금을 받게 됐고, 이 때부터 매주 중구와 남구, 북구 일대의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갈 집은 없었다. 북구의 한 오피스텔을 소개받았으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집 주인이 임대를 거절했다. 다시 중구의 한옥을 찾아갔으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한옥' 구조를 개조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이씨는 그 뒤에도 서구의 아파트와 동구의 오피스텔을 계속 찾아갔으나 집 주인의 등기 문제 등으로 발 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2011년 2월, 주택공사로부터 긴급주거지원사업 기간이 종료됐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다시 영구임대주택을 신청했으나 2010년과 같은 이유로 탈락됐다. 다행히, 2011년 3월 주택공사의 취약계층 긴급주거지원 중 '다가구매입 임대주택' 대상자로 선정됐으나, 다가구주택 물량이 적다거나 3층이라 어렵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중증장애인 이씨에게 '자립'은 너무도 힘든 꿈이었다. 주택공사도, 구청도 하나 같이 "방법이 없다"는 답변 뿐이었다. 지난 2년을 찾아 헤맨 이씨는 마지막으로 김범일 대구시장에게 편지를 썼다. 손이 불편해 직접 쓸 수 없으니 발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오랜 시간 한 자 한 자 써내려갔다. 그리고, 2011년 4월 8일. 이씨가 지내던 '체험홈'을 방문한 김 시장에게 이 편지를 전했다. 그러나, '장애인의 날'이라는 20일까지 대구시청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이정화(28)씨가 쓴 편지를 읽고 있다. 손이 불편한 이씨는 발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긴 시간동안 이 편지를 썼고, 4월 8일 중구 남산동에 있는 자립생활체험홈을 방문한 김 시장에게 편지를 전했다. (사진 오른쪽 두번째 휠체어 탄 사람이 정화씨) / 사진 제공.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범일 대구시장이 이정화(28)씨가 쓴 편지를 읽고 있다. 손이 불편한 이씨는 발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긴 시간동안 이 편지를 썼고, 4월 8일 중구 남산동에 있는 자립생활체험홈을 방문한 김 시장에게 편지를 전했다. (사진 오른쪽 두번째 휠체어 탄 사람이 정화씨) / 사진 제공.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시청 비서실은 "해당 부서에 이씨의 편지를 전해 알아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해당 부서인 복지정책관실은 "딱한 사정을 잘 알고 있다"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토는 하고 있지만 상당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이런 사연에 직접 얘기하고 싶었으나 "언어장애가 심해 대화는 힘들다"고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알려왔다. 대신, 김 시장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이씨가 얼마나 '간곡히' 자립을 원하는 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는 주거를" 꿈꾸고 있었다.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는 말과 함께.


※ 본 편지글은 손을 쓰지 못하는 이정화씨가 발가락만으로 긴 시간동안 작성하여
지난 4월 8일 김범일 대구시장님께 직접 전달한 것입니다 -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안녕하세요. 대구시장님.

 저는 대구에서 자립(독립)생활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뇌병변 1급 장애인 이정화입니다. 집이 없어 자립생활을 포기해야하는 저의 상황이 너무나 답답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바라며 이렇게 시장님께 직접 글을 올립니다.

저는 경북 청도에서 자랐습니다. 양손을 사용하지 못하고, 언어장애가 심함 중증장애인이다보니 남들이 다니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자유로운 외출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더 이상 부모님께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당당하게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인터넷에서 자립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찾았습니다. 대구에는 2년 정도 거주하며 자립생활을 준비하는 집(체험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곳 자립생활 체험홈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 장애인야학에 다니며 검정고시에 합격도 하고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자립생활을 준비해 나가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체험홈은 자립생활 기술을 익히는 곳이기에 자립생활 준비가 완료되는 2년이 지나면 퇴거해야 합니다. 저에게도 2년이란 시간이 지나 체험홈을 퇴거하여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차상위계층에 속한 저는 소득이 전혀 없고, 부모님 역시 농사일로 생계를 겨우 이어나가시기에 자립생활을 할 집을 구하는 것이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제가 모은 저축금으로는 일반가구의 월세를 감당 할 수 없었고, 전세금으로도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이 후 주택공사에서 실시하는 ‘취약계층 긴급주거지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신청을 하여 전세임대주택 대상자에 선정되었습니다. 5천만원정도의 전제자금을 지원받게 되었고 비용문제가 해결되어 이제 다행이구나라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주택공사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맞는 집을 알아보기 위해 매일매일 부동산을 방문하고 전봇대에 붙여진 전단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집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저는 일반 주택, 빌라, 원룸의 높은 턱과 계단 때문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1층 집이 거의 없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의 경우 주택공사에서 제시한 15평이하(1인가구)의 전세의 물량은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부동산에서도 요즘 아파트 전세는 32평이상 밖에 없고, 5천만원의 15평 아파트 구하기 어렵다고 이야기 할 정도니 말입니다. 간혹 있다고 하더라도 까다로운 주거기준 때문에 계약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010년 7월부터 집을 알아보았습니다. 주택공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야기 하였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담당자의 대답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났습니다. 집을 구하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사업기간이 완료되었다며 원한다면 다시 신청해야 한다며 말하더군요. 사업 안내문에는 그런 내용조차 없었는데 말이죠.
 
 전세임대주택의 경우 장애인의 주거조건을 고려하였을 때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긴급주거지원을 다시 신청하되 이번엔 다가구매입주택을 신청했습니다. 다행히 대상자로 재선정되었지만 문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중구에서 신청하였기 때문에 중구에 있는 다가구 주택만 임대가 가능한데 중구는 집이 많지 않고 있는 물량은 3층이라 접근이 어려우니 포기하라는 식의 담당자의 이야기가 전부였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될 까요? 너무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부모님과 형제들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힘들게 결심해서 바깥으로 나왔는데, 지금 현실은 다시 집으로 가라고 하며 저를 힘들게 하네요. 정말 가슴이 찢어 질 듯이 아픕니다. 

 시장님!

 현재 시행하고 있는 주거제도는 저와 같은 장애인에게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에게 맞는 주거제도와 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제가 힘들게 이뤄온 자립생활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할 수 있는 주거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 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1년 4월 7일

자립생활 체험홈 입주자 이정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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